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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승 Jan 30. 2021

내 사랑 열무

사랑이 사랑인 줄 모르고...

  여름엔 열무김치가 최고지..


  어릴 때부터 나는 내 또래 친구들에 비해 과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집 앞 슈퍼마켓에 가서 아주 가끔 과자를 사다 먹은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한 봉지를 다 먹었던 기억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슈퍼마켓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너는 다른 애들처럼 군것질을 잘하지 않나 보다?"라고 물어보실 정도로 나는 거의 과자 및 군것질을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질량 총량의 법칙대로 과자만 안 좋아했던 것이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은 쭈쭈바 같은  얼린 아이스 과자들은 다른 군것질거리보다는 좋아했다. 

  유리병 상자 같은 종이 박스 안에 그 얼음과자들을 사서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사서 들고 와 가위로 뚝 잘라서 한 자리에서 폭풍 흡입해서 먹곤 했었다. 배 아프다고 그렇게 한꺼번에 먹는 거 아니라고 엄마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얼음과자에 홀릭해 그 순간에 집중해서 먹었던 어린 시절 그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난다. 그래서인지 내가 좋아하던 반찬은 쌀밥에 고기가 아닌  김치이었다. 늘 맛있는 김치만 있음 밥 한 공기를 뚝딱 먹을 수 있었던 기억부터 엄마가 자주 맛있게 만들어주던 그 김치들 중에서 가장 나의 원탑은 열무김치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마트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므로 아마도 여름이 오기 전 바람이 살랑살랑 불던 일요일 오후 외갓집 대청마루에서 물 말아먹었던 열무김치나 총각무가 달린 김치들을 한 입 베어 물면 천하를 얻은 진미의 맛이었던 기억 때문에 나는 지금도 그 김치 맛만 추억하면 입가에 입맛이 돌기 시작한다.

  어릴 때 기억만으로 인터넷 쇼핑으로 김치를 편하게 시켜 먹을 수 도 있었겠지만 소꿉놀이하듯 김치를 옵션별로 만들다 보니 재미도 있지만 야채 하나하나 긁어내고 손질하고 다듬으면서 느끼는 즐거움 또한 정말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버전별로 보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에게 누군가 당신에게 김치 맛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이 나라에 살면서 누리는 나름 즐거운 사치 중에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김치를 담그면서 어느 정도의 어떤 맛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수고로움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맛있게 담근 김치가 김치 냉장고 안에서 숙성을 거치고 익고 나면 그 맛있는 맛을 나눠먹을 상대를 고르는 일도 진심 행복한 일이다. 초여름쯤부터 먹을 수 있었던 열무를 나는 그 어떤 반찬보다 사랑했었다. 사실 김치는 다 맛있긴 한데 그 어떤 반찬보다 열무김치를 먹을 수 있었던 그 계절을 그 어느 계절보다 사랑하고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처럼 거의 사계절 내내 열무김치를 먹을 수 있고 담글 수 있는 시대를 산다는 건 약간의 게으름만 없다면 가능한 그런 일이었다. 매번 부지런할 필요는 없는 일이기에 먹고 싶을 때만큼 담그려는 부지런함만 있다면 이 모든 건 가능한 일이다. 열무를 사서 절이고 그동안 야채를 다듬고 하다 보면 어느새 금방 절여진 열무를 다시 양념만 해도 되는 그 시간들이 나는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참 재미있다. 그렇게 정성 들여 김치를 담근 다음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빛나는 자태로 저 여기 있어요! 하고 누워있는 열무들을 발견하게 된다.

  길지 않은 기다림이었지만 그래도 김치냉장고에서 잘 익은 후 내 입에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열무를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서 약간 거리가 있는 시장에서 구해온 열무를 샀던 순간도 김치 속에 들어갈 재료들을 손으로 하나하나 다 다듬던 순간도 입 속에 맛있게 들어가는 그 한순간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때 외국에서 살아볼까? 하고 마음의 저울질이 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 모든 걸 포기하게 된 건 내 식성으로는 내 나라밖에서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여행 갈 때마다 집에 오자마자 짐을 푼 순간에 집밥을 먹으면서 생각한다. " 역시 나는 힘들겠구나!"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올 집과 돌아올 내 나라와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행복감은 나만의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선조들의 지혜가 빛나던 시절의 고된 삶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풍요로움은 가끔은 거저 얻은 것처럼 쉽게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주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거라고 이젠 믿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나도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 늘 생각하고 집중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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