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70)

70.

by 작가 전우형

70.


“너 매일 오는 그 애 맞지?"

나는 고개를 하늘로 치켜든 채 작게 끄덕였다. 그 후로 한동안 더 이상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아이가 어딘가로 가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렇게 빠른 거 같진 않은데, 하고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뻗고 있는 희영을 발견했다.


그녀의 길게 뻗어나간 목이 우주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빛으로 인해 하얗게 빛나는 것 같았다.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단 걸 아는지 모르는지, 희영은 그 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기다리다 내가, 뭘 그렇게 봐? 하고 물었을 때 희영은 눈을 한번 깜빡였다. 맺혔던 어떤 것이 유성처럼 또르르 더 먼 우주에서 덜 먼 우주로 흘러내리는걸 나는 본 것 같았다. 희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 저긴. 저 텅 빈 데에서 뭔가를 발견하는 건 인간뿐일 거야. 저토록 먼 곳을 쳐다볼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그럴만한 여유를 가진 존재도 오직 인간뿐이니까.”

그렇게 희영은 마치 자신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희영은 밤하늘을 보며, 별을 보며, 우주를 보며,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저 위에서 혹은 저 먼 데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편안했다. 서늘한 바람마저도. 추위를 잊게 하는 목소리였다.


“나무는 인간보다 강해. 훨씬 더 강하고 끈질겨. 버티고 견디며 때를 기다리고 낯선 땅 한가운데에서도 외로워하지 않아. 나무들은 아는 거야. 반드시 봄이 올 거라는 걸. 그들이 지금껏 살아남은 방식을 포기할 수 없는 거야, 그래서. 아니, 나무는 그렇게밖에는 살 수 없는 거야. 다른 방법 따윈 없는 거야. 오로지 그 방법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나무를 강하게 해. 견디게 해. 불타는 다리를 건너온 것처럼, 나무들에게 돌아갈 곳은 없어. 오로지 자신이 선 땅에 뿌리를 묻은 채로. 오직 거기서만 버티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살아갈 뿐이야.

우리가 어지럽지 않은 건 지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야. 인간은 지구 말고는 살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야. 우린 지구와 함께 돌고 있어. 지구가 아무리 빨리 돌아도, 그것 때문에 어지럼증을 느껴도, 우린 그걸 견뎌야만 하는 거야. 견디다 보면 사라지는 거야.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희영은 문득 나를 향해 물어 왔다.

“넌 뭘 보고 있었어, 그렇게 오랫동안?”


나는 압도당한 사람처럼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상한 애네, 하고 생각하며 거기서 도망쳤다. 한동안 그 성당에 다시 가지 않았다. 하굣길을 바꿔 더 멀리로 돌아 집으로 갔다. 조금 먼 고개 위로, 우뚝 솟은 성당의 꼭대기가 보였다. 왠지 거기서 그 여자애가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담장에 바짝 붙어서 걸었다. 나도 모르게 목과 어깨를 수그리고 빨리 걸었다.


다시 성당으로 간 것은 꼭 일주일 후였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과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교차했다. 예전처럼 성당 입구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지 못한 채 나는 밖에서 쭈뼛거렸다. 죄지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 밖이었다. 그걸 알려준 사람 역시 희영이었다.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그 가벼운 두드림이 나는 망치질처럼 투박하고 묵직하게 느껴졌다. 잘못 두드려서 구부러진 못처럼 서있는 내게 희영은 인사했다.

“지난번에 그 애 맞지? 또 왔네.”

인사가 너무 밝고 해맑아서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들어가자. 곧 미사 시간이야.”


나는 희영의 손에 이끌려 무시무시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도망치자면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희영의 손을 뿌리치고 싶지 않았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희영의 손은 의외로 억세고 거칠어서 마냥 여자손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전까지 엄마 이외의 여자에게 손을 붙잡혀 본 것이 처음이라, 나는 희영의 손이 마치 굳은살투성이었던 엄마손과 비슷하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희영은 편한 자리에 앉아, 하고 나를 세워두고는 긴 의자들을 밖으로 돌아 맨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녀가 앉은 곳 바로 앞에는 그랜드피아노가 있었다. 희영은 몇 사람과 반갑게 인사했다. 하지만 내게 했던 것과 달리, 그들에게 희영은 매우 조심스럽게 미소를 띠며 목례할 뿐이었다. 미사가 시작됐고, 나는 엉거주춤 앞사람을 보며 따라 하느라 바빴다. 일어서고 앉는 사람들 사이로 희영을 찾았을 때 그녀는 그랜드피아노 앞에 양손을 앞으로 뻗고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나는 긴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있었다. 혹시 그들이 내게 말을 걸으며 이것저것 물어올까 겁났다. 어디 살아요? 이름이 뭐예요? 성당은 오늘 처음 온 거예요? 몇 살이에요? 어느 학교 다녀요? 집은 여기서 멀어요? 그런 것들을 물어오고 나는 거기에 꼬박꼬박 대답해야 할까 봐 겁났다. 사람들을 힐끔거리며 자꾸만 벽을 향해 돌아앉는 내게 희영이 다가와서 톡톡,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저거 보여?”

나는 희영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세로로 긴 유리창에 복잡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각각의 칸은 채색돼 있었다. 희영이 말했다.

“스테인드 글라스란 거야.”

나는 조금 멍해진 채로 끄덕였다. 유리창에 채워진 색을 따라, 뻗어 나오는 빛도 색을 달리했다. 그림은 빛을 따라 안쪽으로 이어져 바닥에 다채로운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서서히 이동하는 내 시선을 바라보고 있다가 희영은, 예쁘지? 하고 말했다. 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가자. 화단을 가꿔야 해.”


사람들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멀리서 신부님이 우릴 보고 있었지만 다행히 다가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희영은 그쪽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곤 바보처럼 서있는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해가 내리쬐는 밖으로 나오자 나는 그동안 참았던 숨이 탁 하고 터져 나오는 걸 느꼈다. 그렇게 무시무시했어? 하고 희영이 물었다. 편해지라고 데려간 거였는데, 하고 이어 말했다. 희영은 이미 저쪽 담벼락 바로 옆의 화단에 다다라 있었다. 익숙한 장면이었다. 그때도 화단을 정리하고 있었던 거구나. 희영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옆에 앉았다. 희영은 작은 호미를 내밀었다. 쳐다보는 내 손에 희영은 그것을 단단히 쥐어주었다. 그리곤 말했다.

“나만 따라 하면 돼. 가방은 저기 내려놓고.”


희영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초록색처럼 보이기도 하고 파란색처럼 보이기도 하는 긴 나무의자가 있었다. 나는 그 위에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다시 그녀 옆에 쪼그려 앉았다. 오래 해온 듯 희영은 손짓에는 거침이 없었다. 잡초를 당겨서 뽑고 끊어진 뿌리는 호미로 캐냈다. 파낸 곳의 흙을 다지고, 물조리개로 화초에 물을 뿌렸다. 너무 많이 뿌리면 안 돼, 하고 희영은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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