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79.
그날 어째서 네 번호로 걸려온 전화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날 어떻게 산산조각 난 네 몸과는 달리 네 휴대전화는 여전히 작동되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화면의 대부분이 까맣게 변한 네 휴대전화에서 통화 버튼이 눌릴 수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부러지고 비틀린 너의 다리와 발 끝에서 일곱 발자국 떨어진 곳에 나뒹굴고 있던 네 휴대전화를 처음 주워 든 사람이 전체가 검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면의 모서리를 학질 걸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며 힘주어 눌러보았을 때 내게 전화가 걸려 왔던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네 몸에서 흘러나온 핏물은 흙으로 스며 이내 까만 재처럼 말라갔다. 그것은 한여름 뿌려준 물줄기가 금세 마른 자국처럼 평범해서 마치 지난날 네가 슬며시 웃던 얼굴을 점토로 새겨둔 것 같았다. 벽돌색 보도블록 위로 튄 너의 피는 아주 잠깐, 약간의 광채를 발하다가 급속히 빛을 잃어갔다. 증발인지 산화인지 모를 그 숨죽인 소멸을 거기 서 있던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마치 너의 아픔을 겉의 평범이 모두 덮어버렸던 것처럼.
나는 눈을 비볐다. 그리고 잠시 위를 올려다봤다. 까마득한 하늘과 그보다 훨씬 덜 치솟은 아파트의 끝이 보였다. 나는 쭉 펼쳐든 손바닥을 눈썹에 수직으로 세운채로 그렇게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부신 하늘에 눈동자가 모두 타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러나 이윽고 네게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다시 붙일 수 없이 조각조각난 너의 머리를 보았다. 거기서 흐르는 선연한 피를 보았다. 가시처럼 부러진 뼈가 솟은 너의 등을 보았다. 터지고 무너진 늑골과 골반을 보았다. 나는 심장소리가 들려오는 게 시끄러워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 심장소리는 분명 내이가 아니라 외이를 타고 밖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나는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나는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채로 너를 쳐다봤다. 보이지 않는 너의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었다. 문득 나는 내가 걸려 넘어진 것이 한 사람의 발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내가 엉덩방아를 찧은 곳 바로 뒤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너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모두의 눈은 너를 향하고 있었다. 네가 힘들어하던 모든 시간 동안 눈길조차 주지 않던 사람들이다. 이제 그들은 산산조각 난 너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지금껏 피 흘리던 너의 속내가, 강을 이루어 울부짖던 너의 시간이 다시금 바스러진다. 먼지처럼 바람에 불어 흩어져간다. 그들은 모른다. 그리고 나도 모른다. 우리는 네가 죽었다는 것을 알지만 어째서 거기에 도달했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너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너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너는 네가 맡은 일을 모두 해내던 사람이었다. 너는 늘 웃던 사람이었다. 너는 늘 네가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너는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까지는 너였을지 모르나 이제는 산산이 부서지고 숨이 끊어진 육신에 나의 신경은 자석처럼 못 박혔다. 어디선가 뜨거운 바람이 훅 몰아닥쳤다. 그 바람에는 새벽녘 논가를 걸을 때 불어오던 습기 묻은 흙냄새가 묻어 있었다. 그 흙냄새는 어제저녁처럼 먹빛이었다. 눈썹 같은 초승달이 구름 사이로 가끔 흩어져 가던 어스름 내린 저녁이었다. 오래도록 보고 있어도 눈이 부시지 않은 달빛이었다. 어쩌다 눈을 돌리면 달무리를 찾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눈도 깜박이지 못한 채 거기만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두덩을 문질렀다. 아픈 눈을, 어느덧 흐려오는 눈을 깜박거렸다. 힘들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삼킬수록 가슴이 답답해오던 새벽마다 너와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날마다 정신과 체력이 방전되는 순간까지 버텨야 했지.
어린이집을 가려고 집을 나서던 다섯 살 여자아이가 늘 그러던 것처럼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먼저 달려 나갔을 때, 아이는 평소처럼 오른쪽으로 꺾어 멀어지지 않았다. 대신 입구 앞에 그대로 서서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엄마를 향해 떨리는 이마를 돌렸다. 그 아이의 희뿌연 눈이 무언가를 물어온다는 걸 뒤따르던 여성은 직감했다. 그러자 오히려 다가가던 걸음이 느려졌다.
해맑도록 빨간 물줄기가 흙으로 스며 이내 음영만 남기고 사라지던 그곳은 아파트 앞의 작은 화단이었다. 바닥을 보고 엎드린 괴상한 모양의 핏덩이가, 언뜻 사람이었을 것 같으나 구부러진 방향이 평소 보던 것과 판이하게 다른 어떤 덩어리가 화단과 인도에 절반씩 걸쳐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여성에게는 아파트 주차장 사이를 구르던 휴대전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자석에 이끌리듯 아스팔트 바닥 한가운데로 걸어가 케이스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휴대전화를 주워 들었다. 아이가 다리에 매달린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로 여자는 멍하니 휴대전화의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화면을 바라본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가끔 눈동자를 흘깃 오른쪽으로 돌린다.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려 하는 것이 두려워, 그녀는 몸을 왼쪽으로 튼다. 다리에 매달린 아이가 허둥거릴 만큼 그녀가 몸을 돌리는 동작은 급작스럽다. 휴대전화를 만진 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동작이었을 것이다.
전화를 건 여성은 내게 저기요,라고 말했다. 휴대폰이 거의 망가져서요. 화면도 하나도 안 보이고. 지금 전화받으신 분이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저기요...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도 지금 정신이 없어서요. 좀... 아무나... 여기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시종 떨리고 음산했다. 내게는 그녀의 목소리가 끊어지기 직전의 숨소리 같았다. 어떻게 좀... 거기서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받지 않았다. 나는 선임참모가 들어간 전대장실의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챙겨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아침 내내 연락이 되지 않던 영현이의 번호였다.
너는 심성이 곧고 성실한 아이였다. 그래서 더 견딜 수 없어했다. 알코올솜처럼 저며오는 선명한 악의 안에서 숨 쉬지 못해 괴로워했다. 기도 저 아래쯤에서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 폐의 입구를 뚫고 터져 나오는 기침 소리. 하얗게 거품이 고인 입가를 닦아내던 뼈마디가 선한 손. 너는 노려보았지. 고개 돌리지 않았지. 곧은 눈으로 무던히 거길 바라보았지.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 아이의 눈이 너를 닮았다는 걸. 서리처럼 하얗고 창백한 눈아래가 너를 떠올리게 했다는 걸. 그 아이의 웃음이 내내 아른거리는 이유를 나도 모르게 곱씹었다는 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