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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Feb 13. 2024

호주에서 돌아온 남자

소설

  핫팩에 닿은 곳이 빨갛게 익어 있었다

  따뜻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도

  감각에 구멍이 났고

  무엇을 위한 알람인지 알 수 없었다




  10. 호주에서 돌아온 남자     


  새해가 되자 몇 개의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일본에 진도 7의 강진이 일었고 JAL 여객기가 착륙 중 활주로로 진출하던 수송기와 충돌했다. 제1야당 대표가 괴한에게 피습됐고 손흥민 선수는 리그 12호 골을 터트렸다. 그리고 나는 호주로 떠났던 처남과 5년 만에 재회했다.     


  20년 전 처남은 사과처럼 볼이 빨간 중학생이었다. 아내의 결혼식에서 축가로 노을의 청혼을 불렀고 도시행정학과를 전공했으며 졸업 후에는 일식집에서 주방일을 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입대해 해남에서 병역을 마쳤다. 처남은 F1 그랑프리에 차출되기도 했다. 그걸 ‘차출’이라고 부를 수 있냐는 부러움 섞인 물음에 처남은 몇 시간 동안 바닥에 딱 붙은 굉장히 미래적인 차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는 장면만 반복됐다고 짧은 관람평을 전했다. 그랑프리는 8월에 열렸다. 그의 목소리는 아스팔트의 열기와 광장의 환호와 치워도 치워도 쏟아지는 쓰레기 더미에 짓눌려 있었다.      


  처남은 돌연 일식집을 그만두고 호주로 떠났다. 장인이 처남 명의로 받은 대출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일식집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웃음을 잃는 방식으로 처남은 고국과 친부에 대한 미련을 떨쳐냈다. 그는 대출금을 청산하기 전에는 귀국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리고 대출금을 완전히 갚은 다음에도 귀국하지 않았다.       


  물론 처남의 귀국이 늦어진 건 팬데믹의 영향도 있었다. 호주가 국경을 봉쇄하면서 한번 출국하고 나면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이 사라졌다. 당연하다는 듯이 모두가 멈춘 세상에서 처남은 기계처럼 묵묵히 일했고 공장에서 시키는 대로 햄을 산처럼 쌓았다. 처남이 귀국하던 날 나는 아내와 함께 인천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공항은 광활할 뿐 아니라 혼란 그 자체였다. 이중 주차된 차들을 피해 간신히 주차한 다음 유명하다는 햄버거 가게를 찾아 공항 라운지를 누볐다. 배를 채운 뒤 잠잠해진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한 채 나는 걸음을 옮겼다. 인기몰이 중인 전기차의 최상위 트림이 공항 한가운데에 전시돼 있기도 했다. 나는 폭포수가 떨어지는 거대한 전광판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호주에서 결혼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처남댁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만남이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처남댁은 토종 한국인이었다. 도착 시간을 십분 앞두고 4번 게이트로 갔을 때 사진에서 본 사람이 가슴까지 오는 여행 가방에 턱을 괴고 서 있는 게 보였다. 150cm쯤 되는 키에 코르덴 바지를 입었고 어그 부츠를 신었다. 검은색 목폴라 차림에 청재킷을 팔에 걸쳤다. 아담하고 고운 인상이었다. 동상을 입은 것처럼 새빨간 얼굴이 중학생 때의 처남을 떠올리게 했다. 어, 혹시? 하고 어색한 인사를 마치자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다. 속속 등장하는 여행객들 사이로 얇은 점퍼에 반바지 차림을 한 처남이 손을 흔들었다.      

  처남의 체구는 단단해져 있었다. 호주에서도 음식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다. 퍼스의 햄 공장에서 일하며 현지 대학 요리학과를 전공했고 현재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한다고 했다. 호주로 떠나기 전보다 신수가 훤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처남은 세월의 흐름만으로 납득하기 힘든 무언가가 변해 있었다. 내가 지그시 쳐다보자 처남은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중학생 때의 그것이었다. 처남은 얼굴에 비해 눈코입은 작았다. 동그랗고 작은 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뿔테 안경에 가르마를 타긴 했지만 앳된 티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도 30대였다. 그런 생각을 하자 지나온 시간이 와락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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