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글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글은 누군가를 생각나게 합니다
글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합니다
글 쓰는 일은 그래서 두렵습니다
글을 쓸 때 보지 못했던 나를 봅니다
부인하려 했던 나의 어둠을 봅니다
어둠 속에는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모든 것이 있을 수 있음을
볼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깨닫습니다
그러나 볼 수 없다는 것은 진실로 절망입니까
보고 싶지 않더라도 보아야 함을
가장 두려운 장면으로부터 눈 돌리지 않아야 함을
글 쓰는 일은 명령합니다
나는 글 쓰는 일에 재능이 없지만
재능 없이도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일을 안다면
그건 글쓰기입니다
그러니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앞을 보는 일처럼
봄은 생각을 일으킵니다
봄은 기억을 일으킵니다
자꾸만 일어나는 생각이
문득문득 고개 드는 기억이
나를 두렵게 합니다
그래서 또
나는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