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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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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May 04. 2023

그해 여름(74)

74.

  74.     


  말벌 한 마리가 카페로 날아들어왔다. 그 녀석은 하늘처럼 뻥 뚫린 거대한 유리창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를 반복했다. 유리창에는 희미한 실금조차 생기지 않았다. 말벌은 유리창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수직으로 세워진 유리창을 평지처럼 유유자적 기어 다녔다. 나는 그 모습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말벌은 무거운 팔다리를 풀어주기라도 하듯 여섯 개 다리 중 한두 개씩을 살짝살짝 들어가며 몇 번씩 털었다. 가끔은 얼음을 쥐고 있다가 견디지 못하고 떨어트리듯 비틀거리기도 했다. 암벽등반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 치고는 지극히 평온한 모습이었다. 저 녀석은 중력의 영향도 받지 않나. 나는 생각했다. 그러다 설핏 떠올렸다. 중력에 묶이지 않는 것은 지구에 붙어 있을 수 없다는 물리 선생님의 말이. 


  잠시 다른 일을 하다가 거기를 다시 봤을 때는 말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작은 파리 한 마리가 비슷한 식으로 유리창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파리의 실루엣은 하얀 구름 위에도 얹혔고 다른 날보다 유독 연해보이는 하늘색과도 겹쳤다. 파리는 도화지에 찍어둔 까만 점처럼 보였다. 움직이는 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점. 손에 잡히지 않지만 시야에 늘 거슬리는 점. 어디선가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점. 눈이 부시지 않을 만큼 딱 좋은 하늘이었다. 혼자라는 것 빼고는.      


  희영은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너는 혼자가 어울린다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런가? 하고 말했다. 혼자가 어울린다는 말을 곱씹고 있을 때 희영은 또 이렇게 말했다. 대단한 거야. 혼자여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는 건. 나는 또 그런가? 하고 대답하며 신발코로 바닥을 툭툭 찼다. 공연히 걷어 차인 돌멩이가 몇 바퀴 굴러가다 멈췄다.      


  희영은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그녀가 나 몰래 분명 펼쳐보고 있을 수첩 하나를 생각했다. 그 속에는 그녀가 관찰한 수많은 것들이 담겨 있겠지. 그중에는 나도 있겠지. 궁금했다. '나'라는 사람은 그 백과사전에서 어떤 명사로 이름 붙여져 있을지. 그 아래에는 어떤 내용이 쓰여 있을지. 그 수첩은 스스로 덩치를 불려 갈 테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많은 것들은 여전히 오해였을 것이다. 관찰이 진실과 접촉할 확률은 높지 않으니까. 나는 혼자인 게 끔찍하게 싫었고 생각보다 자주, 외로워했다. 혼자를 즐겼던 건 맞지만 혼자인 게 좋았던 건 아냐,라고 말했을 때 희영은 그거랑 그게 뭐가 달라? 하고 물었다. 음... 그럼, 이렇게 설명해 볼까?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게 혼자가 되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고. 


  곁을 내어주는 일은 갓길도 없는 도로를 혼자 걷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일이었어. 어깨 바로 옆을 쌩쌩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지. 무신경하게 나를 치고도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걸 아무렇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나는 싫었어. 그런 일들이. 그런 상황들이 끔찍했어. 나는 무능했으니까. 피하기 바빴던 거야. 초조해하고 미리 걱정하고 예측해서 비켜가고 나중에는 내 몫이 아닌 일까지 신경 써야 했어. 지긋지긋해졌지.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고작 그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면 갑자기 피곤해졌어. 나는 작은 흠집 하나 없이 차를 타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뻥 뚫린, 아무도 달리지 않는 도로를 찾아다녔어. 하지만 알잖아. 그런 도로는 없다는 걸. 그런 도로일수록 가장 먼저, 사라진다는 걸.

     

  그때 왜 아빠가 생각났을까. 내가 갑자기 아빠 이야기를 꺼냈을 때 희영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다. 숨죽여 귀 기울이는 그녀의 모습은 내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아빠는 이름이 영희였어. 영희. 우습지? 놀림을 하도 받아서 킥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대. 그 녀석들을 좀 때려주려고. 한 달을 배우고 따지러 갔다가 학교에서 짱 먹던 아이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렸대. 그게 계기였지. 그때부터 독하게 연습했대. 학교만 마치고 나면 체육관에 살다시피 하며 관장님도 말릴 정도로 열심히 했대. 그러다 어느 순간 느꼈다더라. 이 발차기로 사람을 때리면 정말 죽겠구나. 재밌는 건 그 발차기가 자기가 한 게 아니었다는 거야. 호기롭게 관장님이랑 하던 스파링에서 아빠는 헤드기어를 벗어던졌대. 안 될 텐데. 관장님 표정이 살짝 굳었고, 그리고 바로 기절. 발차기 한방이었대. 놀리던 친구 얼굴을 벽에서 때 버린 건 그즈음이었대. 때리려고만 말고, 넌 먼저 제대로 맞는 법부터 익혀야 돼, 알겠냐. 관장님이 하신 말씀이 내내 머리를 맴돌았대. 잘 때도, 걸을 때도, 수업 중에도. 관장님을 다시 찾아가서 말했대. 킥복싱, 제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그때 또 그러셨대. 안 될 텐데. 그 말이 듣기 싫어서 꼭 해낼 거라고. 시작하고 나서는 매일 후회했대. 죽을 것 같았서.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뱉은 말이 있으니까. 그때는 나도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 줄 몰랐다. 몰랐으니까 했던 거지. 아빠가 가끔 술에 취해 있지 않을 때 하던 말이었어. 나는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지.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거든.

     

  엄마가 장례 다 치르고 나서 말해준 건데. 그날도 그랬대. 아빠가 회식 자리에서 빈정거리던 코치 한 사람을 반 병신으로 만들어버렸던 날. 프로 데뷔전에서 절름발이 된 놈이 뭘 가르친다고. 아빠는 이미 그런 말쯤은 하도 들어와서 별 감정도 들지 않았대. 그런데 끝내 이 인간이 아빠 이름까지 물고 늘어진 거야. 영희가 뭐야, 영희가. 계집애도 아니고. 의외로 아빠는 아무 반응도 없었대. 그런데 그날이 부부 동반이었거든. 엄마는 당장 일어나서 따졌대. 사과하세요, 어서. 한참을 어이없다는 듯이 엄마를 쳐다보다가 코치는 돌아앉았대. 그리고 소주 몇 잔을 거푸 더 마셨지. 사방이 조용해졌는데 그 사람 소주잔 내려놓는 소리만 탁 탁 들렸대. 엄마는 물러설 생각이 없으셨나 봐. 그 후로 한 십 분을 그 사람 옆에 바짝 붙어서 서 있었대. 아빠가 이리 와서 앉으라고 말해도 듣지 않았대. 술 취한 코치가 벌떡 일어섰고, 엄마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며 밀었대. 사과? 사과? 그때였대. 늘 절뚝거리던 아빠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달려든 건. 아무도 아빠를 말릴 수 없었대. 그때 엄마 뱃속에 내가 있었대.     


  아빠랑 있으면 든든했대. 엄마도 겁이 많았거든. 중요한 조각 하나를 잃어버려서라고 그랬어. 아빠가 그렇게 된 건. 그땐 그냥 그렇구나,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뭐,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해. 나는 그런 든든한 아빠, 만져본 적이 없었거든. 

     

  희영은 그래도 좋았겠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내 기분을 확 상하게 했었나 보다. 그래서 없는 게 나을 때도 있어,라고 크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희영에게 큰 소리를 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뭐가 좋았겠다는 거야, 알지도 못하면서. 나는 쏘아붙였다. 불우한 과거가 마치 희영의 책임인 것처럼 날을 세웠다.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하는 희영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 희영은 울었고, 나는 울지 않았다. 그때부터 희영은 내가 몇 번을 더 미안하다고 말해도 멈추지 않고 한참을 더 엉엉 울었다. 네가 안 울어서 너 대신 두 사람 몫을 울었던 거라고 희영은 나중에 말해 주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희영은 갑자기 나를 작은 골방으로 데리고 갔다. 쪽문 안은 의외로 넓어서 작은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냉장고도 설치돼 있을 정도였다. 여기 데려온 건 비밀이야, 하고 희영은 부은 눈으로 말했다. 배고프지? 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희영은 가스 불을 켰다. 낡고 칠이 벗겨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몇 번 두르더니 냉장고에서 꺼내 온 계란 세 알을 부침개로 탁탁 두드려 깼다. 


  그녀는 혼자 밥을 차려먹는 일에 능숙한 것 같았다. 잔손질 없이 척척 해내는 모양새가 그랬다. 계란밥이야. 먹자, 배고프지? 희영은 또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얹고 잘게 찢은 김과 깨를 그 위에 뿌렸다. 언제 했는지 안쪽에도 간장으로 간이 돼 있어서 제법 많았던 밥은 금세 뱃속으로 사라졌다. 부지런히 밥을 우물거리는 사이에도 희영은 넌 특별히 두 개야, 하고 계란 노른자 개수를 짚어 주었다. 


  집에서 며칠을 혼자 있는데, 배가 너무 고픈 거야, 하고 희영은 운을 떼었다. 집에는 나랑 피아노 밖에 없었거든. 그때 너도 봤지? 왜 미사 때 있잖아. 내가 반주자로 앉아 있었잖아. 설마 너 못 본거야? 부러 엄청 열심히 쳤는데. 희영은 제멋대로 실망하고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그 피아노가 집에 있던 건데 크기가 방 하나만 했거든. 희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양팔을 쭉 펼쳐 보였다. 나는 문득 웃음이 튀어나왔다. 왜 웃어? 팔은 가느다란데 옷만 풍덩한 게 웃겨서. 그래? 하며 희영은 고개를 숙이고 이리저리 돌아보며 옷매무새를 살피다가 그런가? 많이 커 보여? 하고 또 물었다.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희영은 풀이 죽었다. 이것도 수녀님한테 하나 얻어 입은 건데. 매일 같은 옷만 입기 그래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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