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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두 사람은 판이하게 달랐다. 한마디로 이름 외에 두 사람은 전혀 닮은 점이 없었다. 문제는 마치 기억 속의 외딴집처럼 익숙한 감각이었다. 가본 적 없는 장소가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서로 다른 사람에게서 유사한 종류의 익숙함을 느낀다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 사람이 같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뭘까. 확인하고 싶어졌다. 호기심이 나를 이끈 장소는 공주였다.
유난히 가을볕이 뜨겁던 9월. 내가 일곱 번째로 공주를 찾았을 때였다. 금강은 어쩐지 메말라 보였다. 하얗고 투명한 선은 가닥가닥 끊어져 있었다. 하릴없이 나는 금강 둔치를 걸었다. 바람이 등 뒤에서 불었고, 이윽고 나를 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따라 몸을 맡겼다. 밤이 되자 풀벌레 소리가 금강을 건너는 게 느껴졌다. 아른거리는 수면 위로 줄지은 등불이 보였다. 강 건너로 반딧불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공산성의 성곽이었다.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는 가운데가 비어 있었다.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채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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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공산성은 잠잠했다. 사람의 눈빛보다 별빛이 더 신경 쓰일 만큼. 가끔 나는 신을 의식할 때가 있다. 유신론, 무신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따지자면 나는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종교인’에 대한 반감이 컸다. 그들은 신의 의지나 생각, 계획 같은 것을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댔다. 구원을 말하고, 사후를 말하고, 심판이나 종말을 쉽게 입에 담으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오만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신의 존재를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나 역시 내가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곳에 신(이든 혹은 다른 이름이든)이라 불릴 초월적 존재가 버젓이 존재하고,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의지나 계획을 통해 우주나 세상을 빚어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그걸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는 ‘신’에 비견될만한 존재일 것이다. 종교인 스스로 그런 것들을 안다고 말한다면, 그는 자신이 인간을 어느 정도 초월한 존재라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것 치고는, 종교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신과 전혀 닮지 않은 사람이 신의 대리인 자격을 얻은 것처럼 행세하는 모습이 싫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수십억 광년의 괴리가 혐오를 낳고 있었다. 지구가 생성될 때쯤 쏘아 보낸 빛이 아직도 지구에 도착하지 못한 것처럼. 종교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서 종교인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삶을 발견했을 때처럼. 그들의 언어는 전혀 진정성을 담아내지 못했다. 정말 그것이 신의 언어라면, 아무리 모자란 그릇에 담아도 빛이 새어 나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빛을 보지 못했다.
태초에 누군가가 천지를 창조했다는 확인할 수도, 설명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이야기의 답은 늘 허전했다. 그런 답은 들을수록 힘이 빠졌다. 어차피 그때를 살아본 사람은 없고, 천지를 창조한 존재가 신인지, 신이 아닌지 증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이가 ‘신’이라고 하는 주장을 반박할 사람 역시 없었다.
그들은 단지 그렇게 믿고 싶은 것뿐이다. 자신이 수많은 돌연변이에 의해 만들어진 우연한 진화의 산물(결국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전혀 없는)이라고 믿는 것보다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직접 창조한 존재라고 믿는 편이 자신의 가치를 선점하는데 더 유익하니까. 인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인간은 결코 알 수 없다. 가설은 설정할 수 있어도 증명은 불가능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인간이 없었으니까. 자신이 존재하기 전의 일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갓난아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만을 조각하여 누군가를 재구성하는 것처럼. 우리는 태어난 이후의 일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하물며 그 전의 일이라면.
그보다 나는 지금 밤하늘에서 나를 지켜보는 별들에게서 차라리 신을 느꼈다. 아무렇지 않게 주변을 지나치고 활보하는 사람들 중에 신의 전령이 버젓이 활보한다고 믿었다. 신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신은 이미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고 영향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이름 짓거나 규정하지 않아도, 알아차리거나 인정하지 않아도. 신에게 그런 인간적이고 사소한 것들이 뭐가 중요할까. 나는 평생 동안 마주쳐도 그들이 신의 전령이란 걸 결국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들의 흔적이 나를 이끈다고 믿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공산성을 걸었다.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힌 건 특별히 나의 시선을 끄는 대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따끔거리고 흐물거리는 무언가를 꿀꺽 삼키기 위해서라거나. 나는 걸을수록 점점 포기하고 있었다. 바라던 재회가 결국 어그러질 것에 대하여. 기다림이 결국 기다림으로 끝날 충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오늘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그건 신의 계획일 거야. 무언가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신의 계획을 떠올리는 것은 좋은 전략이었다. 적어도 책임론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 안됐지만 내가 잘못해서는 아냐. 헤아릴 수 없는 힘과 아직 도달하지 못한 시점의 작용 때문이야. 그건 신의 영역이지. 절망이 숨 쉬듯 찾아오는 내게는 그 편이 차라리 나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