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23)

23. 두 번째

by 작가 전우형

23.


두 번째였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세상이 하얗게 변하고 뒤늦게 눈을 뜬 건. 어쩌면 그 하얀 세상이란 사후세계의 입구가 아닐까. 처음 그런 일을 당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던 시기였다. 동네 곳곳에 고층 아파트가 솟았고, 그중 하나가 새로 이사 갈 집이었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주말마다 소풍처럼 모델하우스를 구경 갔다. “여기가 앞으로 우리가 살 집이야.”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들떠 있었다. 집은 정말 크고 넓었다. 거실에서는 축구를 해도 될 것 같았다. 방 3개에 거실과 부엌이 구분되어 있고 화장실이 2개인 그 집은 17평 장기임대 아파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엄마와 나는 한참 동안이나 어딜 어떻게 꾸밀지를 이야기하며 그 모델하우스를 서성거리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에서 초등학교 6학년으로 이름과 학년이 모두 바뀌는 해에 1km쯤 떨어진 신축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육교 한 번만 건너면 돼서 좋았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새 집으로 이사를 갔다. 학교는 다시 멀어졌고 나는 8차선 도로를 몇 번이나 건너야 했다. 걷는 데는 이골이 나 있어서 괜찮았다. 다만 초록불이 문제였다. 그놈의 초록불이.


초록불로 바뀌었고 나는 쏜살같이 횡단보도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사후세계의 입구에 서있었다. 모든 것이 하얀 그 공간에서는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고 나를 구속하는 그 무엇도 없었다. 사방이 빛으로 가득 찬 공간. 너무나 밝아서 눈을 감고 있는데도 눈이 부셨던 공간. 그러다 문득 눈을 떴을 때 나는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머리와 눈과 귀가 온통 윙윙거렸다. 내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을 때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일어서려다 주저앉았다. 허벅지와 무릎이 덜덜 떨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게 응원가 같았다. 후들거리는 발걸음을 떼며 횡단보도 건너편까지 걸어갔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경찰차가 도착했다. 저쪽으로 누운 채로 바퀴가 돌아가는 오토바이가 보였다. 경찰이 와서 무어라고 물었고 나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얼른 일어나서 집으로 가려했다. 이제 내리막길만 내려가면 아파트 단지 입구였다. 그리고 동 하나를 지나 첫 번째 입구로 들어가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울음은 나오지 않았다. 별로 아픈 것 같지도 않았다. 몽롱한 기분이었다. 내가 움직이려고 할 때마다 함성처럼 들리는 어어- 하는 소리가 좋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시도는 제지당했다. 나는 경찰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실려갔다. 휠체어를 얻어 타고 기다리는데 엄마가 왔다. 엄마는 침착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가 큰소리를 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엄마의 정신없고 다급한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을 생애 최초로 보고 있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는 나의 기분은 온통 하얗기만 했던 사후세계의 입구에 서 있었을 때처럼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는 경찰과 함께 서 있던 그 젊은 청년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경찰의 제지도 소용없었다.


휠체어에서 병상으로 옮겨 타려고 손을 짚었을 때 나는 갑자기 힘이 쭉 빠지며 허물어졌다. 오른 손목이 부러져 있었다. 입원해있던 한 달 동안 나는 사지 중 삼지에 깁스를 하고 좀비처럼 뛰어다녔다. 엄마는 뼈가 어긋난다고 조심하라고 했지만 나는 가려움을 참을 수 없었다. 엄마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손목이 가늘어진 틈으로 젓가락을 넣어 가려운 부분을 긁었다. 양쪽 무릎은 물리치료를 오래 받아야 한다고 했다. 물리치료는 매회 50분이 넘게 걸렸다. 김이 폴폴 솟아나는 팩을 수건으로 감싸고 나면 나는 30분 동안 뜨거운 절구통 속에서 벌을 서는 기분이었다. 그 시간을 가까스로 버티고 나면 빨간빛을 비추는 요사스러운 스탠드를 당겨와서 무릎에 비춰두고 갔다. 서서히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은 갑자기 차가운 젤을 발라서 놀라게 하더니 찌릿찌릿한 뭔가를 붙여두었고, 자국이 날 정도로 전기고문을 한 뒤에는 아빠 면도기처럼 생긴 걸로 문질렀다. 나는 처음 두 번쯤 억지로 끌려가고 나서 다시는 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오른쪽 무릎을 고질병처럼 절룩거리게 되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첫 번째 경험이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벨트가 대각선으로 상체를 가로지르고 있어서 팔에 힘을 주어도 파르르 떨릴 뿐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걸린 허리 아래쪽은(현재로서는 위쪽이라고 해야 할)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어디선가 매캐한 연기와 함께 진득한 유증기 같은 것이 속을 울렁거리게 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오른팔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한쪽으로 몸이 기울며 머리가 ‘ㄱ’ 자로 꺾였다. 숨이 막히며 다른 의미로 눈앞이 희미해져 갔다. 손을 마구 내저으며 잡히는 대로 누르고 밀다가 순간 모든 구속력이 일시에 사라지며 플라스틱 내장재 위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낑낑대며 몸을 뒤집은 뒤 문틈을 발로 찼다. 이미 벌어져있던 문은 서서히 틈을 벌렸다.


나는 그때처럼 뇌 안쪽에서부터 울리는듯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 소리는 커다란 왕벌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처럼 끔찍하고 즉각적이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한걸음을 떼어보다가 이내 바위에 걸려 넘어졌다. 바닥은 축축했다. 입안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혀를 내밀었다. 물이 달큼했다. 나는 곧 그 모든 것들을 토해내야 했다. 얕은 계곡물을 따라 기름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가슴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부서진 화면에서는 확인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데. 빌어먹을 요즘 휴대전화는 액정이 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른쪽 허벅지 한쪽이 툭 튀어나온 게 느껴졌고 무릎의 각도가 묘하게 뒤틀린 것이 보였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해. 본능적으로 나는 엎어진 채로 몸을 앞으로 밀었다. 뒤에서 뭔가 환한 기운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저 녀석도 제 딴엔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거센 폭발음과 함께 나는 세 번째로 정신을 잃었다.


**


눈앞에 그녀가 보였다. 이게 사후세계의 세 번째 버전인가. 이젠 천사도 등장하나 보군. 보이지 않는 힘이 뒤통수를 치며 말했다. 누구 맘대로 천사래! 그런가? 머리를 묶은 모습이었다. 하긴 천사가 머리를 묶진 않겠군. 이것도 편견인가? 몽키 바나나처럼 천사의 얼마 안 되는 머리칼이 달랑거렸다. 천사가 말했다. 천사가 말했다?

“그만 쳐다봐요. 급히 나오느라 드라이도 못했다고요.”


천사도 드라이는 하나 보군. 언어도 이 세상이랑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고. 나는 눈을 더 크게 뜨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얼굴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찐득한 것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어서 사정없이 얼굴을 잡아당기고 일그러트리는 느낌이었다. 입은 움직일 수 있을까.


“이런 꼴은 보여주기 싫었는데.”

“어떻게 왔는지 안 물어보는군요.”

“당신도 죽었나요?”


그녀는 잠시 입을 벌린 채로 멈춰 있었다.

“네. 그랬나 보네요. 죽지 않고서야. 휴... 정말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거예요?”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기억이라... 어떤 기억을 떠올리면 좋을까.


그녀가 말했다.

“전화가 왔어요. 누가 사고가 나서 실려왔다는데 보이스 피싱인가 해서 끊어버렸죠. 그런데 전화가 또 오는 거예요. 녹음 버튼을 누르고 말했죠. 지금 녹음 중이니까 똑바로 말하라고. 잠시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어요. 역시, 하고 끊으려 하는데 말이 들려왔어요. 제 이름과 전화번호를 말하더군요.”


그녀가 숨을 한차례 삼키며 울먹였다.

“밤에 말도 없이 도망치더니, 갑자기 이 꼴로 나타나서는. 저한테 연락은 왜 한 거예요?”

나는 특별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한 걸까? 내가 했지만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눈을 피하기도 했다.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당신 스토커예요?”

“그보다, 기왕에 왔으면 안부 정도는 물어주는 게 예의 아닌가?”

“흥. 여기까지 온 게 예의지. 뭘 더 바라요?”

“...”


“당신 이름이 정말 이거였어요?”

“아는 이름인가요?”

그녀는 무성의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녀는 몇 번 더 찾아왔다. 옆에 앉아 사과를 깎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아프니까 좋네요.”

그녀는 사과를 입에 쑤셔 넣어 버렸다.


그녀가 창밖을 보며 물었다.

“왜 그때 나보고 아내라고 했어요?”

“죽기 전에 한 번쯤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나 보죠.”

“꿈 깨요.”

“솔직히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전혀 기억나지 않거든요.”

“사고 당시 가요?”

“계곡에 떨어진 직후까지는 기억이 있어요. 차에서 빠져나오던 것까지도. 하지만 병원에 어떻게 오게 된 건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당신에게 연락한 것들도, 전부 다.”


나는 오래된 질문을 꺼냈다.

“지금도 그때처럼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모두 불행해진다고 믿나요?”

다시 사과를 깎던 그녀의 손이 멈칫거렸다. 그녀는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세심하지 못한 병원이었다. 늘 누워있는 환자에게 시간의 흐름을 대놓고 알아차리게 하는 건. 아마 한 번도 제대로 아파보지 못한 사람일 거야. 나는 창가 쪽으로 돌아누웠다. 하늘이 노랗고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뒤에서 그녀의 숨소리가 들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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