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41)

41.

by 작가 전우형

41.


"찾고 있었어요."

희영이 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누군가를 불렀다. 나는 그 대상이 나인지 확인하기 위해 돌아보지 않고 기다렸다.

"어딜 갔던 거예요?"

희영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한걸음 가까워졌다. 이젠 살갗을 스칠 것 같았다. 희영이 내 어깨를 톡톡 손끝을 세워 두드렸다.

"왜 모른척해요? 성호 씨 맞죠? 맞잖아요."

내 이름은 그게 아닌데. 나는 그가 아닌데.


**


실타래 같은 빛이 모여들며 언덕이 만들어졌다. 언덕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을 찾아 몸을 숨겼다. 바람은 때로는 따뜻했으며 때로는 시원했고 때로는 싸늘했다. 너무 많은 것들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저장공간이 부족합니다.' 불필요한 기억을 소각해야 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덜어내야 할까. 사라져도 괜찮은 기억이 뭘까.

아프지 마요. 또각또각. 좁은 통로를 울리는 발자국 소리. 아프면 안 되나요? 오래 보고 싶으니까요. 마주치는 눈동자. 시선에서 멀어지는 눈동자. 아프면서 오래 보는 건 싫어요? 다시 눈앞으로 가까워지는 얼굴. 아프면서. 아프면서? 볼을 따라 흐르는 미끈하고 힘없는 선 하나. 볼을 스치는 차가운 온기. 거칠고 메마른 살갗.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감각의 좌표. 점점 더 명확해지는, 우리가 아주 잠시 닿았던, 우리가 공유되었던 찰나의 시간.

답답하다. 주먹을 휘둘러도 나를 둘러싼 단단한 것들은 허물어지지 않는다. 안과 밖. 나는 그 틈에 끼어 움직일 수 없다. 가속. 속도가 점점 더해진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섞인 물감처럼 경계가 흐릿해지고 하나로 합쳐지며 가로로 길어진다. 그것들은 지독하게 빠르게 다가왔고 다가온 속도보다 더 빠르게 멀어져 갔다. 단 하나, 여전히 흩어지지 않은 하나의 상을 향해 손을 뻗는다. 익숙하지만 다른 이름.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 누군가에게는 있고 누군가에게는 없는 기억. 나는 그리고 그녀는 기억의 어느 부분을 도려내야 아귀가 맞을까.


**


등이 시리고 속은 매스껍다. 다른 사람과 바꿔 끼운 것처럼 손과 발의 거리와 방향이 제각각이다. 머리가 뜨겁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을 걸어올 때처럼 뒤섞인 질문들이 동시에 문을 두드린다. 헝클어진 시야가 서서히 반으로 갈라지며 일부는 분리되고 일부는 합쳐진다. 셀로판지를 덧댄 것 같은 붉은 세상 옆으로 어둠이 뿌리내린다. 두근거림은 전에 없이 크고 선명하다. 둥둥거리는 북소리를 따라 비릿한 향이 세찬 기운을 뿜어낸다. 나는 내게 남은 시간을 헤아린다.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걸 안다. 잠시 사라지는 차를 보았던 것 같다. 검고 틈새가 벌어진 벽에 반짝거리는 가루가 묻어있다. 바작 바작. 모래알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거대한 발이 벽을 타고 달려와 말을 건다. 그가 나를 흔든다. 지진파처럼 크고 둥글게 오르내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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