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전우형 Feb 02. 2023

그곳이 어디든

에세이

퇴근길에 그림자가 눈에 밟혔습니다. 길가에 선 나무 밑동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는 옆에서 노란빛을 발하는 가로등과 정반대로 발을 뻗고 있었습니다. 저는 발끝을 세우고 조심조심 그 길을 지나쳐 왔습니다. 그런 저를 따라 제 그림자도 뾰족하고 길어졌습니다. 저는 그들의 그림자를 피해 걸었지만 저의 그림자는 그들과 몇 번이고 만났다 헤어졌습니다. 저는 늘 저의 그림자를 의식하며 살아왔습니다. 저를 닮아 검고 납작하고 수시로 변하는 그 그림자가 제가 그토록 숨기려고 하는 저의 어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주워 담을 수 없는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몸을 움츠려도 그림자는 남았습니다. 파르르 떨며 몸을 세워도 그림자는 자꾸만 다른 곳에 닿았습니다. 엉키고 들러붙어서 잘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제가 다가갈수록 오히려 그림자는 그들 속으로 침습하듯 숨어 버렸습니다. 저는 더 다가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퇴근길에 그림자가 눈에 밟혔습니다. 그림자가 눈에 밟힌 건 제가 여전히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어둠이 두렵습니다. 여전히 정제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정제되지 않을 그 어둠들로부터 어떤 괴물이 튀어나올까 조마조마합니다. 그 괴물이 제가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헤칠까 겁이 납니다. 그래서 마음의 2할 이상 열 수 없나 봅니다. 최선을 다해 사람을 사랑할 수 없나 봅니다. 여전히 눈이 녹지 못한 곳도 같은 이유겠지요. 거기 숨어 파수병처럼 무언가를 지키는 모습이 느껴지지만 그들이 과연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키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거리감입니다. 나의 어둠을 당신에게 묻히지 않을 거리. 당신이 지키려고 하는 무언가를 내가 망가뜨리지 않을 거리. 나의 인간다움이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을 거리. 서로의 우울이 인력(引力)에 묶이지 않을 거리.


저에게도 양지가 남아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의 그늘을 피해 걸을 공간이 아주 조금이라도. 그래서 제가 다가갔을 때 당신이 춥지 않길 바랍니다. 울음이 메아리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리 내어 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목놓아 울어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조차도 나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그런 곳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그의 심장에만 들리도록 아주 작게 말하고 싶습니다. 내내 기다려왔다고. 잠시만,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나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작가의 이전글 입 트인 김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