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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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도려내는지가 중요해. 뿌리가 서로 엉켜있을 때가 있거든. 잡초를 덜어내려고 하다가 화초까지 죽이는 수가 있어.”
희영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뿌리째 뽑혀 한쪽에 널브러진 잡초 더미를 향해 있었다. 그 짧은 무심함이 왠지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것 같았다. 희영은 눈을 쓰는듯한 목소리로 조금 먼 곳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런데 비슷하지? 살다 보면 내가 어디까지인지도 잘 모를 것 같을 때가 있어. 어디까지가 나고, 어디서부터가 남인지. 오랜 시간 함께 살면 서로 닮게 된다잖아. 가족처럼. 부부처럼.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그 사람이 좋아서 살고 있는 것뿐이면서. 다들 비겁해. 온갖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처럼 풀 죽은 얼굴로 늘 남 탓만 해.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는지 아냐고. 더는 못 살겠다고. 이 정도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고.”
희영의 미간에 잠깐동안 주름이 잡혔다가 사라졌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를 생각하다가 나는 잡초를 거머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투둑, 하고 잡초가 뜯겨 나왔다. 희영이 내게 말했다.
“뜯어내면 금세 또 자라나. 잡초는 질기거든. 뿌리까지 완전히 솎아내야 해. 이렇게.”
희영은 줄기를 더듬어 내려가며 손을 흙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윽고 드러난 것보다 훨씬 거대한 흙덩이가 딸려 나왔다. 나는 검은흙이 잔뜩 묻은 희영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벌레.”
희영은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잡초더미를 던졌다. 그녀는 손을 털며 뒤로 물러서다가 화단 모서리에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미안. 농담이었는데.”
희영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몇몇 사람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게 보였다. 희영은 한동안 나를 노려보다가 입술을 비틀어 깨물며 죽어, 하고 작게 말했다.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어. 흙 속으로 아무렇지 않게 손을 집어넣길래.”
희영은 입모양으로 이씨, 하고 말했다. 주변에는 수녀 복장을 한 사람들이 곳곳으로 흩어져 같은 자세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순간 그 일만이 가장 중요하고 숭고한 것처럼 집중하는 것 같았다. 거기서 작게나마 소란을 일으키는 존재는 우리 둘 뿐이었다.
매서운 인상에 얼굴이 가무잡잡한 신부님이 돌아다니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에 쥐어주기도 하시고 물 잔을 내밀거나 어깨를 주물러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진지한 자세로 눈을 마주쳤는데 그게 신부님의 고유한 인사법인 것 같았다. 나는 왠지 내게도 그 신부님이 와서 같은 일을 할까 봐 무서워졌다. 나는 희영에게 얼른 손을 뻗었다. 희영은 내 손을 탁 치고 일어섰다. 화단으로 가서 다시 무릎을 굽히고 앉는 희영에게 나는 또 벌레, 하고 말했다. 희영은 흠칫하며 동작을 멈췄다.
“어디야? 빨리 털어 줘.”
“...”
“너 또 거짓말이면.”
나는 이미 초록인지 파랑인지 모를 독특한 색상의 긴 의자에서 가방을 집어 들었다. 내가 멀어지는 동안 희영은 몸을 앞으로 엉거주춤하게 굽힌 채로 돌아서지 못했다. 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무당벌레처럼 발을 통통 튕기며 달려갔다. 저 뒤에서 몇 사람의 웃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성당에서 집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다. 물론 걸어서였다. 머리 위로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나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구름은 높은 곳에 짙은 하얀색으로 펼쳐져 있었다. 쏟아질 비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가방과 어깨 사이에 엄지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어중간한 비는 질색이었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동안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았다.
지난 일주일은 길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의 옆얼굴이 눈을 감을 때마다 풍선처럼 둥둥 떠다녔다. 느닷없이 얼굴이 뜨거워질 때도 있었다. 밤이면 열이 났다. 이마에 손을 대고 있으면 심장 위를 손바닥으로 누른 것처럼 진동이 묻어났다. 머릿속이 헝클어진 채로 잠이 들면, 처음 보는 장소에서 눈을 뜨곤 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이유도 모른 채로 나는 꼼짝없이 그 타박을 들어야만 했다.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거기서 도망치지 못했다. 그 아이의 분명한 눈이 서투르게 덮어두었던 속내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주눅 든 채로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든 후에는 그 아이가 보상이라도 주듯 내 손을 잡고 걸어 주었다. 그게 바보같이 좋아서 꿈에서 깬 뒤에도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눈을 떴을 때 여지없이 돌아올 무감각한 현실이 싫었다. 나는 그 주 일요일부터 성당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의 희영은 상처받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곱고 창백한 피부에는 자잘한 주근깨가 온점처럼 어려 있었고 도톰한 입매는 입술을 굳게 닫아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눈은 깊은 생각에 빠진 것처럼 조용했고, 평소에는 거의 말이 없었다. 찬물에 설거지한 손이 빨갛게 익었을 때도 희영은 동그랗게 말아쥔 손을 다른 손으로 가만히 감쌀 뿐이었다. 성당에 나오던 비슷한 나이대의 남학생 중 성호라는 아이가 있었다. 키가 컸고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상이었다. 성격은 오만하고 독선적이었다. 희영이 성호를 좋아하는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건 성호의 전매특허였다. 대화를 말싸움으로 알던 성호는 내가 A라고 물으면 B라고 했고, 그럼 B냐고 물으면 다시 A라고 했다. 아까는 B라고 하지 않았냐고 되물으면 내가 언제 B라고 했냐고 했다. 나는 그런 식의 말장난에 약했다. 화가 나고 답답해지면 치미는 말이 목젖 아래에서 알사탕처럼 걸렸다. 매번 자신이 이겼다는 느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건 질리는 일이었다. 자연스레 나는 성호와 거리가 멀어졌다. 어쩌다 만나도 서로 말없이 지나치는 사이가 됐다. 성호가 가끔 말을 걸어오긴 했지만 나는 아, 그래? 그런 것도 같네, 하는 식으로 끝을 맺었다. 그건 여러모로 유용한 방법이었다.
성호가 희영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았다. 성호는 희영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그러고 나서 그게 아니고 이거야, 또는 그럼 이렇게 하자는 말이지? 하고 정리해 버렸다. 희영이 다시 말하려 하면 됐어, 무슨 말하려는지 다 알겠는데,라고 하고는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듣기에 그건 희영이 말하려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지만 희영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때마다 내가 본 희영의 얼굴에는 체념과 슬픔이 반반씩 묻어있었다. 적어도 행복하거나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성호는 희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건 첫 장만 읽고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자신만큼은 희영의 속내를 전부 알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이 성호의 위대한 점이었다. 그런 사람과 이별하지 않는 방법은 그저 참아내는 방법뿐이었다. 성호는 방어적이었고, 자기 생각이나 의견이 시빗거리가 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때 내게 든 의문은 왜? 였다. 내가 엄마를 볼 때마다 매일 느꼈던 감정과 동류의 의문이었다. 대체 왜. 어떤 사람들은 발목을 접질린 사람처럼 사랑하는 걸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