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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Feb 14. 2024

불 꺼진 방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소설

  그림자가 일렁였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불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살갗이 타들어가는 냄새가 났다  

  그들의 삶이 그렇듯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11. 불 꺼진 방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남은 크리스마스 전날 입국해 신년을 맞이하고 1월에 호주로 다시 떠났다. 그의 복귀와 상실은 내게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에 머문 2주 동안 처남은 13명의 친구를 만났고 35병의 소주를 마셨다. 간단한 상견례와 혼인 신고를 했으며 처남댁은 A형 독감에 걸려 일주일을 앓았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처남 내외를 만나고 돌아온 다음 막내는 B형 독감 진단을 받았다. 처남댁은 마치 자신이 독감을 옮긴 것처럼 미안해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A형 독감과 B형 독감은 연애 5년 차에 접어든 권태기 커플만큼이나 서로 무관했다. 개선된 타미플루는 알약 형태로 1회만 복용하면 됐다. 대신 약값이 비쌌다. 외형상으로는 타이레놀 350mg 한 알과 전혀 차이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약사는 내게 약이 분명히 약봉지에 들었음을 몇 번이나 확인시켜 주었다. 약을 잃어버리고 나서 약국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손님이 많다고 하소연하는 약사의 말을 나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경청해 주었다. 30대 중반의 약사는 눈 밑이 거뭇거뭇하고 주근깨가 있었다. 실버 이어링에 걸린 큐빅이 그녀가 흥분해서 말을 뱉을 때마다 달랑거리며 나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간호사인 아내는 다행스럽게도 그 설명을 모두 듣고 있는 나를 기다려 주었다. 아내에게는 어쩌면 흔한 일일지도 몰랐다.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 탓인지, 막내의 고열은 금세 가라앉았다. 어쨌든 독감이어서 5일간 학교를 쉬어야 했다. 겨울 방학이 이틀 남은 시점이라 막내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두 살 위인 둘째는 겨울나무처럼 메마른 얼굴로 아침에 집을 나섰다. 둘째의 뒷모습에서 빨갛게 충혈된 친구의 눈을 문질러 자기 눈에 발랐다던 아내가 떠올랐다. 학생에게 독감이란 특권의 다른 이름인 모양이었다.    

 

  처남은 베트남을 경유해 호주로 갔다. 베트남에 머무는 동안 기내식의 부족한 열량을 채울 계획이라고 했다. 처남이 공항에 내려 가장 먼저 한 이야기는 기내식이 형편없다는 말이었다. 성토의 요점은 질보다는 양이었다. 아내는 그런 동생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듯했다. 두 사람은 허기에 관해서만큼은 깊은 수준의 공감을 갖는 것 같았다. 아내는 수제버거 가게로 처남 내외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정신없이 햄버거를 먹는 처남을 아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퍼스는 비행기로 14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티켓팅 시점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미리 예매할수록 가격은 저렴해지는데 그럼에도 처남이 8개월 전에 구한 왕복 티켓 금액은 160만 원이었다. 적은 액수가 아니었지만 인간이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적도를 넘나들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퍽 고무적으로 들렸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라면 호주로 보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우리는 이곳에, 그는 그곳에 그대로 있을까. 변함없다고 믿었던 것들은 나를 종종 실망시켰다. 그 실망이 변함없다고 믿었던 것들이 변했기 때문인지, 그들이 정말 그대로라는 사실에 내가 질려버려서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영주권을 받을 때까지 한국에 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처남은 담담히 말했다. 대출을 모두 갚을 때까지 한국에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던 20대의 처남보다는 훨씬 나아 보여 마음이 놓였다. 호주에 머물지 않은 시간만큼 영주권 취득은 뒤로 미뤄진다고 했다. 머문 시간으로 머물 권리를 사는 것처럼. 재미있지만 씁쓸한 시스템이기도 했다.      


  영주권을 취득하면 여러모로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다. 메디케어 혜택을 적용받을 수 있고(한국의 건강보험과 유사한 사회 보장 시스템이다) 몇 년 주기로 간단한 갱신 절차만 거치면 호주에 반영구적으로 거주할 권리를 얻을 수 있다. 학비 감면이나 직장 선택의 자유도 생긴다. 학생 비자로는 한주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20시간을 넘을 수 없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는 하나의 사업장에 6개월 이상 일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호주로 떠난 젊은이들은 심각한 을의 처지에 놓일 때가 많았고 고용주의 횡포에 대항할 수단도 마뜩잖은 게 현실이었다. 더 재밌는 것은 은행 대출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 한국에서 당연하던 일들이 호주에서는 당연하지 않았고, 돈을 빌려 쓸 수도 없는 곳에서 맨몸으로 자립에 성공한 처남은 더 이상 풋내 나던 사과 청년이 아니었다.      


  나무껍질처럼 갈라졌던 처남의 발은 일주일 후 새것처럼 말끔해졌다. 병원 진료 몇 번이면 나을 것을 그저 버텨온 것이 안쓰럽기만 했다. 처남이 호주로 간 동안 아내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을 모아 선편이나 항공편으로 부쳐 주었다. 호주는 물가가 비싼 데다 병원비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쌌다. 어지간한 건 진통제로 버텨야 한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처남도 치질은 도저히 버틸 수 없었는지 몇 개월 치 치질약을 급히 보낸 적도 있었다.


  호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배웅하는 우리의 안색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불 꺼진 방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나는 한쪽이 유난히 어두워 보이는 그 잔상과 같은 순간들을 저울질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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