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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Feb 12. 2024

카페의 겨울이 몰고 온 부작용

소설

  지긋지긋한 감기였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바람의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힘들다는 말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9. 카페의 겨울이 몰고 온 부작용     


  카페의 겨울은 추웠다. 추위는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나는 자잘한 일거리들을 눈처럼 쌓아두는 나를 발견했다. 고무나무와 장미 허브와 사랑목과 금전수에 물을 주는 횟수도 현저히 줄었고 주방에는 설거짓거리가 쌓였다. 추출이 완료된 더치커피를 그대로 걸어두었고 드립백 제조도 뒷전이었다. 손님이 들어오면 간신히 일어나 주문받은 커피를 잔에 담아 드린 뒤 다시 자리로 와서 웅크리고 앉았다. 컵에서 전해져 오던 온기가 흩어지지 않도록 손을 꼭 말아 쥐고서. 어쩌면 나란 사람은 자영업보다는 공무원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추웠던 겨울을 꼽아보자면 역시 사관학교 시절을 빼놓을 수 없다.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은 바다를 면하고 있어서 겨울이면 바로 등 뒤에서 해풍이 불어온다. 그리고 가장 큰 행사인 졸업식이 겨울철에 열린다. 그래서 1월과 2월의 대부분은 행사 준비로 채워진다. 군 행사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열병식과 사열이다. 하는 사람은 죽을 맛이지만 보는 사람은 박수가 절로 나온다.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임석하는 행사인 만큼 고강도의 연습이 행해진다. 몇 시간씩 바닷바람을 맞으며 대기하는 일도 허다하다. 


  해군사관학교에서 나는 추위란 정신력이나 깡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몇 시간씩 바닷바람을 맞고 서 있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추위를 버티려면 적절한 장비가 필수다. 히트텍, 두터운 겨울 내복, 얇은 체육복을 행사 복장 안에 껴입고 양말은 피가 통하는 데 무리가 없을 만큼 두세 겹 겹쳐 신어야 한다. 백수갑 안에도 목장갑과 가죽 장갑을 착용하고 등과 아랫배 발목에 작은 핫팩을 붙여두어야 한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해야 혹한기를 무사히 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카페의 겨울은 그보다 춥지 않다. 실내인 데다 찬 바람도 불지 않는다. 그런데도 훌쩍거리는 콧물이 멎지 않는다. 한기가 뼛속까지 스미고 관절이 움직일 때마다 얼음조각이 바스러지는 느낌이 든다. 눈사람. 그래, 눈사람이 된 기분이다. 며칠 전 함박눈이 오후의 하늘을 빼곡히 채운 적이 있었다. 나는 H와 함께 카페 앞으로 나가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돌멩이와 나뭇가지를 꺾어 눈코입을 만들고 그 옆에 눈을 도담도담 두드려 작은 집도 지어 주었다. 문득 그 사실이 떠올라 밖을 내다보니 거의 녹아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이제는 내가 그 뒤를 이어 눈사람이 되려 하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더 이상 재산을 탕진하지 않고 얌전히 지내는 것으로 만족한 눈치였다. 작년에 박사 학위를 마친 아내는 집에서 50분 거리에 있는 대학에 임용됐다. 임금은 도리어 줄어들었지만 출퇴근거리가 줄었고 교수 연구실이 생겼다. 임용된 학교는 서해바다를 면한 데다 언덕을 많은 지형이라 겨울철에는 스노타이어가 필수였다. 동료 교수 중 한 사람이 내리막에서 미끄러져 굴다리를 들이받는 사고를 당한 것을 보고도 아내는 타이어를 교체하지 않았다. 

  내가 조심해서 타지 뭐.

  아내는 그게 가능한 일인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내의 다부진 표정을 보며 체온이 3도쯤 내려간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아내는 다음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직장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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