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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Feb 11. 2024

사장과 직원의 공존방식

소설

  물은 바위를 지나며 굽었고

  새로운 결을 만들어냈다

  바뀐 흐름이 겨울을 밀어내고 있었다

  사박사박

  나는 봄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8. 사장과 직원의 공존방식

 

  카페에서 오르막을 따라 100미터쯤 걸어가면 목조 건물 하나가 보이는데 그곳이 교회다. 개척한 지 십 년 된 작은 교회로 주일이면 30명 남짓한 교인이 모인다. 예배당 옆에는 과거 카페로 사용하던 공간이 아직 남아있다. 내가 몸담은 교회이기도 하고 사장이 담임하는 교회이기도 하다.


  사장은 가끔 개척하던 시절 이야기를 했다. 개척을 시작하고 몇 달 동안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홀로 예배드릴 때 매 순간 목회를 접고 다른 곳으로 갈까 고민됐다고.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목공을 배웠고 허름하던 예배당 건물이 점차 어엿한 목조 건물로 재탄생했다. 꽤 쓸만한 공간으로 만들어두니 건물주가 집세를 올렸고 사장은 미련 없이 옆건물로 교회를 옮겼다. 빠진 자리에 건물주의 아들이 치킨집을 열었다 반년만에 망했다. 사장은 옮긴 자리를 재정비해 한쪽은 예배당으로 쓰고 또 한쪽은 카페를 차렸다. 개방형 와이파이를 달자 카페 앞 벤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안락한 쉼터가 되었다. 사장은 차례차례 바리스타 자격증, 부루윙 자격증, 로스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카페 한쪽 구석에 작은 로스팅 기계를 하나 들였고 동네 주민들을 위한 홈 카페 수업도 개강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수가 늘어 수강생들이 바리스타가 됐고 몇 군데에 카페를 차렸다. 사장은 로스팅한 원두를 원가에 대며 뒷바라지했지만 돌아오는 건 목사가 장사에 눈이 멀었다는 뒷얘기. 열의가 시든 건 그때 즈음이었고 믿었던 성도 한 사람에게 보증금까지 대며 카페를 열어주었다가 코로나가 찾아왔다. 내가 안중점에서 사장을 처음 만난 건 그즈음이었다.


  사장은 어려운 시절을 보낸 사람답게 거의 중고 물건만 구해서 썼고 어지간한 물건들은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처치곤란해하는 물건들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왔다. 별로 넓지 않은 카페 뒷공간은 어느덧 못쓰는 물건들로 가득 찼다. 사장은 선교센터를 차려 중고 거래로 구한 물건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직접 선교 팀을 꾸려 단기 선교를 나섰다. 필리핀에 거점 교회를 몇 군데 연결하고 일주일의 일정으로 빈민가와 쓰레기 섬 등을 방문해 피딩과 미용, 의료봉사를 했다. 한 곳에 머무르기를 힘들어하던 사장에게 해외선교는 좋은 돌파구이자 비전이었을 것이다.


  사장은 해 질 녘이 되면 아련한 얼굴로 은퇴 후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버스를 개조해서 전국을 돌며 커피 장사를 하고 싶어요. 경치 좋은 곳에 버스를 세우고 한쪽을 열어 사람들 앉을 공간을 만들면 특이하고 좋지 않겠어요?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저장해 둔 사진을 보여주었다. 버스 안을 카페처럼 꾸민 사진들이었다. 굉장히 그럴듯하게 개조한 것도 있어 놀랐다. 괜찮을 것도 같네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하지만 사장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유랑민의 삶에 뜻이 없다는 걸. 


  사장과 나는 많은 면이 달랐다. 그래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나는 그가 가끔 무모하다고 느껴졌고 사장은 많은 것을 재고 따지는 나를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나는 그와 함께 카페지기로 남았다. 사장과 직원의 공존 방식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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