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처럼 즐거운 일터를 선물해주길
개인에게는 아무런 득도 없는데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리더가 있다. 바로 동호회의 회장이 그렇다. 동호회 회원이 늘고 단합이 잘 된다 한들, 리더에게는 특별한 보상이 없다. 활동이 좋아서 동호회를 만들었으니 기왕이면 조직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심히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헌신’이라고 부른다.
동호회의 회장은 대부분 그 분야의 고수다. 네이버의 롱보드 카페의 운영자들은 롱보드를 타는 데 있어서 최고의 고수다. 일단 경력이 상당하고, 수많은 입문자, 중급자, 실력자를 보면서 자신도 실력을 갈고닦았다. 이외에도 보드 장비에 대한 지식도 탁월하다. 회원들이 질문을 올리면 그것이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척척 대답을 내놓았다.
어떻게 보면 요즘 많이 늘어나고 있는 <실무형 관리자>라고도 할 수 있다. 업무가 점점 더 세분되고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관리만 하는 팀장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자신의 고유 업무를 수행하면서 관리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실무형 관리자가 늘고 있다. 실무형 관리자는 업무 전문성은 그대로 유지하되, 조직 관리 역할도 실행한다. 업무량이 많고 힘들지만,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셈이다.
앞으로는 <동호회장 리더십>이 주목받을 것이다. 조직 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리더는 권위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통제와 관리를 통해 팀을 움직이려 한다. 팀원 개개인의 실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자꾸 확인하려 한다. 팀원으로서는 확인이 잦아질수록 불필요한 보고가 늘어난다. 시간이 갈수록 팀장과 팀원 간의 신뢰가 깨진다.
자신의 분야를 즐기면서 최고의 역량을 갖춘 리더는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따른다. 우선은 탁월한 전문성이 있으니 롤모델이 된다. 동호회에 새로 가입하는 초보들은 고수인 운영진을 롤모델로 삼고 성장한다. 이들은 롤모델이자 교육자로서 신입을 성장시킨다.
이 과정에서 자율성, 성장의 가치가 충족된다. 동호회에서는 어떤 강요도 없다. 설사 운영진이 몇 가지 규정과 절차를 강요하더라도 쉽게 통용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순수하게 자율성과 참여를 통해 조직이 움직인다. 기업이 이렇게 자발적으로만 운영되기는 힘들더라도 <자율 조직>이 어떤 형태로 움직이는가에 대해 충분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퇴직한 상사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참 옛날얘기로 꽃을 피웠다. 내가 당시에 팀원들이 당신을 위해 많이 애썼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팀원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지 않아?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 거야. 회사가 월급을 공짜로 주나. 다 일을 그만큼 하라고 주는 거야."
구성원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은 없다. 금전적 보상의 반대급부로 일을 해야 한다고 해도, 그건 당연하다고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기브 앤 테이크>의 논리가 되는 순간 리더와 구성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긴다. 더는 둘 사이에서 존중은 사라지고 의무와 질책만 남는다.
전체 부서의 연간 교육 수요를 취합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담당자인 K 과장은 이메일로 관련 양식을 보내 놓고 아무런 조처하지 않았다. 각 부서의 팀장들은 바빴고, 당연히 4분의 1 정도만 회신해 왔다. 2주의 시간을 보냈지만, 업무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대해 K 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회신을 안 해주는 팀장들이 나쁜 거죠. 메일로 양식을 보냈으니 제 일은 다 한 셈이고요. 당연히 정해진 일을 했으니 제 책임은 다했습니다. 양식을 모두 회신받느냐는 별개의 문제 아닙니까?"
이럴 때마다 법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게 문제가 복잡해지지 않으려면 <당연히> 이전에 서로 간의 <존중>이 있어야 한다.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해 열정을 기울일 직원은 없다. 그런데도 리더들은 너무나 쉽게 '월급 받았으니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라고 말한다. 직원이 태만해지는 것은 단지 잘못된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당연히'라는 말은 그 즉시 직원을 적당히 일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부캐와 취미의 시대에 조직의 인사 제도는 더욱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 일단 구성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쪽을 발전할 필요가 있다. 일하는 방식에서는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자율성은 가장 큰 동기부여 수단 중에 하나다. 일이라면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지만 취미에서는 자기 돈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자율성 때문이다. 니체는 사람들이 탁월함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고 보았다. 본래 인간은 일에서 탁월한 수준에 이르고 싶어 한다. 장인은 더 섬세하고 더욱 정밀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기술을 갈고 닦는다. 장인 정신은 비단 돈을 더 벌기 위함이 아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고수의 길을 지향하는 것뿐이다.
현대의 회사원은 장인처럼 일할 수가 없다. 조직의 생리에 맞춰 리더가 원하는 대로 일하고 미리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자율성이 박탈되니 점점 더 수동적이고 보수적으로 된다. 이걸 버티지 못하는 젊은 직원들은 회사를 나가버린다.
최고의 인재가 서로 일하고 싶어 하는 직장은 만들고 싶다면 이들을 유혹할 일터를 설계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더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나는 매일 전쟁터로 출근한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다들 여기서 장렬하게 전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데 눈빛이 느슨하다. 긴장하고 팽팽한 분위기를 만들어라."
과거 우리 회사의 한 본부장은 시간이 나면 ‘전쟁터론’을 피력했다. 경쟁자는 모두 적이고 일터는 전쟁터다. 방심하면 죽는다. 과거 산업화의 시기에 이런 논리로 조직을 설득해왔다. 이제 우리 경제의 성장 단계가 바뀌었고 더는 전쟁터 론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리더들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여전히 두려움을 부추기는 빠른 방법에만 집착한다.
리더가 먼저 몰입할만한 취미를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