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해 여름

그해 여름(81)

81.

by 작가 전우형

81.


나는 시선을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그러면 지평선도 함께 기울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아무리 늘어트려도 눈앞으로 보이는 세상은 한없이 똑발랐다. 나는 눈을 감았다. 잠깐의 긴 어둠이 찾아들었다. 눈꺼풀이 세상을 덮는 동안 나는 평온해졌다. 어딘가가 불쑥 뜨거워졌는데 그 온기는 분명 내 것이 아니었다. 어서 떨어져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자꾸만 눈이 감겼다. 피로했다.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그 열기도. 산산이 부서져 합당한 어딘가에 나눠 심어져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모든 것, 나를 비롯한 모든 것들은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닌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잠들기 직전의 혼곤함이 그렇듯, 나는 내 의식의 혼미함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어도 세상은 똑바른 것이다. 자동차도, 도로도, 하얀 선과 노란 선도, 가드레일도, 교각도, 산과 나무도, 하늘과 구름도, 논밭도, 사람도, 교회의 십자가도, 그 모든 것들은 전혀 비틀리지 않았다. 나는 명료한 채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게, 착각하지 않고 나는 살아간다. 이건 확신이 아니라 현재다.


그런데 왜 눈이 감기지. 눈을 감고 싶지. 뜨고 싶지 않지. 이토록 모든 것들이 확실한데. 나는 왜 눈을 감는 게 더 편하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더 좋지.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지. 캄캄한 어둠이 마음을 평온하게 하지. 잠들고 싶지. 계속해서 눈이, 감기지.


어젯밤은 더웠다. 이틀간 비가 내려 밤공기가 서늘한 편이었는데도 내 몸은 온통 땀투성이였다. 이불을 덮고 자서 그랬나. 홑이불을 꽁꽁 싸매었어도 그렇지. 죽은 사람처럼 잠들었어도 그렇지. 밤 10시쯤 누워 잠을 청했다. 시계를 봤을 때는 12시 30분. 그러니까 나는 그때까지 잠들지 않았다.


나는 불편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을 거라고, 아침에 눈을 뜬 후에 확인하듯 기억을 뒤적거렸다. 그래, 더워서 몸이 불편했던 거야.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었던 거야. 실은 더웠는데 내가 그걸 느끼지 못했던 거야. 그런 거야.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불편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어젯밤 내가 잠들지 못한 것에 관한 게 아니었다. 한 사람의 반응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고민하고 있었다. 그 불편함에 대해 고민하느라 내가 얼마나 불편한지 느낄 겨를이 없었다. 몇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그걸 써둬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잠들었는데 막상 깨어나고 보니 그 질문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 중요한 질문들은 아니었다는 건데 아침부터 목에 가시가 박힌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은 뭘까. 꼭 짚고 넘어갔어야 할 일을 새까맣게 잊은 것 같은 기분은 뭘까.


이런 생각들은 대개 한 사람에 관한 것이었다. 몇 꺼풀을 들춰내도 늘 그 속에는 다른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모습에 대한 심상은 달랐다. 그것은 그녀가 달라진 걸 수도 내가 달라진 걸 수도 있었다. 텔레비전을 켰다. 한 인문학 강의 채널에서 나는 리모컨을 누르던 것을 멈췄다.


달이 하얗게 보이는 것이야말로 착시입니다. 실은 어두컴컴하죠, 달은. 햇빛을 받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둡던 달이 조금 덜 어두워졌을 뿐, 하얗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달이 하얗게 보이죠. 때로는 노랗게 보이기도 하고요. 왜 그럴까요? 대기를 통해서 보기 때문입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네. 거기 그분요. 마이크 좀 갖다 주시고요. 네. 맞습니다. 정확히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주변이 더 어둡기 때문이죠. 아무 빛도 없는 진공의 우주가 달의 배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착시란, 우리가 배경과 사물을 함께 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우리 눈은 배경을 떼어놓고 그 사물만 볼 수 없습니다. 초점이 옮겨갈 뿐이죠.


초점이 옮겨간다는 것도 다른 무언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 눈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중에서 선택적으로 어떤 부분만을 의식에 담습니다. 그래서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는 놓치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여기, 세 남자가 서로 공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총 몇 번이나 공을 주고받는지 한번 세어보실까요? 맞추시는 분에게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네. 모두 확인하셨나요? 그러면 질문. 세 사람 옆으로 고양이가 지나가는 걸 보신 분 손들어 보십시오. 네. 여기 한분. 그리고 저 끝에 한분. 오, 생각보다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시 묻죠. 여기 손을 든 분 중에서 세 남자가 공을 몇 번 주고받았는지 정확히 세어보신 분만 남고 나머지는 손을 내려주십시오. 네, 거기 여자분, 몇 번입니까? 14번요. 아쉽지만 틀렸습니다. 선물은 드릴 수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수백 명 중에서 세 남자가 공을 몇 번 던졌는지와 고양이가 지나가는 걸 정확히 보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마저도 제가 서두에 뭔가를 테스트할 거라는 뉘앙스를 풍겼기에 가능하다는 걸 짐작하실 테고요. 이 실험이 말하는 건 한 가지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겁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 있어도 우리는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동시에 기억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것들을 동시에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일단 의식의 그물에 걸려야 단기기억이든, 장기기억이든 기억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죠? 우리는 어떤 사물 하나만 독립적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배경, 그러니까 맥락과 연관 지어서 사물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착시가 일어나죠. 착시는 단지 우리가 달을 하얗다고 생각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배경지식, 선입관, 의심, 착각, 단정, 사고의 편향 등 그 모든 것들과 관련되어 같은 것도 서로 다른 것으로 보게 만듭니다. 예컨대 우리가 달을 하얗다고 보면서도 그걸 전혀 이상하다 여기지 않는 것처럼요. 어떤 착각을 우리는 당연하게 맞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다르게 본다는 것은, 이러한 고정된 틀로부터 벗어나는 걸 의미합니다. 그것은 내가 당연하게 보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는 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걸 자각하는데서 시작되지요.


그런가.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이 실제로는 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 있는 건가. 실제로는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고 듣고 기억하는 것들이 실은 불확실할 수 있다는 전제를 안고 사는 게 내게 무슨 도움이 되지. 그날도 그랬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랬다.


나는 건너편 언덕을 바라보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뾰족하게 솟은 첨탑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옆에서는 굴삭기가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발바닥으로 묵직한 진동이 전해져 오는 걸 느낀다. 발목쯤이 살짝 간지럽다고 느낄 정도의 세기다. 아마 살고 있는 집에서 이 정도의 진동이 수시로 느껴진다면 불안해서 밤잠을 설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거대한 궤도전차에서 아래쪽만 떼어온 것 같은 굴삭기의 하부가 포장을 걷어낸 모래바닥 위로 굵직한 자국을 남기며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바람이 때로 거세게 불 때면 노란 모래폭풍이 인다. 나는 손등을 입과 코에 붙인다. 저절로 눈을 찌푸리게 된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등을 보이며 돌아선다. 사방을 온통 뒤집어놓은 입구 옆에 세워진 간이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역사박물관 리모델링 공사 : 6.22.부터 7. 9. 까지. 기간 중 박물관 관람은 제한됩니다.’


노란 안전모를 쓴 인부들은 모래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굴삭기 한 대가 구덩이를 파면 대관람차 중 일부를 떼어온 것 같은 거대한 삽 대신 갈고리 모양의 도구로 갈아 낀 다른 굴삭기 한 대가 수령이 삼십 년은 됨직한 나무를 대롱대롱 매달고 다가온다. 수관이 제법 무성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건 거대한 바위처럼 생긴 뿌리다.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뿌리가 오래도록 붙들고 있던 흙과 모래, 자갈을 그물망으로 고정해 두었다. 그러니까 어딘가에서부터 나무를 따라온 것이다. 나무의 시간과 기억들이. 나는 가끔 후드득 무언가가 쏟아지는 그 덩어리를 위태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두 사람이 나무에 묶은 줄을 잡아당기며 무어라 소리친다. 굴삭기를 향해 오케이 신호를 보내며 오른손을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 반복해서 내린다. 그 신호를 따라 굴삭기에 매어져 있던 나무도 서서히 구덩이 속으로 들어간다. 허리를 바닥까지 숙인 사람이 소리친다. 수신호를 하던 사람이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쥔다. 내려가던 나무가 멈춘다. 옆에서 대기하던 굴삭기가 파내어 쌓아 둔 흙을 슬쩍슬쩍 밀며 구덩이의 빈 공간에 쏟아 넣는다. 대강의 작업이 마무리되면 삽을 든 인부 몇 사람이 남은 흙을 다진다.


날은 뜨거웠다. 굴삭기가 대강의 작업을 마치는 동안 나머지 인부들은 그늘로 들어가 안전모를 들었다 내렸다 한다. 장갑 낀 손으로 이마를 훔치면 옆얼굴에 황톳빛 얼룩이 진다. 인부들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다. 허옇게 뜬 선크림에 흐른 땀자국이 세로줄을 만든다. 그 자국은 뜨거운 바람에 말려지고 모래를 덮어쓰며 마치 화석이나 벽화처럼 굳는다. 살이 튼 것처럼 얼룩덜룩하다. 희영의 허벅지에도 그런 자국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떠올린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뼈가 자라나는 것을 살이 따라가지 못해 그렇게 튼 자국이 생겼다고. 비슷한 자국은 희영의 아랫배에도 있었다. 튼살크림 같은 걸 바르지 그랬냐는 말에 희영은 그저 웃었다.

누워 있는 나무들은 아직 많았다. 그들은 당장 짊어지고 떠날 수 있는 세간살림만을 간신히 이고진 피난민 행렬 같았다. 드러난 뿌리들은 엄마 손가락을 잡은 돌잡이의 주먹처럼 그러쥐어져 있다. 힘주어 눌린 살갗이 하얗게 질려 있다. 나는 손을 눈앞으로 가져와 주먹을 쥔다. 조금씩 더 힘주어 주먹을 쥔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마디 사이가 쿡쿡 쑤신다. 손바닥에서 가늘고 깊은 통증이 서서히 확실해진다. 그렇게 한참을 부르르 떨다가 주먹을 푼다. 손바닥에 4개의 붉은 선이 그어져 있다. 다시 나무를 본다. 둥근 바위 같은 그들의 뿌리를 본다. 사이사이 돌처럼 굳은 예전의 터를 본다. 드러난 뿌리들이 안간힘을 쓰며 붙들고 있는 무언가를 본다. 그날 희영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검푸른 밤이 있었고 그것을 뒤덮은 구름이 있었고 몇 안 되는 별이 있었다. 희영은 고개를 위로 뻗은 채로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생각보다 멀고 때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먼 곳을 그녀는 바라보고 있었다. 희영은 가끔, 꿈꾸는 사람 같았다. 그 말을 할 때도 그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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