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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에세이

by 작가 전우형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은 역설입니다. 역설, 패러독스(paradox)를 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이라 말합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인공이 처한 현실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수용소의 생활을 게임으로 변모시키는 아버지도, 남편과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원해서 수용소행 기차에 오른 아내도, 아빠의 천진난만한 거짓을 믿으며 수용소에서의 삶을 버텨나가는 아이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애씀'은 누군가의 인생을 3도에서 5도가량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현실'이라 이름 붙인 그 어떤 모습이 가진 냉정하고도 틈 없는 온도로부터.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의 역설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가장 아름답지 않을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질문을 비틀어보기로 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야만 하는가.' 조금 더 바꿔봅니다. '인생은 '반드시' 아름다워야만 하는가.' 혹은 '인생은 '늘' 아름다워야만 하는가.' 염세주의자인 저에게는 인생의 모습에 대해 너그러운 관점을 취할 때 불안이 잦아드는 것 같습니다. '내가' 감각하는 인생의 모습이란 '때때로'나 '종종'이라기보다는 '대체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유는 묻지 않기로 합니다. 상처받지 않는 대답은 '마음속에 빗자루가 있는데 비질을 하면 할수록 먼지만 더 자욱하더라'입니다. 덜어낼 수 없는 일부를 덜어내지 않기 위한 연습입니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은 비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이름에 조건을 달지 않기로 합니다. 바라는 어떤 모습에 '아름다운'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합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할 뿐 아니라 미래의 행복을 51%의 확률로 이미 어그러졌다고 단정 짓는 자동적 사고를 교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보랏빛으로 물든 6월의 노을을 눈에 담아보기로 결심합니다. 나는 '대체로' 염세주의자이지만 '간혹' 석양을 눈부시게 합니다. 그런 순간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지 못해도 아름다운 '순간'은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합니다. 슬픔과는 구분해 보기로 합니다. 이런 구분이 어리석다 여길지 모르지만 인생을 3도에서 5도가량 아름답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은 역설입니다. 정원사의 손길로 삐져나온 부분을 다듬지 않기로 합니다. 보름달을 기다려도 좋지만 차오르고 사그라드는 달의 정취를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도 좋습니다. 인생이 아름다워지기를 기다리지 않기로 합니다. 누군가에게 생의 단 하나 소원이었을 가치를 비관론자의 시선에서 헤아립니다. 인생은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을 곱씹습니다. 오래 씹을수록 풀향이 입안에 풍부해지는 산나물처럼, 인생에는 향이 있습니다. 눈길이 오래 머무는 문장처럼, 바람에 실려 오는 각자의 향을 따라 오늘도 한걸음 내디뎌 보기로요. 아름답지 않아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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