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멍한 얼굴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좁쌀만 한 점이 허공을 떠다녔는데 손으로 잡을 수 없었다. 스탠드가 갑자기 꺼졌고, 개는 시끄럽게 짖어댔다. 먹이가 떨어지기라도 한 걸까? 창밖은 캄캄했다. 그래서 모습도 잘 비쳤다. 개는 자기를 보고 짖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하고 생각하며 웃었다. 하지만 자신을 보고 놀라는 게 정말 저 강아지뿐일까?
아내는 살이 안 빠진다며 불평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먹는데 오히려 빠지면 문제라고 말했다. 아내는 주먹으로 내 명치를 쳤다. 옆에 있던 사람이 아내와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불쌍한 사람을 때리면 어쩌냐고. 아내는 내가 어디가 불쌍해 보이냐고 따졌다.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다. 얼굴 안 보시냐고. 아내는 내 얼굴을 뜯어보고는 말했다. 봐도 모르겠는데요?
살은 일로 빼는 거라고, 오래전에 죽은 친구는 말했다. 그 친구는 정말 뼈밖에 없었다.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 같은 몸으로 부지런히 쉬지 않고 일했다. 그러다 스물다섯에 공사장 건물 7층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 친구는 그 전 날에도 밤새 택배 상자를 날랐다. 친구의 죽음은 애석했지만 그의 다이어트 방법은 정말 효과적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친구가 살이 오른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요즘 나는 이른바 근로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 허기가 지면 커다란 청포도맛 사탕 한 알을 입에 물었다. 달달한 고체 덩어리를 혀로 슥슥 문지르다 보면 불편했던 가슴이 조금 펴지며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힘들 때마다 생각했다. 그 친구를. 그러면 이상하게도 허리가 곧게 펴졌다. 두 달쯤 지나자 몸무게가 5킬로가 빠졌다. 그리고 정신이 멍해지는 순간이 늘어났다. 앞사람의 얼굴이 둘로 보일 때도 있었다. 몸은 가벼워졌는데 팔다리는 오히려 무거워졌다.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바깥에는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바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우산을 쓰고 집을 나섰다. 길은 평탄했다. 오른쪽은 낭떠러지였다. 계곡물이 쏟아지듯 흐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나는 생각했다. 여기로 떨어지면 곧장 저 아래로 추락하겠구나. 자동차들이 한 번씩 옆을 지나갔다. 비 오는 밤길을 꽤나 빠른 속도로.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의 전화였다. 이 비에 어딜 갔느냐고. 나는 두 글자로 대답했다. 산책. 아내도 두 글자로 대답했다. 그래. 전화는 끊겼다. 비가 그쳤지만 계곡의 소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저 앞에서 큰 소리가 났다. 나는 소리가 들린 방향을 가늠하며 어두운 길을 달려갔다. 계곡 아래쪽에 자동차가 뒤집어져 있었다. 사람은 빠져나오긴 한 걸까? 그때 큰 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이 환해졌다. 전화를 걸으려고 하는데 주머니가 허전했다. 달려오면서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오백 미터를 헉헉거리며 계곡으로 돌아서 내려갔다. 저 쪽에서 꿈틀거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는 비틀거리며 계곡물에 엎어졌다. 온통 검게 그을려 있었다. 불이 붙은 채로 계곡물에 뛰어든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업고 어두운 길을 따라 달렸다. 자동차 세 대가 연달아 지나갔다. 손을 흔들었지만 멈춰서는 호인은 없었다. 나는 결국 집까지 그를 업고 갔다. 아내가 입을 가리며 전화했고 구급차가 그를 실어갔다. 한동안 불에 탄 그의 살 냄새가 등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구역질을 하고 세수를 했다. 거울을 보는데 나는 개처럼 입을 벌렸다. 다행히 짖지는 않았으나 그 퀭한 내 얼굴을 나는 한동안 잊을 수 없었다.
며칠 뒤 자동차가 떨어진 그 자리로 나는 걸어가 보았다. 잔해와 탄 자국이 계곡 바위에 남아 있었다. 나는 선명한 추락의 흔적들로부터 그를 발견한 지점까지 천천히 걸었다. 오른쪽으로 오솔길이 보였다. 길은 꽤나 가팔랐다. 헉헉거리는 숨을 추스르며 갈림길에 다다랐을 때 이어지지 않는 저편으로 오래된 쉼터가 보였다. 긴 나무 의자와 녹슨 화목난로에는 먼지가 앉아 있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나무 의자의 먼지를 대충 쓸어낸 뒤 앉았다. 다섯 발자국쯤 되는 곳에 똑같이 생긴 나무 의자가 하나 더 있었다. 나는 그 의자로 옮겨 앉았다. 먼저 앉은 의자에 엉덩이 자국이 보였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사람이 깨어났다고. 좀 전에 연락이 왔다고. 나는 두 글자로 대답했다. 그래. 아내가 물었다. 어디야 근데? 나는 대답했다. 계곡. 아내가 말했다. 얼른 내려와. 삼계탕 다 끓여놨어. 나는 대답했다. 알았어.
내려가는 길은 힘들었다. 자꾸만 다리가 후들거리며 무릎이 접혔다. 나는 미끄러져서 한참을 굴렀다. 정신은 멀쩡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전화기가 울렸다. 아내가 말했다. 어디야? 전화는 왜 안 받아? 나는 핸드폰 시간을 확인했다. 세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말했다. 구른 것 같아. 아내의 목소리가 조금 변했다. 뭐? 나는 말했다. 괜찮아. 금방 갈게. 나는 전화를 끊고 산 길을 마저 내려갔다. 다시 그 계곡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흙투성이가 된 몸을 계곡물로 씻었다. 문득 계곡물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여기저기가 까지고 이마 한쪽은 퉁퉁 부어 있었다. 물살이 바뀔 때마다 얼굴은 같은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나는 몇 번 더 얼굴에 계곡물을 끼얹었다.
아내가 물었다. 괜찮은 거야, 진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아내가 삼계탕을 퍼 먹는 나를 보며 말했다. 진짜 불쌍하게 먹는다. 닭국물이 닿을 때마다 입 안이 따가웠다. 나는 물었다. 이제 좀 그래 보여? 아내가 물었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 누구야? 자기 보고 불쌍해 보인다던? 나는 말했다. 글쎄? 그런 사람이 있었나?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기억 안 나?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고도? 나는 말했다. 그랬어, 내가? 아내가 말했다. 그날 같이 산책도 갔다 왔잖아? 다쳤다면서 업고 온 거 정말 기억 안 나?
나는 허공의 어느 한 점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먼지 같은 점 하나가 떠 다녔다. 서늘한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