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를 견디는 관계의 에너지
우리에게는 사랑받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 본능 때문에 우리를 인정해주고, 높이 평가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면 장기적인 집중도가 최고에 달합니다. 그 집중력으로 이제까지 못했던 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주변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 1명만 있어도 일의 무게가 견딜만해집니다. 이것이 '함께의 마법'입니다.
“이건 그룹 보고서니까 엄청 신경 써야 하는 거야, 알겠어?”
부사장님은 몇 번이고 당부에, 당부를 했습니다. 2달 뒤에 있을 인사전략 보고 회의에서 향후 5년간의 인력운영 방향을 그룹의 높은 분들에게 보고해야 했습니다. 인사전략은 주요 경영전략의 하나로 별도로 보고서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인사전략 전문가를 채용하겠다고 공고를 냈지만 아직 적합한 경력사원을 뽑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제가 인사전략 보고서 작성을 맡았는데 이런 중요한 보고서를 써 본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니 인사전략 회의 총책임을 맡은 L부사장으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중요한 일을 맡았다는 자부심에 내심 기뻤습니다. 그때까지 몇 차례 컨설팅 회사의 잘 된 보고서를 보았던 터라 나도 컨설턴트처럼 할 수 있겠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반 정도가 지나고 부사장님은 중간 보고회를 하자고 우리 팀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중간 보고회에서 일이 터지고 맙니다.
“아니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게 뭐야! 문제점만 죽 나열해 놓고는 대응 전략이 너무 단기적이잖아? 그룹 임원들은 큰 그림을 원하지 실무자 수준의 구체적인 정책은 관심이 없단 말이야. 이걸 보고서라고 쓴 거야?"
부사장님은 한 참을 분을 이기지 못하고 윽박지르다가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회의실을 나가며 저를 노려보고는 한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죠.
"너 같은 게 무슨 인사팀이야? 이 친구, 다른 부서로 보내버려!”
임원의 말씀이라 무게감이 남달랐습니다. 저는 자리에 돌아와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보고가 잘 끝났으리라 기대하고 초롱초롱 눈을 빛내던 부사수 S주임이 기다리다 못해 어떻게 됐냐고 물었습니다. 1개월 반 동안 야근은 반복하며 자료를 찾고 통계를 뽑으며 저의 보고서를 도왔던 S주임... 그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걸 알리 없었습니다.
“뭐래요? 역시 우리 보고서 잘 썼다고 하죠?”
“보고서는 망했어! 1시간 동안 욕만 먹었어. 우리 고생이 수포로 돌아간 거 같다. 그리고 난 곧 발령 날 거 같으니까... 다른 사수 모시고 잘해봐라.”
S주임은 낙심한 제 모습에 어떤 위로도 건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저의 한숨소리만이 사무실에 가득 찼습니다. 그때 옆 자리에서 S주임이 부스럭 거리며 뭔가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자꾸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시끄러우니 좀 조용히 해 줄래?”
S주임은 생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짐 싸는데요? 선배님하고 저는 한 조이니 다른 부서에 가더라도 함께 가야죠. 팀장님께 저도 부서 이동 신청한다고 말하겠습니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저희는 주말까지 반납하며 2주 만에 새로 보고서를 썼고 어찌어찌 그룹 회의를 잘 통과했습니다. 한 번 크게 혼났던 터라 보고가 잘 끝났음에도 칭찬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었죠.
인사 평가에서의 좋은 점수, 상사의 칭찬, 프로젝트의 성공...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보물을 발견했으니까요. 보고서 작성이 끝나고 S주임과 자료 작성을 도와준 몇몇 부서 담당자들과 함께 한 맥주 파티가 가장 큰 보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지난 2달간의 고생을 깔깔대며 이야기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견디게 해 주는 건 결국은 사람, 동료의 힘입니다.
동료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은 전쟁터고 동료는 경쟁자라고만 여길 필요 없습니다. 직장에서는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생활하고 절대 속마음은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분들의 말씀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계로 힘들어하는 사람의 수만큼 관계에서 힘을 얻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 경우는 자주 동료와 멋진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동료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고도 편한 친구로, 형님, 동생으로 지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직한 뒤에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고민을 나누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회사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지라 격려의 깊이가 차원이 다릅니다.
동료나 동료였던 이는 내가 누구 때문에 힘들었는지 세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금방 알아듣습니다. 비슷한 사람 때문에 비슷한 고생을 했으니까요. 남자 친구나 남편에게 내가 왜 힘든지 상황을 묘사하다가 포기한 적, 있으시죠? 같은 처지에 있다는 공감대는 힘이 있습니다.
전쟁터에도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은 동료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전쟁에서 직접 칼과 총을 들고 싸운 사람은 징집당해 끌려온 농민과 노동자였습니다. 자신의 생업 밖에 모르다 갑자기 전쟁터에 끌려온 사람들이 왜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요? 저라면 오로지 도망칠 생각만 했을 텐데 말입니다. 흙이 튀고 연기가 자욱한 현장에서 나 하나쯤 도망친다고 크게 티가 나지도 않을 텐데요.
이들이 도망치지 않고 적과 맞서 싸운 이유는 전우 때문이었습니다. 어차피 일개 사병이 최선을 다해봐야 전쟁에 이기고 지는데 큰 영향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압니다. 하지만 함께 먹고 자면서 가까워진 전우가 있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줄 알면서 전투에 나섭니다. <타인의 영향력>의 저자인 마이클 본드는 사회학자 새뮤얼 스투퍼 연구진이 2차 세계대전 참전 미군 병사를 관찰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연구진이 인터뷰한 병사 한 명은 다음과 같이 싸움의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전우애는 참으로 기이하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저는 여단 본부로 옮겨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후방의 안전한 보직으로 갈 기회였습니다. 꽤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전혀 옮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전우들과의 관계에는 깨뜨리고 싶지 않은 뭔가가 있었습니다. 나는 왠지 그들에게 배신자로 비칠까 봐 제안을 거절하고 최전방 부대에 남았습니다.”
학습에 있어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 나를 가르쳐주는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 학창 시절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선생님을 좋아하거나 존경하게 되는 경우 그 과목이 덩달아 좋아지는 경험, 모두 한 번씩은 겪어 보셨을 겁니다. 단순히 선생님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과목을 듣고 싶어 집니다. 그 선생님 수업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미리 공부를 해 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과목에 흥미를 느끼다 보면 학교에 가는 일 자체가 좋아집니다. 이렇게 관계가 학습의 원동력이 됩니다. 관계가 학습 몰입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개념을 학습에 적용하면 학습 몰입이 됩니다. 배움에 깊이 빠져들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를 만큼 재미있다는 개념인데요. 많은 사람에게 죽도록 싫은 공부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칙센트미하이는 어떤 행위에 완전히 몰입할 때가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공부로도 이런 절정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웨인 주립대의 레이먼드 로드코우스키 교수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의 중요성을 증명했습니다. 스승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될수록 학습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주목했지만 공부하는 동료에게도 이 발견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같이 공부하기 때문에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현상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겪었으니까요.
직장에 믿는 동료가 있으면 일을 버텨낼 수 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료가 있으면 공부를 버텨낼 수 있습니다. 여럿이면 더 좋지만 1명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이들의 힘으로 버티다 보면 못 할 것 같은 일도 어느새 되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