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전우형 Feb 01. 2023

입 트인 김에

에세이

  잠수함 이야기를 좀 더 풀어보려 합니다. 갑자기 즐거워지네요.(어라?) 그런데 어색하고 생소한 느낌이 앞섭니다. 사이가 틀어져서 오랫동안 연락을 끊은 친구와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나 서먹하게 서로를 쳐다보다가 '00 맞지?'하고 조심스레 물었는데 '싱겁기는. 밥은 먹었냐?' 하고 함께 식당에 들어가 앉은 기분입니다. 제가 잠수함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건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그 자리가 밟을 때마다 쿡쿡 쑤셨거든요. 고통을 딛고 그 이야기에 몰입하는 건 어쩌면 그 일을 다시 겪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통이 고스란히 묻은 채로 뭔가를 쓰면 문장에서 짠내가 납니다. 심해지면 피비린내 같은 게 맡아지기도 하고요. 제 이야기가 아닌 걸로 그렇게 쓸 수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유능한 소설가일 텐데, 아직 제게 그런 기능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상처가 아무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상처를 완전히 잊어버리는데 필요한 시간은 훨씬 더 기다는걸 내내 느껴왔거든요. 언젠가 의사 소견서에 쓰였던 문장처럼 '0일간 안정가료를 요함' 정도로는 어림없는 일인 건 분명합니다. 그만큼 잠수함은 제가 모든 걸 걸고 뛰어들었고, 그 이상으로 버텼고, 결국 패가망신한 도박사처럼 만신창이가 된 채로 제 발로 걸어 나오고 만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제 발로 걸어 나왔다'는 표현에 대해 재고의 여지가 충분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게 '이곳은 네게 어울리지 않아. 그만 포기하고 딴 길 찾아.' 하고 등 떠민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저는 스스로 잠수함 승조자격 해지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딱 일 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해온 게 아깝지 않니, 조금 더 버텨보자, 위기 한두 번쯤은 다들 찾아와, 여기 그런 일 안 겪은 사람 없어, 조금 쉬면서 다시 생각해 보자, 부서를 바꿔보는 건 어때, 지금 같은 상태에서는 중요한 결정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다들 괜찮아지고 나면 후회하세요...


**


  잠수함 승조자격 해지가 전역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잠수함 또는 잠수함과 관련된 육상보직에서 일할 수 없게 될 뿐입니다. 그리고 그건 당시의 제가 유일하게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원하던 것'이라는 말에 설명을 조금 보태어야겠네요. 그때쯤 제가 늘 생각하던 문장의 끝마디는 '그만하고 싶다'였습니다. 그만하고 '싶다'는 말 역시 어떤 상태에 대한 바람을 담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무(無)'를 바라는 것. 그것은 실은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제가 우울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입니다. 줄여 말하면 '극도의 무력감'입니다. '활력이 0에 수렴해서 작은 일 하나 해내기도 극히 어려운 상태'로도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내는 건 아닙니다. 타의가 아니고서는 스스로를 움직일 어떤 당위도 내부에 존재하지 않을 뿐입지요. 물론 그 '타의'도 강도에 따라 나뉘긴 합니다만. 아무튼 그랬던 제가 스스로 막무가내 식으로 결정했던 유일한 선택이 '잠수함 승조자격 해지'였습니다. 숨 좀 편하게 쉬고 싶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도무지 거기 붙은 공간들에 앉은 동안은 호흡이 어려웠거든요.   


  제가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 자격이지만 잠수함 승조자격은 꽤 쓸만한 자격이었습니다. 당시 잠수함 부대는(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블루 오션이었거든요. 버티기만 하면 미래가 보장되는 곳이었습니다. 신형 잠수함이 건조되고 척수가 늘어날수록 부대는 커지기 마련입니다. 새 잠수함의 승조원을 선발하고 양성하고 교육해야 하고, 부대 창설도 뒤따릅니다. 부대 창설은 곧 '자리'가 늘어난다는 말과 같습니다. 군은 피라미드 구조라 계급이 오를수록 자리는 줄어듭니다. 자연스레 진급에 실패할 확률도 높아집니다. '자리'가 부족하니 진급 인원에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잠수함 부대는 상황이 다릅니다. 교육과 정비 등에 필요한 부서 증설도 뒤따릅니다. 잠수함 전력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도 이견이 없습니다. 이미 중장기 계획에 신규 잠수함 건조 계획이나 부대 창설 계획 등이 반영되어 번복될 여지도 없습니다. 고된 근무 환경에 대한 어필을 통해 처우 개선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런 직장을 마다하는 건 굴러들어 온 복을 스스로 걷어차는 것과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내용들은 잠수함 부대가 어째서 늘 힘겹고 괴로운지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요소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인력난에 허덕입니다. 함정(누군가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한 그 '함정'과는 다릅니다. 함+정 해서 '함정'입니다.) 우선 충원 원칙에 따라 육상부서는 공석이 수두룩합니다.(그렇다고 해상부대가 편하다는 건 아닙니다.) 새로운 배가 만들어지면 인수팀을 꾸립니다. 인수팀은 배의 건조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조선소에서 함운용에 관한 교육을 받습니다. 진수(진수, 건조된 배를 물에 띄우는 걸 말합니다.)되고 나면 인수시운전과 전력화 과정을 거치고요. 달리 말해 이들은 현행 작전이나 업무에서 완전히 배제됩니다. 인원을 새로 뽑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충원된 인원이 오히려 업무에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고 일을 안 시키지 않는다는 거, 알만한 분들인 이미 아실 겁니다. 과중한 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정해진 근무 시간을 지키기는커녕 야근을 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도 없습니다. 상수처럼 일은 쌓여 있고 재촉하는 입만 부지기수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들을 실천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선미의 노래 제목처럼 '24시간이 모자랍'니다. 대체 전투하라고 만들어둔 군대가, 어쩌다 이토록 업무지옥이 되었나 싶을 정도로 한숨만 나옵니다.    


**


  '책임'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책임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맡은 직무에 따라 업무가 부여되기도 하지만 자기 영역이 아닌 일도 주어지면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곳이 군대입니다. 그리고 그런 특성을 남용하는 곳 역시 군대입니다. 책임은 '직책'과 함께 부여됩니다. 그리고 책임의 내용은 사무분장, 직무기술서 등 명칭은 다를 수 있지만 대개 규정으로 정해집니다. 또한 배치되는 부서에 따라 내부 인사명령을 통해 '무슨무슨 책임관' 따위가 부가적으로 주어집니다. 직책에 따라 수개에서 많게는 수십 개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것이 바로 '책임'입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데, 책임은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책임지는 분야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그 즉시 책임은 수면 위로 오릅니다. 하도록 되어 있는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한 땀 한 땀 재고 따지며 책임 '추궁'을 시작합니다. 진단, 감사, 점검 등은 이름과 주관 부서, 먼지떨이의 수준 등이 다를 뿐 원리는 동일합니다. 하도록 명시되어 있는 일들을 했는가, 안 했는가. 그래서 네게 죄가 있는가, 죄가 없는가. 재판이 시작되죠.


  그런데 책임들이 장교에게는 징그럽게 많이 붙습니다. 장담하건대 거기 적힌 일들을 모두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지구인 중에는 없을 겁니다.(혹시 있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을 외계인으로 규정하겠습니다.) 그래서 장교들은 신앙심이 투철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면 아랫사람을 잡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이 책임으로부터 안전하려면(속된 말로 나는 책임 없어! 하고 직업을 보존하려면) 거기 적힌 일들을 다 해야 합니다. 혹은 하지 않았어도 한 것처럼 서류라도 꾸며 두어야 합니다. 서류로 꾸미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상에 붙어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처리해야 할 공문이 루틴으로 하루 수십 개인데 당면한 상황이 그렇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그러니까 잠을 못 잡니다. 부정직한 사람은 아랫사람을 잠을 못 자게 합니다. 잠을 못 잔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같은 말을 또 합니다. 들은 말을 쉽게 잊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결정을 내립니다. 했던 일을 또 하게 합니다. 그러다 혼이 나서 돌아옵니다. 기분이 안 좋습니다. 화를 자주 냅니다. 그러다 일할 시간마저 빼앗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괴롭게 살며 인사 시기만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른 부대로 가서 같은 일을 반복합니다. 군대를 떠난 요즘 제가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잠을 충분히 주무셔야 해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잠수함 부대는 분위기가 안좋(았)습니다. 물론 현재 상황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스무 명이 넘던 잠수함 동기들 중 삼분의 일 남짓한 인원만 아직 남아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부사관들이 줄줄이 떠나 상사가 막내라는 말도 얼핏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막내'란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거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어린 사람을 뜻할 뿐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직별장을 할 사람이 잠수함 부대에서는 막내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승조원이 전원 간부(부사관 이상)로 구성된 잠수함에서는 그런 일이 더 자주 발생합니다. 


  얼마 전 그런 동기 중 한 명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면서. 저는 응원과 위로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과연 답이 있을까,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사람은 일하는 기계가 아니므로 그들에게 건강 문제가(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발생하는 건 필연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일이 힘들어도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는 기조라도 형성되면 그나마 나을 텐데요. 하지만 그게 가능할지 확신은 서지 않습니다.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악의를 인간이 온전히 감당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결혼기념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