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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은 옷. 그랬던가. 하지만 희영이 넌 하루도 같은 적이 없었는데. 그 말이 입안을 맴돌았다. 장난이야, 그만 두리번거려. 내가 말했다. 그래서, 그 피아노가 너네 집에 있던 거라는 거야? 희영은 맞다, 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응. 며칠을 굶다가 동네 성당을 갔는데 미사가 한창이었어. 수녀님이 입구를 서성이는 내게 손짓했어. 혼자 왔니? 하고 물으셨지. 나는 수녀님 손에 이끌러 맨 구석자리에 앉았어. 수녀님은 내 옆자리에 앉아 손을 꼭 잡으며 나와 눈을 맞췄어. 혼자 있을 수 있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수녀님은 조금 더 나를 지켜보다가 조용히 저쪽으로 갔어.
나는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없는 사람처럼 거기 앉아 있었어. 사실 배가 너무 고파서 말할 기운도 없었거든. 수녀님이 빵이 담긴 봉지를 옆에 놓으며 말씀하셨어. 이거 가지고 가렴. 너한테만 주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말고. 나는 수녀님을 빤히 쳐다봤어. 왜? 혹시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니? 나는 아니요, 하고 작게 말했어. 아니요, 아니에요. 아무 일도 없어요. 수녀님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래, 하고 먼저 일어나셨어.
멀어지는 수녀님을 보며 생각했던 것 같아. 만약 엄마가 살아있다면 저런 모습이었을까. 누가 봐도 잔뜩 담은 것 같은 빵 봉지를 주며 너한테만 주는 거 아냐, 다들 똑같이 주는 거야, 하셨을까. 엄마는 얼마나, 어떻게 나이 들었을까. 나와 함께 문방구에 가서 줄노트 열 권 묶음을 손에 쥐어 줬을까. 내가 말했던가? 엄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만약 그때 내가 죽고 엄마가 살았다면 엄마도 내 또래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을까. 그 아이가 살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떻게 자라났을까. 그렇게 궁금해했을까. 슬펐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했다. 그랬던가.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살아가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이름이 뒤섞일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면 경계가 느슨해졌다. 둥글게 굴러다니는 기억들이, 초점이 흐린 사진 속 얼굴처럼 모두가 똑같이 느껴졌다. 아무렇게나 턱, 자석처럼 탁. 어디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를 보아도 진짜 같지 않았다. 바둑알을 처음 놓을 때처럼 손이 떨리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성당에 혼자 사는 아이였다. 부모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사람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걸 묻는 일 자체가 실례라고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늘 씩씩한 척하는 아이. 그래서 더 외로워 보이는 아이. 칭얼거릴 곳을 잃어서 눈물샘이 굳어버린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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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안 거야. 너를 매일 보던 그 반년동안 내가 밤마다 울지 않았다는 걸. 출근 도장처럼 찍히던 나쁜 일들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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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봉지를 들고 돌아오는데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어.
갑작스럽게 멍한 표정이 된 나를 물끄러미 보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던 희영이 참았던 숨을 내쉬듯 말했다.
그날따라 잡초가 참 무심히도 자라 있더라. 먹을 것도 없는데 어디서 그렇게 기운을 얻어오는지. 대체 뭘로 그렇게 살아남는지. 나도 차라리 풀이었으면 싶었어. 그때 저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다가가보니까 고양이 한 마리가 이상한 자세로 늘어져 있는 거야. 꼬리가 물먹은 털실처럼 풀섶에 흐트러진 게 심상치 않아 보였어. 보통 고양이는 꼬리가 엄청 민첩하거든. 뱀처럼 징그러울 때도 있을 정도로. 엎드려 있어도 꼬리가 멈추는 경우는 거의 없어. 관절이 너무 많아서 부러지면 치료도 어렵고. 거의 부러진 모양 그대로 산대. 가만 보니까 다리가 더 부자연스러웠어. 제멋대로 엉킨 뒷다리 두 개가 앞발을 박아 몸을 당길 때마다 가늠할 수 없이 덜렁거렸어. 눈에 띄는 큰 상처도 몇 개나 있었고. 여러 걸음 앞에서도 보일만한 심한 상처였어. 잔뜩 흐른 피에 흙먼지가 굳어서 군데군데 검붉게 털이 뭉쳐 있었어. 작고 긴 녀석이었는데 어쩌다.
아마 달아나려고 했을 거야. 그러다 안되니까 나를 노려보며 하악질을 했었겠지. 고양이는 아프면 그러거든. 개랑은 달라서 아프면 오히려 씩씩거리거든. 괜찮을 때는 안 그래. 멀리 도망가지도 않아.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가 더 가까워질 것 같으면 쏜살같이 달아나. 아니면 벽을 타고 올라가 버리거나. 전에 새끼 고양이를 잠시 키운 적이 있었거든. 일주일도 안된 녀석이 그 작은 발톱을 케이지에 걸고 벽을 오르더라. 본능이라는 거지. 아무튼 고양이는 아프면 숨기려고 한데. 들키면 공격당할까 봐 사력을 다해 감춘데.
살기를 너무 뿜어대서 치료해주고 싶은데 다가갈 수가 없었어. 성당에 강아지도 한 마리 키우거든? 그 아인 정말 달라. 발이라도 살짝 밟히면 얼마나 보란 듯이 낑낑거리는지. 내가 못 알아봤다 싶으면 아예 다리 한쪽을 절고 다녀. 자기 좀 봐달라고.
밤에 다시 나가보니까 그 아이 숨이 꺼지기 직전이었어. 못쓰는 케이지를 하나 주워다가 옆에 두고 물이랑 빵을 찢어서 안에 넣어뒀어. 나는 창문으로 보고 있었지.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거기로 들어가서 물을 몇 번 할짝이더라고. 공격당할까 봐 불안해서 잠도 안 왔어. 살짝 잠든 틈에 케이지 입구를 닫았지. 그 몸으로 와락 달려들어서 얼마나 놀랐던지. 맹수는 맹수더라고.
다음날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케이지에 밧줄을 걸고 성당으로 갔어. 치료도 해야 할 것 같고 사료도 없었거든. 그 수녀님과 또 마주쳤어. 이리 내려놓으렴. 어쩜. 많이 다쳤구나. 어떻게 된 건지 아니? 나는 머리를 흔들었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거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말했어. 죽을 것 같아서요. 몇 사람이 더 몰려와서 고양이를 봤는데 다들 인상이 좋지 않았어. 어서 동물병원을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차로 한 시간은 나가야 있을걸?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게 들렸어. 그때 나는 다짜고짜 집에 있는 그랜드피아노 이야기를 꺼냈어. 저한테 크고 좋은 피아노가 있어요. 그걸 드릴 테니 이 아이 좀 치료해 주세요. 사람들은 모두 날 쳐다봤어. 그렇게 많은 시선을 한 번에 받은 건 처음이었어. 나는 부끄럽지만 덧붙였어. 저 피아노도 칠 줄 알아요. 시키는 건 뭐든 할게요. 이 아이 좀 살려주세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