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잘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취미의 세계에는 무수한 고수가 있다

by 임희걸

철학자 니체는 인간은 설사 심한 고난을 겪어야 하더라도 성장하고 싶은 본능을 가졌다고 보았다. 우리에게는 탁월함을 지향하는 욕구가 있다. 인간은 안정적이고 안락한 삶만을 바라지 않는다. 고난을 겪더라도 힘이 증가하고 있다는 느낌, 고난을 이기고 더 강한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을 추구한다.


누구나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싶어 한다.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히어로를 동경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의 히어로, 헤로인은 엄청난 고난을 겪는 인물이다. 자신과 싸움을 하는 모습도 자주 그려진다. 결국에는 그가 고난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 최고의 탁월성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낀다. 주인공이 어떤 갈등도, 어떤 고난도 없이 평탄하게 살아간다면 그 영화에서는 어떤 희열도 느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고난 극복을 통한 탁월함에 도전할 수 있다면 직장도 멋진 곳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조직은 위험을 관리하고 회피하려고만 한다. 조직의 특성이 원래 위험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검토하고 또 검토해서 어떤 위험도 0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위험이 0에 가까워질수록 모험과 도전 또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변화관리 워크숍에서 서로 ‘내 인생 최고의 책’에 대해 얘기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거리낌 없이 중학교 시절 읽었던 <갈매기의 꿈>을 꼽았다. 비교적 짧은 소설이었지만 처음 몇 장만으로도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당시 내가 갈증을 느끼고 있던 ‘성장과 열정’에 관한 주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장’, ‘열정’ 두 개의 키워드는 심장이 두근거리게 만든다.


갈매기의 꿈은 먹이를 잡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별종 갈매기가 주인공이다. 갈매기 조나단은 먹이를 찾는 일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다른 새들과는 달리 더 높고 더 빠른, 더 우아한 비행 방법만을 탐구한다. 소설가는 먹이를 두고 서로 싸우기 일쑤인 갈매기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시종일관 밥벌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탁월함만을 추구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밥벌이가 아닌 것에 몰두하는 기쁨, 거기에는 마약 같은 ‘성장에의 몰두’가 숨겨져 있다. 운동 중독에 빠지는 것도, 게임 중독에 빠지는 것도 조금씩 성장하는 기쁨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배고픔도 잊고 성장에만 매달리는 조나단의 모습이 묘사될 때면 ‘그냥 소설일 뿐이야.’하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한 분야의 고수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보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의 탁월함에 추구하는 사람이 고수가 된다. 그가 그렇게 도전하는 이유는 오로지 몰두의 기쁨, 성장의 기쁨 때문이다. 몰두와 성장을 추구하면 언젠가는 다른 이들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게 된다. 이게 개인의 <초격차>에 해당한다. 보통은 일에서 고수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취미 영역에서 더 쉽게 고수를 찾을 수 있다.


자전거, 배드민턴, 스케이트보드, 스트릿 댄스 동호회 모임에는 셀 수 없는 고수가 있다. 이들은 어떤 경지에 다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왜 회사에는 이렇게 일의 고수가 적은가. 조직이 위험관리를 위해 검토하고 또 재검토하는 동안, 구성원이 몰두와 성장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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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디테일에서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가 있다. 만화 <배가본드>는 일본의 전설적인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무사시는 검술 실력이 높아지자 자신의 실력에 자만하기 시작한다. 자기가 제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검술 도장 깨기에 나선다.


당시 일본 제일의 무사는 ‘야규 세키슈사이’라는 노인이었다. 그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무사사의 결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작약꽃 한 송이를 칼로 잘라 무사시에게 보낸다. 무사시는 작약꽃 줄기가 잘린 모양을 보고 고수의 실력을 알아보고 대결을 포기한다.


줄기 절단면만 보고 상대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본다. 고수일수록 디테일에 강하다. 태권도의 최고 고수라는 9단의 시범 영상을 보았다. 아주 기본적인 돌려차기였을 뿐인데 기품과 힘이 느껴졌다. 하나의 동작으로도 얼마나 오래 연마를 해왔는지 느껴졌다. 숱한 훈련과 겨루기의 냄새가 풍겨 올랐다.


롱보드 강습을 받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가장 기본적인 스텝이 잘못되었다고 지적받은 때였다. 나는 여러 선생님께 강습을 받았는데 그 선생님들이 모두 기본적인 자세가 틀어져 있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6개월 이상 연습을 한 동작들인데 맨 처음부터 다시 연습해야 했다.


처음에 기본자세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서는 롱보드 연습을 그만두려 했다. 오랜 시간 연습했어도 기초마저 숙달하지 못했다는 것은 재능이 없다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연습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질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이런 취미는 중년이 배우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10대, 20대나 할 수 있는 취미를 잘 못 선택한 것일까?


정말 기운 빠지는 일이었지만 결국에는 그 피드백에 따라 자세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 다니다 보면 한 사람의 실력은 결국 작은 곳에서 차이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여러 번 보아왔기 때문이다.


취미나 일이나 탁월함에 이르는 과정은 비슷하다. 기본이 튼튼해야 고급 스킬도 빛나는 법이다. 아주 기초적인 일도 고수가 하면 다르다. 고수가 아닌 사람도 딱 보면 알게 된다. 아, 이건 고수가 내놓은 일이구나 하고.


일이나 취미나 궁극적으로는 탁월함에 이르고자 하는 과정이다. 일에서보다는 취미에서 탁월함에 이르는 과정이 쉽게 보인다. 취미는 자발적으로 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은 경제적 보상, 조직의 생리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개입되어 어떻게 하면 내 직업에서 탁월해지는지 알기 어렵다.


취미에서 탁월한 단계에 이를 수 있다면 이 방법을 일에도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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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취미처럼 재밌을 순 없을까?


20세기 말 서구의 기업에서는 펀-경영, GWP 경영 등의 개념이 유행했다. 지금도 경영전문지인 포천(Fortune)은 일하기 좋은 기업 리스트를 매년 발표한다. 그러나 그러한 기업들의 노력이 성과를 올렸는가에는 의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다. 일 자체는 재미가 없는데 최고급 식사나 간식을 제공해주고, 각종 펀 행사를 한다고 기뻐할 직원은 많지 않다.


10여 년 전부터 한국 기업들도 속속 펀-경영을 도입하였다. 실리콘 밸리의 첨단 기업들이 높은 성과를 내자 그들의 기업문화를 복사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처절히 실패했다. 일단 놀이처럼 일하는 문화를 만들고 그런 문화의 정착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한 선진 기업들과 한국 기업은 달랐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 마지못해 펀-경영을 시도하였으므로 직원들의 놀이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이벤트에만 집중했다.


내가 만난 한 임원은 <즐거운 일터>라는 개념에 분노를 드러냈다. 이런 개념은 모두 허상이며 어려움을 많이 안 겪어본 사람들의 이상론일 뿐이라고 했다.


"일은 하기 싫어도 꾸역꾸역 해 나가는 것이다. 괴롭고 하기 싫어도 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다. 세상살이가 모두 고통과 어려움의 연속이다. 그런데 어떻게 재밌는 것만 추구하려고 하나? 펀-경영을 한다는 회사 중에 성과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얘기도 잘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리더가 적지 않다. 서구의 펀-경영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이벤트 중심으로 진행되니 비용만 많이 들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또한 리더 대부분이 즐기기보다는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성공한 경험이 많다.


기업들이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제대로 동기부여를 하지 않으면 경쟁자와 비교해서 차별화된 성과를 올리기 어렵다. 어렵지만 구성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 조직은 폭발적인 성과를 달성한다.


자신의 책, <드라이브>에서 대니얼 핑크는 우리를 움직이는 동기부여 요소 3가지를 제시한다. 목적의식(Purpose), 숙련(Mastery), 자발성(Autonomy)이 그것이다. 목적의식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더 큰 무언가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던가, 일로써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사회적 사명을 강조하는 기업에서 일하면 목적의식이 충만해진다.


숙련은 중요한 일을 더욱 잘하고 싶다는 욕구다. 숙련에 도달하려면 긍정적인 자기 암시가 필요하고 고난을 이겨내는 끈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전문가가 되고, 프로가 되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일한다. 자발성은 자신이 삶을 주도하겠다는 욕구다. 업무에 자율성이 부여되어야 창의성이 나온다. 최근 동기부여와 관련하여 가장 강조되는 개념이 바로 <자율성>이다.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에서 높은 성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이러한 3요소를 두루 갖춘 회사들은 대부분 노는 것처럼 일하는 문화를 가졌다. 놀이야말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동기가 부여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매번 혁신적인 상품과 서비스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실리콘 밸리 기업들은 직원들이 노는 것처럼 일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나이키도 창의적인 디자인과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제품을 만든다. 따라서 놀이가 포함된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기업은 극소수다. 대부분 회사, 특히 한국 기업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목적의식과 자발성이 사라지고 있다. 목적도 잘 모르겠고, 자발적이지도 않으니 지속해서 실력을 성장시킬 리가 없다. 과거의 장인들은 자신이 만든 최종 결과물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옹기장이는 자신이 만든 옹기에 김치를 담가 겨우내 먹는 모습을 본다. 대장장이는 그가 만든 낫과 호미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모습을 본다. 요즘 직장에서는 장인이 느꼈던 자부심과 주체적인 자발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리더가 가만히 있으면 조직의 문화는 점점 나쁜 쪽으로 흘러간다. 훌륭한 조직을 만들 것이냐, 최악의 조직으로 흘러갈 것이냐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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