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휴대전화가 고장 난 건지 아니면 내 얼굴이 고장 난 건지 날 자꾸 못 알아본다. 지문이야 손에 물을 계속 묻히니 닳고 또 변한다지만 얼굴은. 집사람도 아침 먹는데 그러더라. 로션 좀 바르라고. 얼굴이 이게 뭐냐고. 나는 아침부터 웬 바가지냐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정말 내 얼굴이 그래 안 좋나? 하고 거울을 보았다. 노상 보던 그 얼굴이구만 뭐. 사람이 나이 들어가면 얼굴이 나빠지지 좋아지나? 서서히 흙더미처럼 변해가다가 세상도 꼴 보기싫다카면 떠나는 거지. 내는 별로 오래 살 생각도 없다 했더니 집사람은 섭섭함이 잔뜩 묻은 얼굴로 방에 들어가 버렸다.
보기 싫으면 보지 말라지.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집을 나섰다. 말도 않고 나섰는데 집사람은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든다. 저런 사람이 어데서 나를 찾아왔을꼬. 받는 사랑 주는 사랑 재고 따질 거 없다지만 나는 내가 늘 받는 쪽이라는 걸 어쩔 수 없이 느끼고 만다. 이제 의리로 힘 합쳐 사는 18년 지기지만 알게 모르게 내가 기대온 날이 많다.
여보 당신 보시오.
당신도 믿고 의지할만한 남자를 만나고 싶었을 텐데. 어쩌다 얻어걸린 게 나같이 심성이 좁쌀만 한 남자라서 참 고생 많았소. 맨날 배 타고 나가서는 집에도 못 들어오는 남편 데리고 애 셋 키우며 젊은 나이부터 남들 누릴 것 하나 속 시원하게 못 누리고 그 고된 세월 묵묵하게 버텨냈지. 얼굴이 갔으면 나보다 당신이 몇 배는 더 갔을 텐데. 이상하게 나이 들수록 빛이 나는 걸 보면 참말로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긴 계신가 보오. 내가 해온 일이야 하나뿐인 당신 속 썩인 것 밖에 없는데 잘 버티고 견뎌줘서 고맙소.
첫 살림 차렸을 때가 그랬지. 다 낡아 쓰러져가는 그 문디같은 집구석 보고 장모님 눈물 훔치시던 거 기억나오. 그래도 피차 둘 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이라 니 탓이니 내 탓이니 싸울 일 없어 좋았소. 좁고 구차한 집구석이야 젊은 우리 두 사람 헛마음 먹지 않고 부지런히 일해 모으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당신이 먼저 그래 말해 줘서 참으로 고마웠소.
첫애 낳느라 몇 달을 누워있는 동안에도 나랏님 시킨 것들 하느라 곁에 못 있어줬지. 애 뱃속에서 나오는 날에도 손 못 잡아줬지. 둘째 아이 몇 번이나 유산되고 할 때도 위로 못해줬지. 그나마 막내 그거 하나 탯줄 잘라주고 품에 안아본 게 전부니 참 혼자 고생 많았소. 저 무쇠 장군 같은 자식새끼 셋 저만큼 키워낸 건 모두 당신 공이오.
그래도 얼평은 서로 삼갑시다. 내 대학 다닐 때까지 술집 가면 민증 까보라던 사람인데 이리 겉늙어가는 시절이 퍽이나 속이 온전하겠소. 근데 또 어쩌겠소. 사람 자기 생겨먹은 대로 사는 거지. 못났어도 예쁘다 하고 서로 말해주면 좀 좋소.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여보 당신이 제일 아름답더이다. 처음 만났을 때야 어울리지도 않는 단발 파마머리에 깍쟁이 같은 얼굴이었지. 사람이 커갈수록 예뻐지는 게 보는 내가 다 뿌듯했던 거 아시오? 나야 젊을 때 충분히 어려 보인다 소리 듣던 사람이니 앞으로 들을 말이야 언제 이래 팍삭 삭았니 카는 말들밖에 더 있겠소.
몇 년 죽었다 살아나 보니 겉껍데기 같은데 도통 관심이 가지 않더이다. 당신이 이해해주구려. 그래도 꼴 보기 싫다면 내 당신 자고 있을 때 나갔다가 잠든 뒤에 들어오는 수밖에 더 있겠소. 내 바라는 건 이제 속이나 튼튼해지는 것 밖에 없소. 그간 쓸데없이 몸에 비축해온 것들 노동하고 봉사하며 돌려드리고 나니 덩달아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서 나는 참 좋고 행복하오. 웃는 얼굴 주름 자글자글해도 내 불만 없으면 그만 아니겠소. 당신 마음 쓰여 그러는 것 아오. 내 이해하리다. 가끔 하는 건 점잖게 눈감아주겠소. 대신 오늘 저녁에는 같이 얼굴에 팩이나 붙이고 잡시다. 내 그거 한 번은 해줄 수 있소. 그러니 너무 애달파 마시오. 참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