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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Nov 14. 2023

지는 잎에 관하여

에세이

  한차례 모든 잎을 잃고도 버티는 시간들이 있기에 나무는 외롭지 않다. 나무는 한 곳에 머무는 연습을 하는 것뿐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부는 바람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과도 닮았다. 그러므로 헐벗은 나무에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은 헐벗은 영혼 탓일지도 모른다.  


  날이 차가워지면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추위. 그리고 추위를 대하는 나의 태도다. 나는 추위를 반기던 사람이었다. 시원하리만치 뻥 뚫린 겨울 하늘을 보며 한기를 받아들이고 나면 묵은 자아에 환기가 일어나곤 했다. 마치 새사람이 된 것처럼 하루를 살 수 있었다. 유통기한은 짧았지만 겨울은 나를 상하지 않게 지켜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추위가 조금 두려워졌다. 한기가 단순히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넘어 나를 관통하는 느낌이 든다. 식어있던 마음과 바깥공기가 서로를 잡아당기고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잃어가는 열기를 만들어내는 열기가 감당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고, 나이에 관한 상반된 감정을 의식하며 스스로 늙어버린 내가 있다. 상처 입은 고양이와 소곤대는 나와 글 쓰고 책 읽는 나. 기다리는 나와 도망치는 나. 나는 잎을 떨어트리고 있을 뿐인지 아니면 뿌리까지 상한 건지 알 수 없고 사랑을 할 수 있는 나이인지 줄 수 있는 나이인지도 알 수 없다. 내게 아직 무언가가 남아있다면 사랑하는 이를 아끼는 마음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너를 공연히 걱정했구나. 너는 아프지 않은데도. 그저 넘어졌을 뿐인데도. 나를 계속해서 부르는 너를 보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구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 네 앞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고 입술을 만졌지. 눈을 감을 때마다 오르내리는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어보았지.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너를 믿지 못했지. 오늘만큼은 온전히 너와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지. 너는 묵묵히 그런 내 오지랖을 받아주었지. 


  툭툭 털고 일어나는 너를 보며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눈물을 닦았다. 걱정이 많은 나를, 작은 일도 크게 받아들이는 나를, 상처 입은 너보다 더 상처받는 나를, 때때로 스스로 고통을 벌어와 네게 나눠주던 나를, 아프기 전에는 바보같이 안심하던 나를, 아프고 나서야 바보같이 신경 쓰던 나를, 너는 늘 반겨주었다. 그래서 고마웠다고 너 없이 네게 말한다. 그러니 지는 잎은 그저 시간이라고. 계절이라고. 과정이라고. 관심이고 기다림이라고. 내내 건강하자고. 잎이 져도 너는 그곳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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