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고 바람이 불었다. 아이는 어젯밤에 똥 싸는데 실패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발을 어깨까지 들어 테이블 위에 턱 하니 올린 뒤 때가 낀 발톱을 보여주며 멍들어 아프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꾸만 글씨가 비뚤어졌다. 나는 수첩을 덮었다. 아래를 보니 받침대를 고정하는 나사 하나가 빠지고 없었다. 바닥을 한참 두리번거렸지만 나사는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잠시 보고는 그러자고 답을 보냈다. 장마가 계속된 탓에 아내는 며칠 째 잠을 설친 상태였다. 아내가 사흘 전부터 기름진 게 당긴다고 몇 번이나 말했음에도 퇴근이 늦어지는 바람에 마트를 들리지 못했다. 아내는 오늘 점심 나절에 장을 봐 두겠다고 선포했다. 나는 살찔 걱정일랑 접어두고 푸짐하게 먹자고 했다.
아이는 숫자놀이에 빠져 있었다. 아이는 내게 배터리 선을 꽂아달라고 했고 아빠는 왜 안 오냐고 물었다. 나는 창밖으로 주차된 차에서 통화 중인 아이 아빠를 보았다. 모른다는 나의 대답에 아이는 아침 점심으로 떡갈비를 먹었다고 했다. 나는 핫도그를 하나 전자레인지에 돌려주었다. 아이는 소시지만 남기고 야금야금 빵을 뜯어먹으며 태권도를 자기만 못 가게 되었다고 시무룩하게 말했다. 소시지는 왜 안 먹냐고 묻자 아껴먹는 거라고 했다.
아이는 몸을 비틀었다. 나는 아이에게 며칠 뒤면 비행기 타는데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씩씩한 아이였다. 나는 저만할 때 버스 타는 것도 질겁했던 것 같은데 비행기쯤 아무렇지 않게 타는 아이가 문득 부러웠다.
어제 아이는 수영장을 갔다가 되돌아왔었다. 도착하고 보니 아이 수영복이 없더라는 것이다. 통화를 마친 아이 엄마는 허탈하게 웃으며 길을 나섰다. 차에 혼자 남겨져있던 아이는 그렇게 엄마 손을 잡고 카페로 돌아왔다. 집으로 바로 갈 줄 알았는데 나 혼자 손님에게 붙잡혀 있을까 신경이 쓰였다는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일요일 저녁이었다. 우산을 내미는 손을 한사코 다시 밀어 넣으며.
아이 아빠는 한참 키 뭉치를 뒤적거리더니 주유소를 다녀온다며 밖으로 나갔다. 다시 우리 둘만 남았다. 아이는 아침 8시에 일어났는데 벌써 졸리다며 눈을 비볐다. 나는 일어난 지 벌써 몇 시간이니 피곤할 때도 됐다고 했다. 아이는 내게 몇 시냐고 물었고 나는 시계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이는 수줍게 어떤 시간을 말했고 나는 분을 바로잡아주었다. 몇 시간이 지난 거냐고 물어 대답해 주었지만 아직은 조금 어려워 보였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된다고 했다. 그때 또 아이는 그러려면 몇 시간이 지나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웃었다. 그런 걸 내가 알았다면.
파리가 자꾸 주변을 기웃거렸다. 파리채를 들면 파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파리에게 지능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 분명했다. 가게 앞으로 들어왔다가 바로 돌려나가는 차들이 있었다. 옆집은 벌써 3주째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직원부터 사장까지 연달아 감염병에 걸렸다는 말이 들렸다. '개인 사정으로 오늘은 쉽니다.'라는 팻말에 적힌 날짜가 6일에서 11일, 16일로 바뀌었다. 배를 문지르며 내린 손님들이 찌푸린 표정으로 다시 차를 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냄새를 풍기다가 바닥에 꽁초를 그대로 버리고 사라졌다. 며칠이 더 지나자 그 꼴불견들마저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는 손 하나가 사라졌다며 내게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짐짓 과장하여 눈을 휘둥그레 뜨며 팔이 어디 갔냐고 물었다. 아이는 여깄지 하며 소매 안에 숨겼던 오른팔을 뻗었다. 아이가 손을 뻗은 방향으로 구석진 곳에 민트색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밑창이 거의 닳지 않았고 뒤꿈치가 경사지지 않은 운동화였다. 다만 흙먼지가 잔뜩 앉아있을 뿐이었다. 솔로 문지르자 까만 땟국물이 졸졸 흘러나왔다. 한참을 문지르고 났을 때 나는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저 녹색 운동화요? 하고 묻는 내게 그녀는 하늘색 운동화가 아니고요? 하고 되물었었다. 과연 그랬다. 때가 빠진 운동화는 완연한 하늘색이었다. 오랜만에 해가 난 저 하늘처럼 맑고 푸른색. 일전에 하얀 단화에 잔뜩 얼룩이 서린 것을 보고 물었을 때 발을 밟힐 때가 많아서 그렇다고 그녀가 대답한 게 기억났다. 그녀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는 신발만 보이면 일단 밟고 보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고.
밑창이 그대로인 운동화를 보자 엄마가 떠올랐다. 몇 달 전 근 이년만에 생일 케이크를 사들고 내려갔을 때 엄마는 얇고 해진 살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내가 저 일곱 살 아이만 했을 때부터 혹은 그 이전에 이전부터 엄마가 자주 입던 카디건이었다. 10년을 입어도 실오라기 하나 터지지 않던 엄마의 옷을 가장 많이 망가뜨린 건 다름 아닌 내 손가락이었다. 옷에 난 구멍이란 구멍에는 모조리 손가락을 집어넣어 온점만 하던 구멍을 십원이나 오백 원 동전만 하게 만들어놓곤 했었다. 엄마는 그 옷들을 손바느질로 일일이 수선해 감쪽같이 원래대로 되돌려놓았다. 엄마는 또 손가락을 집어넣는 나에게 하지 말라면서도 웃었다. 나는 하지 말라는 말은 못 듣고 엄마의 웃음소리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