커피 그라인더 앞에 흩뿌려진 커피가루를 작고 단단한 솔로 슥슥 쓸고 털어낸다. 샷 버튼을 눌러 샤워 스크린에 묻은 찌꺼기를 불어주고 같은 절차를 몇 차례 더 반복하며 물줄기가 내려오는 모양새를 지켜본다. 부싱을 닦아준다. 동그란 모양의 거친 솔에 까만 고체 가루가 묻어 나오고 떨어진다. 추출 바를 그룹 헤드에 잇 날을 맞춰 꽂아 힘주어 끝까지 돌리고 세척 버튼을 누른다. 내려오는 물줄기를 본다. 매우 연한 커피색이 점차 투명해지면 다시 버튼을 눌러 정지하고 추출 바를 분리해서 바스켓을 확인한다. 커피 찌꺼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다시 몇 차례 반복한다. 이제 아무것도 묻어 나오지 않는다. 추출 바를 분리해서 세척하고 물받이를 비롯한 기타 용품을 싱크대로 옮겨 부드러운 수세미로 열심히 닦아준다. 살짝 광이 난다. 말려두고 커피가루가 담긴 통을 비우고 씻어낸다.
샤워 스크린이 막힌 상태로 추출 버튼을 눌러보면 이상한 소리가 난다. 폐병 환자의 숨소리처럼 거칠고 탁한 소리가 들린다. 처음 머신을 잡을 때는 그게 이상한 소리라는 걸 알지 못했다. 추출할 때 그런 소리가 나는 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샤워 스크린을 청소하지 않으면 끼어있던 커피 찌꺼기들이 추출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당연하게도 커피 맛은 깔끔하지 못하고, 그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샤워 스크린의 작은 구멍들이 고착된 커피 찌꺼기로 막힌다. 탬핑을 고르게 해서 투입해도 샤워 스크린에서 온수가 균일하게 쏘아져 나오지 못하다 보니 비스듬하게 탬핑된 경우나 적절한 수압에 도달하지 못한 때처럼 채널링이 발생한다. 추출과정의 문제는 에스프레소 맛을 떨어트리는 주요한 원인이다.
커피머신을 세척하는 과정은 마음을 씻어내는 느낌과 유사하다. 마음 곳곳에 낀 거뭇거뭇한 찌꺼기들을 긁어내고 닦아내다 보면 내 안에 이토록 많은 응어리들이 남아있었음을 알게 된다. 추출되지 못한 채로 마음 어딘가에 고착된 이야기와 생각, 글감들이 소설의 맛을 변질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게 지난주 즈음이었다. 그래서 나름의 청소를 시작했다. 소설 속 주인공의 관점에서 벗어나 나의 이야기를 썼다. 에세이로의 일시적 귀환이었다. 밀린 이야기들이 배설하듯 쏟아져 나왔다. 즐거운 한편으로 걱정이 차올랐다.
이전에도 경험했듯이 소설을 벗어나면 다시 그 속으로 온전히 파고드는 일이 쉽지 않다. 공백의 기간을 극복하는 일이 막다른 골목처럼 아득하다. 벽을 넘어가든 아니면 돌아나가서 다른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어느 쪽도 쉽지 않아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서 늘 미뤄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커피머신처럼 잘 닦아낸다고 원래의 맛이 나올지 알 수 없기에. 하지만 청소를 마치고 처음 추출한 에스프레소의 황금빛 크레마는 꽤나 눈을 즐겁게 했다. 부드럽고 진한 맛과 향도 흡족했다. 이제 다시 시작할 소설은 어떤 빛과 맛을 낼지 알 수 없지만 고민의 순간일수록 무던히 써 내려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이어질 이야기가 방금 내린 에스프레소처럼 향긋하길 내가 나에게 부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