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72)

72.

by 작가 전우형

72.


희영은 성호 곁을 맴돌았다. 나는 일주일을 고민했다. 입술을 자꾸 만지작거리다 마는 내게 희영이 웃으며 말했다.

“넌 궁금한 게 다 티가 나. 내가 답답한 거지?”

나는 둑이 터지듯 미루어 두었던 질문을 던졌다.

“넌 쟤가 어디가 좋아?”

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희영이 어떤 말을 그토록 오래 고민하는 모습을 나는 그날 처음 보았다. 희영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이미 겪어본 사람처럼 거침없이 말해 왔으니까.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은 더 뜻밖이었다.

“그런데에도 이유가 필요해?”


언젠가 비슷한 질문을 이미 한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

“엄마는 아빠가 어디가 좋아?”

그때 엄마의 대답은 이랬다.

“나를 좋아해 주니까.”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손 아래 단단하게 뭉친 부위로 가슴을 꾹꾹 눌러도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좋아한다고? 누가? 아빠가? 엄마를? 우리를?”


쏘아붙이는 나를 엄마는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내 머리부터 볼을 몇 번이나 힘주어 쓰다듬었다. 엄마는 말했다. 어른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들이 있다고. 살다 보면 처음에는 분명했던 이유 같은 것들이 사라지고, 그런 것들이 다 사라져도 상관없어지는 순간이 온다고. 그 말을 나는 그때도 지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좋아하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이유가 되나? 폭력과 무시와 폭언과 비난을 견딜 이유가 되나. 그건 엄마 말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해 여름, 아빠는 죽었다. 술에 취해 거리를 걷다가 대낮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빗길에 미끄러진 자동차가 인도를 덮쳤다. 하필 그 인도 위에 고주망태로 주저앉아 있던 아빠가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는 피하려고 몸부림을 치긴 했을까. 그 빠른 손과 발을. 보이지도 않게 자식의 뺨을 후려치던 매서운 몸놀림을. 자신의 끝을 지연시키기 위해 제대로 사용해 보긴 했을까.


아빠는 중학생 때부터 킥복싱을 배웠다. 유망주라 불리며 갖은 고생을 하던 아빠는 프로 데뷔전 무대에서 무릎이 돌아가고 정강이 뼈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 세계에서는 잦은 일이라고, 그날 병원에 찾아간 엄마에게 아빠는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아빠는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게 됐다. 매일 웃기만 하던 아빠가 알코올중독이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몇 번의 싸움 끝에 아빠는 직장을 완전히 잃었다. 매번 직장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아빠에게 새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체육관 관장님이 집에 널브러진 아빠를 불러 마지막이라며 맡긴 일이 체육관 임시 코치직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었다.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을 것. 아빠는 한동안 그 약속을 묵묵히 지켰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가르치는 데에도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아빠가 코칭한 선수들이 프로 데뷔에 줄줄이 성공해 좋은 성적을 거두자, 체육관에서는 아빠를 정식으로 고용했다. 그즈음 아빠는 끊었던 술을 다시 시작했던 것 같다. 공식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선수라며 아빠의 경력을 조리돌림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아빠는 회식 자리에서 절룩거리는 한쪽 다리로 그 코치들 중 한 명을 반병신으로 만들어버렸다. 거기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아빠를 말릴 수 없었다. 체육관에서는 당연히 잘렸고, 피해자는 합의를 거부했다. 아빠는 법정에서 그를 향해 침을 뱉었다. 징역을 살고 나온 아빠는 엄마와 나를 향해 그동안 휘두르지 못한 손과 발을 이자까지 쳐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빈소에 나는 검은 옷을 입은 엄마 옆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아빠 사진 앞에서 절을 두 번 했고, 엄마와 몇 마디를 나누다가 네가 영우냐,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씩씩하네, 울지도 않고, 라며 구겨진 지폐 몇 장을 주머니에 넣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새벽 두 시쯤, 그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들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눈물이 안 나오는데 어떡해? 이럴 땐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아빠의 생전이 담긴 모습을 돌아보았다.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엄마는 나를 아빠 앞으로 데려갔다.

“묻잖아, 네 아들이. 뭐라고 말 좀 해봐.”

눈도 깜박이지 않고 중얼거리던 엄마에게서도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손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식은 손을 엄마가 내내 비볐다. 그런 엄마의 손은 나보다 더 차가웠다.


나는 한참을 바닥만 보고 서 있었다. 그런 내게 희영이 말했다.

“그래도 지금이 나아. 네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어도 그건 변하지 않아.”

나는 그래,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솔직히 뭐라고 말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쩌면 성호에게 그랬던 대로, 그런 것도 같네,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멍해진 채로, 이쪽과 저쪽의 기억이 서로 겹쳐진 채로, 나는 성당을 돌아 나왔다. 비탈진 길을 걸어 내려오며, 나는 저 아래에 수직으로 치솟듯 꺾어지는 도로를 보았다. 그 길은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다. 나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불현듯 고개를 돌려 성당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거긴 아무도 없었다. 머리 위로 비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굵은 빗방울이 툭 투둑 하고 머리와 가방을 두드렸다. 분명한 소낙비였다. 나는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커다란 파란 비닐을 꺼내 가방에 씌웠다. 작년에 김장 배추를 담았던 비닐이었다.


비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렸다. 바람 하나 없는 소낙비였다. 교복은 금세 젖었다. 정수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서늘한 기운이 뜨겁던 머리를 식혀주는 느낌이 좋았다. 그 기운은 귀와 목을 지나 상의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팬티까지 축축하게 적신 그 기운은 허벅지와 종아리를 핥으며 발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바닥 곳곳에 흥건하게 물이 고인 곳이 보였다. 나는 일부러 그런 곳만 골라 밟았다. 한 번씩 몸이 부르르 떨렸다. 더운 여름에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감각이었다. 눈가의 물기를 닦아내도 시야는 계속해서 흐려졌다. 일그러진 상을 비추는 유리처럼, 눈앞의 세상이 흐트러진 점과 선들이 만든 투명한 궤적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언젠가 선루프가 제대로 닫히지 않는 SUV를 타고 자동세차기 안으로 들어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엄마와 나는 어깨로 떨어지는 비눗물을 피하느라 창가로 몸을 바짝 붙었다. 그래도 한두 방울씩 비눗물이 날아와 어깨와 소매를 적셨다. 아빠는 쯧쯧 하고 혀를 찼다. 그 쯧쯧 하는 소리가 나를 향한 것인지 그런 자동차를 향한 것인지 나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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