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78)

78.

by 작가 전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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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훈련을 연기하시려면 진단서를 제출하셔야 합니다.

친절한 음성의 지방병무청 동원훈련 담당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더 다정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동원훈련은 1분이라도 늦으면 바로 고발조치가 들어가서요. 지금 가까운 병원에 가셔서 급성 진단서를 하나 받으시고요. 오후 3시 전까지 팩스로 보내주시면 훈련 연기가 가능합니다. 가능하시다면 일단 소집장소에 가셔서 사정을 이야기하시는 게 가장 좋고요. 팩스 번호는, 방금 넣어드렸습니다. 일단 이번 훈련은 그렇게 해서 넘어가시고요. 사정이 그러시다면 다음 훈련 전까지 병역처분변경 신청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변경 방법도 남겨드릴게요. 넣어드린 번호로 연락하셔서 문의하시면 방법을 알려드릴 거예요.


그러나 나는 내 상태를 설명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어째서 가슴이 조여 오는지, 숨이 가빠 오는지, 아무것도 삼킬 수 없는지, 눈물이 멎지 않는지, 닦아내고 또 닦아내도 물기가 마르지 않는지,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픈지,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든지, 갑자기 세상이 벌건 핏빛으로 물들었다가 캄캄해지고 또 새하얘지는지, 머리에서 무언가가 쭈욱 뽑혀 나가는 느낌이 드는지, 소름이 돋고 급격히 차가워지는지,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고, 등과 목과 손바닥에 한기가 도는지, 그러면서도 땀으로 축축해지는지, 팔과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지,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지, 나는 그런 것들을 내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설명해 낼 수 없었다.


누군가는 우울장애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공황장애라고 했다. 해리성 기억 상실 장애라고도 했고, 저혈압이라고도 했고, 빈혈이라고도 했고, 트라우마라고도 했고, 끔찍한 과거가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아닌데. 슬프지도 않고 혼란스럽지도 않고 뭔가를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끔찍한 기억에 손발이 얼어붙은 적도 없는데. 나는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살고 싶어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을 뿐인데. 살고 싶어서 아무것도 느끼려 하지 않았을 뿐인데. 보려 하지 않았을 뿐인데. 입에 담지 않았을 뿐인데. 없는 사람처럼 살고 싶었을 뿐인데. 무슨 방법으로든 살아보려 애썼을 뿐인데. 명백한 지옥으로부터 눈을 돌리려 했을 뿐인데.


**


이미 4년째 공석이었던 훈련관 자리가 채워진다는 소식을 들은 건 내가 전대 작전관으로 부임한 지 반년이 조금 안되었을 무렵이었다. 대위 진급 예정자라고 했는데 이제 막 잠수함 분대장 근무를 마친 5년 후배였다. 5년 후배지만 87년생으로 나이는 3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사관학교 후배들 중에 재수생은 흔했다. 동기들 중에도 절반은 재수생이었고, 그중 절반은 삼수생일 정도로 형, 누나가 많았다. 특히 경쟁이 치열했던 여생도는 오히려 동갑내기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들 중에는 특이한 군상도 많았다. 예를 들면 몇 마디 안 되는 말로 분위기를 굳어버리게 한다던가, 입교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이미 여러 차례 선배들에게 고백을 받았다던가, 후배지도를 넘어 동기지도에도 지나치게 열심히라던가, 낙오한 동기를 둘러업고 뛰다가 추가 훈련을 받는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그런 동기들과 나중에 이야기해 보면 대개 나이가 한두 살 많았다. 그들 중 한 사람과 룸메이트가 됐을 때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정말 여기를 오려고 2년 동안이나 그 지겨운 수능공부를 더 했단 말이야? 대체 왜? 뭐 얻어먹을 게 있어서?

키가 180cm가 넘고 어깨가 떡 벌어지고 외커풀 눈에 유난히 피부가 구릿빛이었던 그 동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싱거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다시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오래된 앨범을 한 장씩 넘겨보듯, 그 동기는 말했다.

나라 지키는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군인이라는 직업이 나와 어울린다고도 생각했고, 등록금이 공짜라는 것도 매력적이었고, 몸 쓰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막상 떨어지고 나니까 오기도 치솟았던 것 같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만약 그때 여기가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그는 뒷말을 삼켰다.


나는 훈련관의 부임을 진심으로 반겼다. 이름은 영현이라고 했다. 대위(진) 오영현. 나는 그가 앉을 책상 서랍을 정리하며 직책과 계급, 성명이 쓰인 출력물을 커팅 매트 위에 펼친 뒤 투명한 아크릴 케이스에 맞게 재단해서 꽂았다. 그리고 그가 부임하면 인수인계할 업무의 목록들과 자료를 출력해서 별도의 폴더에 정리했다. 살피다 보니 사무분장도 새로 검토할 것들이 여럿 보였다. 지난 4년간 공석이어서 그런지 훈련관 앞으로 나열된 업무들은 모두 흩어져 있었다. 비교적 단순하고 루틴 한 업무들은 갑판장이나 행정장에게 가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사실상 내 업무로 되어 있었다. 비밀도 마찬가지였다. 수백 권에 달하는 비밀 문건들을 실 셈 하고 관리기록부에 인수인계 사인을 하는데만 해도 꼬박 하루가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고민은 다른 데서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 훈련관 인사가 일회성으로 그칠지, 아니면 다음 해에도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부대 규모가 커지면서 인력 수요는 늘어났지만 정작 인원 풀은 감소되는 추세였다.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소문이 퍼져 지원자를 찾기 힘들었고, 애써 양성을 마친 인원들은 높은 업무 강도에 제풀에 나가떨어지는 일이 잦았다. 고인 물처럼 굳어버린 부대 문화도 부작용이 심했다. 중간 계층들이 떨어져 나가며 새로 들어온 인원들과 기존 근무자들의 계급 차이가 심화되었다. 소통 문제나 하급자들에게 귀찮은 업무를 떠넘기는 문제도 종종 도마에 올랐지만 힘없는 약자들의 의견은 묻히기 일쑤였다. 특히나 잠수함이 아닌 곳에서는 이미 부서장이나 직별장을 하고 있을 사람들이 여전히 막내 노릇을 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잠수함 부대를 떠났다.


그런 사정은 수백 명 남짓한 잠수함 장교 세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매 기수 스무 명에서 삼십 명 남짓한 인원을 선발했지만 벌써 함께 잠수함 생활을 시작했던 동기들도 삼사 년 새 삼분의 일 가량이 떨어져 나간 뒤였다. 잠수함 부대 자체가 특수한 집단으로 분류되다 보니 근무지가 한정되었고, 한번 근무했던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에도 복종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번이라도 와전되어 소문이 잘못 돌면 어디를 가나 극도로 피곤해졌다. 한번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군생활을 그만둘 각오가 아니고서는 상급자의 말에 토를 달기 어려웠다.


아무튼 훈련관 자리는 향후를 장담할 수 없는 성격이 짙었다. 나는 고개를 털며 마른세수를 했다. 아직 부임하지도 않은 자리를 가지고 무슨 김칫국이람. 그딴 건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하겠지.

나는 마지막으로 신임 훈련관의 개인신상기록부를 출력해서 클립보드에 꽂았다. 선임참모 책상에 하나를 놓아두고, 전대장님 방에도 올려둔 후에 불을 껐다. 시곗바늘은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퇴근하는 게 나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몇 시간이라도 제대로 자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차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정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훈련관이 나타났다.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얼굴이 하얀 친구였다. 신상기록부의 사진과는 인상이 사뭇 달랐다. 사진에서는 여리여리하고 깡말라 보였는데 실제로는 살집이 제법 붙어 있었다. 그를 보니 옛 생각이 났다. 잠수함 생활을 시작한 첫 해, 나는 몸무게가 10kg이 늘었다. 미칠듯한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단것들을 뭉텅이로 삼킨 결과였다. 배에서 내린 다음 당장 무릎이 아파와서 체중 감량에 돌입하기는 했지만 한번 붙은 살은 쉬이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훈련관은 170cm쯤 되어 보이는 키에 결혼해서 처가 있다고 했다. 신상기록부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관사에 산다고 했던가? 네. 113동입니다. 어? 우리 집도 거긴데? 몇 호 살아? 1302호입니다. 1302호... 바로 옆 라인이네. 나는 803호. 아, 그러십니까? 다음에 집사람과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작년에 결혼했는데 관사 배정에 시간이 제법 걸리더라고요. 이사한 지 며칠 안 됐습니다. 그래도 얼마 안 걸렸다. 아무튼 환영해. 감사합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얼굴이 수더분해 보였다.


나는 신고 문구를 확인하고 영현이를 선임참모에게 데려갔다. 훈련관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선임참모는 통과의례처럼 흰소리를 했다. 정운함? 거기 부장이 내 동긴데. 응? 네가 바로 그놈이구만. 응?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응? 네 한마디, 행동 하나가 전대를 대표하는 거니까. 응? 우리 전대가 작년에 작전사 최우수 전대로 뽑힌 거 알지? 응? 자식, 새로 전입하면서 공부도 안 하고 왔구먼. 응? 전대장님 물어보시는 데에는 가급적 네, 아니요로 짧게 대답하고. 응? 쓸데없는 소리는 안 하는 게 낫고. 응?

선임참모는 버릇처럼 말끝마다 응을 붙였다. 영현이는 짐짓 기합이 든 것처럼 얼굴을 굳히고 알겠습니다,를 연발했다. 하지만 전대장실로 들어가려고 선임참모가 앞장선 뒤에는 내게 슬쩍 웃어 보일 정도로 여유가 있는 친구였다.


전대장님께 신고를 마치고 훈련관과 나는 전단 건물로 올라갔다. 잠수함 사령부 창설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전단 사람들은 하나같이 피로에 절은 얼굴이었다. 자주 연락할 훈련과 근무자들에게 영현이를 소개하고 나서 작전과, 계획과, 인사과, 보안과 사무실에도 둘렀다. 앞으로 사령부가 되면 과에서 참모실로 명칭이 바뀔 사무실들이었다. 아마도 각각 인사참모실, 정보참모실, 작전참모실, 계획참모실이 될 것이었다. 흔히 말하는 ‘인정작군’ 순이었다. 이 밖에도 군수참모실, 지통참모실 등이 신설되고 상황실도 꾸려질 예정이었다. 직제도 소령에서 중령으로 계급 상향이 이루어질 것이었다. 협조가 더 어려워지겠군. 나는 한숨이 앞섰다.


우리는 전단 건물을 나와 승조원 사무실로 향했다. 잠수함은 함 내 공간이 협소하여 정박 시에 사용할 별도의 사무실이 함별로 마련돼 있었다. 승조원사무실이 모인 건물은 전단 본관과 전대 사무실이 모인 건물 사이에 있었다. 우린 1층 모서리 쪽 입구로 들어가 3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창문 밖으로 신축 사무실 건물의 골조가 드러났다. 누런 먼지가 바람을 타고 회오리치듯 날아들었다. 곳곳에 신축 현장이 들어서 있었다. 부두 건너로는 수리창으로 사용할 건선거와 도크도 규모를 늘려가는 게 보였다.

영현이는 궁금한 게 많은 후배였다. 내가 보이는 대로 새로 짓고 있는 건물들이며 사령부 구조나 조직, 정박 중인 다른 배들을 짚어주자 호기심이 이는 듯 이것저것 물어 왔다. 질문에 대답해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3층에 다다라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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