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69)

69.

by 작가 전우형

69.


돌아갈 곳.

거긴 어딜까.

그런 곳이 있었나.

내게.


**


귀를 기울입니다. 이 고요가 싫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갗이 따끔거립니다. 얇은 카디건 자락이 몸을 스칠 때마다 파란 고통이 나를 질리게 합니다. 턱밑에서 시작된 열감이 목을 지나 가슴으로 치닫습니다. 입 안에서 피맛이 납니다. 실수로 깨문 자리를 혀로 핥습니다. 너덜거리는 살조각을, 어미 고양이가 갓 나은 새끼를 그루밍하듯 핥습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아이의 탯줄을 끊고 태반을 먹어 치웁니다. 피냄새를 맡고 천적이 몰려들지 않도록 흔적을 모조리 삼킵니다. 아이가 눈을 뜨고 움직일 때까지, 엉겨 붙은 털이 고슬고슬해질 때까지, 어미는 멈추지 않습니다. 나도 그렇게 합니다. 벌어진 자리가 아물 때까지, 혀끝이 까슬해질 때까지 핥습니다. 피맛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핥습니다.


왼쪽 골반의 멍자국 위에 한참 동안 비벼 열을 낸 손을 얹습니다. 미지근한 열기는 통증을 가라앉히지 못합니다. 망치로 벽을 때릴 때처럼 아린 진동이 저밉니다. 희미한 절개흔을 문지릅니다. 잊은 줄 알았던 고통이 점점 더 묵직해져 옵니다. 어디선가 또 피맛이 납니다.


고통이 온몸으로 퍼집니다. 심장이 피를 새로 밀어낼 때마다 고통은 잎맥처럼 촘촘하게 뻗은 혈관들을 타고 돕니다. 숨을 쌕쌕거리며 언덕과 고개를 넘습니다. 구슬땀을 훔치며 후들거리는 허벅지를 말아쥔 주먹으로 때립니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꽂습니다. 먼 곳으로부터 눈을 떼기로 합니다. 이제 한 발자국, 단 한 발자국만을 더 내딛기로 합니다. 그 이상은 생각하지도, 떠올리지도 않기로 합니다.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는 걸 압니다. 이제 나는 그렇게밖에 고통을 참을 수 없음을 압니다. 아프지 않다고 되뇝니다. 고통스럽지 않다고 되뇝니다. 보고 싶지 않다고 되뇝니다. 아무렇지 않다고 되뇝니다. 최면에 빠지듯, 최면에 걸리듯 나를 마비시킵니다. 정신과 감각과 고통을 마비시킵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서히 잦아듭니다. 모든 소란이 멀어집니다. 그 고요를 향해 귀를 모읍니다. 아주 작은 음악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의 웃음이 아른거립니다.


**


“사랑하면 안 되나 봐요, 나는.”

그 말을 끝으로 희영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는 잠이 들었다. 홑이불이 그녀의 고른 숨을 따라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이불 밖에 놓인 손이 차가웠다. 얼음에 덴 것처럼 나는 그녀의 손을 잠시 잡았다가 내려놓았다.


**


내가 희영을 처음 만난 곳은 공주의 한 성당이었다. 수수한 작업복 차림으로 화단을 정리하던 희영을 나는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열다섯이었다. 희영은 긴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머리칼보다 긴 그림자가 그녀의 뒤로 이어져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라고 생각할 무렵, 희영은 일어섰고 나는 급히 그곳을 떠났다.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다. 열다섯은 그런 나이였다.


학교는 걸어서 40분쯤 걸렸다. 그 거리가 멀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버스 멀미가 심했던 나는 어디든 걸어 다녔다. 더 정확하게는,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 안에 있는 곳만 쏘다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양말을 가방에 넣고 슬리퍼를 신었다. 등굣길에는 우산을 썼지만 하굣길에는 쓰지 않았다. 비가 좋았다. 비 내리는 밖을 우두커니 보는 일도, 쏟아지는 비 한가운데를 걷는 일도, 내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왜 그러냐고 하면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내가 태어난 것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늘 그렇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싫은 것들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마늘은 토할 것 같아서 싫었다. 양파는 써서 싫었다. 버스는 기름 냄새 때문에 싫었다. 엄마는 답답해서 싫었고 아빠는 때려서 싫었다. 모든 것들이 구멍 투성이었다. 그건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학교는 더 멀어졌다. 중학교를 선택할 때 나는 엄마에게 매우 진지한 얼굴로 설명했다. 거기 선생님들이 실력이 좋대. 공부도 잘 가르치고 아이들 성적도 하나하나 잘 챙긴대. 나는 학부모들이 같은 학부모들에게나 할법한 말로 엄마를 설득했다. 집 바로 앞에도 중학교는 있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을 봐서 중학교에 진학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집을 빨리 나설 구실이 필요할 뿐이었다. 아침은 늘 숨이 막혔다. 집은 때로 버스보다 더 매스꺼웠다. 엄마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먼 거리를 어떻게 다니려고 그러니. 그런 엄마에게 내가 못 박았던 건 버스비 협상이었다. 1장에 270원. 왕복 540원. 곱하기 30 해서 16,200원. 엄마가 표로 사서 주겠다는 걸 굳이 돈으로 받아냈다. 나는 그 돈으로 일주일에 한 번 피시방을 갔다. 집에는 컴퓨터도 없었다. 친구도 없었다. 그리고 대개, 아무도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성당이 있었다. 더 정확히는, 성당 쪽으로 돌아서 집으로 왔다. 하굣길은 이제 한 시간쯤으로 늘어나 있었다. 성당에서 한참을 머물렀으므로, 집에 도착하면 저녁 6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설거지를 해치우고 맨김을 구웠다. 식은 밥을 데워 간장에 찍어 먹었다. 맛있었다.


때로 나는 내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맞는 말이었다. 학교 집, 학교 집 해서는 아니었다. 나는 어지럼증을 자주 느꼈다.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빙글빙글 돌고 있다고 과학 선생님에게 처음 들었을 때, 그래서 나는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 놀이공원 같은 세상이 어지럽지 않은 너희들이 이상했던 거야. 그날 밤 성당에서 나는 오래도록 하늘을 쳐다보았다. 빙글빙글 도는 지구를 상상하며 그 속도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때 희영이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 매일 오는 그 애 맞지?"

나는 밤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곧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 아이가 어딘가로 사라진 줄 알았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빨리 도는 거 같진 않은데."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돌렸을 때 같은 모양새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뻗고 있는 희영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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