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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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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May 02. 2023

그해 여름(73)

73.

73.


  누군가를 기억하고자 할 때 인간은 자신의 일부를 그 사람에게 맡긴다. 사람들은 그것을 흔히 돈이나 물건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돈이나 물건을 떼어주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쉬운 방법 이어서다. 적어도 눈이나 팔다리 한 짝을 떼어주는 것보다는 그 방법이 훨씬 더 쉬울 테니. 기억의 방식은 일반적인 교환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돈이나 물건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을 나의 기억에서 지우거나, 그의 기억에서 나를 덜어내기 위한 가장 손쉬운 장치일 뿐이다. 헤어졌을 때 그 사람에게서 받은 물건을 모두 정리해 버리는 것만큼 간편한 버튼이 또 있을까. 기억은 결국 시간의 교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내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모으거나 남에게 줄 수 없는 것.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무한정 모을 수도 없고 계급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주어진 만큼만 사용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쓰기에 따라 무한해질 수도, 한없이 초라하고 비루해질 수도 있는 것. 누군가는 거푸 버리고 또 버려도 징그러울 만큼 남아돌고, 누군가에게는 일분일초를 다툴 만큼 상대적 가치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 그런 시간을 소비함으로써 우리는 상대의 기억을 얻는다. 또한 그런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상대의 기억에 남는다. 순간을 함께 하는 것. 나의 시간을 상대방에게 맡겨두는 것. 곧, 나의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일부를 그에게 양도하는 것. 기억은 시간의 묵묵한 노동을 통해 조각을 새기듯 빈 벽에 각인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에는 돈이나 물건이 작용할 틈은 없다.      


**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다가갔을 때 희영은 찜기에서 만두를 꺼내고 있었다. 희영의 안경에는 하얀 성애가 껴 있었다. 희영은 내게 보이도록 얼굴을 들어 보이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웃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희영의 눈썹 끝이 쳐졌다. 

  안 웃겨? 

  아니, 웃겨. 

  하나도 안 웃긴 표정인데? 

  내 얼굴이 원래 그래. 밝아도 밝은 티가 안 나.

  그래?

  희영은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골동품을 감정하는듯한 눈길이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 말했다. 

  빈 병. 빈 병 같아 너는. 

  쓰고 남은 빈 병. 투명해서 안이 모조리 들여다보이는 빈 병. 무엇으로든 안을 다시 채워야 할 것 같은 빈 병. 그러나 이제는 그 안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가늠할 수 없게 된 빈 병. 쓸모를 완전히 읽은 빈 껍데기.     


**     


  그러나 계절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긴 그림도 한순간에 찢겨 나가듯, 어떤 기억은 만들어지는 데는 오래 걸리는 반면, 수명은 짧다. 망각을 신의 축복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남아있음으로써 고통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기억들도 있다. 영원한 기억이란 영원한 고통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기억의 저장 방식과 소거 방식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바위가 풍화되듯 뾰족하던 모서리가 서서히 둥글어진다. 또 어떤 사람은 바람이 한 꺼풀씩 칠을 벗겨내는 방식으로 기억의 명도와 채도를 단계적으로 잃어간다. 나는 그 어느 쪽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두 가지 방식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다. 나는 기억을 잃어가는 속도가 빠르다. 흐릿해지는 과정도 거치지 않고 노트 한 장을 북 찢어내듯 어딘가에 구멍이 난다. 기억이 흩어졌다는 걸 알아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암기한 자료를 잊어버린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시간은 없었던 것처럼 위화감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오로지 깨끗하고 티 없는 그 느낌이 단서가 되어 내게서 무언가가 사라졌음을 알린다. 몸의 시간과 정신의 시간이 점차 유리된다. 시간의 질량보다 심하게 가벼운 기억의 질량을 저울질해 본다. 정신이 혼몽한 상태로 걸어가는 것처럼 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다. 엎드려 잠들어도 영혼의 한쪽은 나를 비추며 해 질 녘처럼 기울어간다. 붉고 푸르고 노랗고 검게 물든다. 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고요한 정신에 한줄기 벼락을 내리친다. 나는 놀라고 또 놀란다. 기겁하는 한편으로 돌아선다. 이 삶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 앞에 낭떠러지처럼 선다. 아래를 보고 앞을 본다. 파도처럼 이는 어지럼증에 몸을 맡긴다. 진득한 소금기를 구태여 씻어내려 애쓰지 않는다. 그렇게 굳어간다. 그 순간의 고통에 나를 비빈다. 그것이 유일한 평화의 징조인 것처럼, 나는 그런 나를 멀리서 그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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