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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간이 다 내게 미리 보낸 신호.

나만 몰랐던 진실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by 홍지승

맬컴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에서 성공의 비결로 "1만 시간의 법칙"을 꼽았다...(중략).... 하루 세 시간씩 일주일에 20시간이면 대략 10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10년을 매일같이 꾸준히 노력하면 확실히 변하긴 변한다. 미운오리가 백조가 되고 초심자가 베테랑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그 1만 시간을 견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1만 시간의 결과엔 환호해도 1만 시간 자체엔 관심이 없다. 영화에서도 1만 시간은 빨리 감기로 처리해 버린다. 끝없이 반복하고 실패하고 헤매는 시간을 겪어 낼 이는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정옥희,「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중에서-




연습실 안에서의 시간(時間)


발레는 인내와 절제를 기본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호감으로 시작해서 습관이 되기까지의 시간에서 저절로 체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결국 몸이 익숙해질 때까지 자신과 엄청난 싸움을 해야 하고 그 싸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발레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삶이 그렇고 예술이 그렇듯 사는 건 그렇게 힘들고 괴로운 녹록지 않은 시간들을 이겨낸 사람들에게만 관대한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예술계에 입문해서 첫 발을 떼었을 때, 그 낯선 풍경과 공기가 익숙해지기까지의 시간은 실로 일반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신기했던 건 시간을 바라보는 전공자들의 각자의 시선과 감정이었다.

연습실 안에서의 시간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예를 들어서 오전 10시 연습이라는 통보가 되었을 때 보통 사람들을 기준으로는 10시쯤을 기준으로 조금 빨리 오거나 크게 늦지 않게 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의 관념인데 발레를 하는 사람들은 오전 10시까지 연습실로 와서 연습을 하자는 말에는 30분 전에 와서 미리 연습복으로 다 갈아입고 몸을 좀 푸는 행위인 준비시간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 나는 알지 못했다.

준비라는 건 바로 실전에 투입되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을 말하는데 누군가 이런 시간관념과 준비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땐 그 시간에 대한 설명이 그렇게 낯설고 이상했다. 왜 그래야지? 했을 땐 이미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해야 하는 그런 피치 못할 상황이라는 것이 조금 억울했고 처음부터 정확하게 10시 연습이지만 미리 와서 옷을 갈아입고 워밍업을 하고 있으라는 설명 없이 그저 10시 연습이라는 말은 좀 냉정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보통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편적인 기준인 '빨리빨리'가 아니라 '미리미리'해야 한다는 시그널은 그렇게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강박증 환자가 아니랍니다.


발레를 배웠고 그 공간에서 그렇게 시간에 대한 이해가 익숙해 지고도 남았을 때 매일같이 우리가 가끔씩 하는 약속들 앞에서조차 시간은 자유롭지 못했다. 보통 본인을 기준으로 시간 약속을 칼 같이 지키는 사람들에게 어떤 코멘트 없이 자기 편한 대로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볼 때 발레했던 사람들의 시간관념이 약간은 강박증 환자처럼 보일 수 도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이란 게 있고 그때마다의 상황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서로 '조율'이라는 걸 하면 불편할 일이 어쩌면 최소화되어야 함이 맞다. 그런데 발레를 하고 나서부터의 시간은 언제나 내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기준점 처럼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특히나 지금보다 훨씬 젊고 어렸을 때 대학원 졸업하자마자 바로 다음에 쓸 글을 준비하기 위해 약속을 잡았을 때 작가도 아닌 사람이 작가랍시고 이런 종류의 글을 쓴다고 만나주십사 하고 약속을 잡았을 때 지극히 사적인 기준으로 1명만 만난 게 아니라 10명 이상, 20명 정도 사람을 만났다고 기준으로 한다면 그때 먼저 약속 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 시간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들의 인터뷰는 늘 기대이상이었다. 하지만 약속이란 게 무릇 매번 잘 지켜지는 것만 있는 게 아니어서 나 역시도 바람을 맞을 때도 있었고 시간이 돼서 전화를 해도 안 받기도 했을 때는 괜히 이 일을 시작해서 무시만 받는다고 혼자서 서글퍼하며 울었던 적도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이 일을 준비했을 때는 책가방만 메고 약속장소 근처인 무용 연습실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상대방을 기다릴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어떤 기대감 때문이 앞서서 그랬는지 설령 부당한 대우를 받았어도 부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마저 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게 아무렇지 않았고 그 어떤일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융통성 있게 시간에 대한 감각이나 감정이 그렇게 예민하지 않았던 그런 시기에 날 서지 않은 감정들이 훨씬 많았던 덕분에 그 지루한 시간들을 잘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는 않았지만 처음과 다르게 경험치가 쌓이고 나름 요령도 생겼을때 약속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도 어쩌면 '일'의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었고 덕분에 시간 안에서 사람을 제대로 직시해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도 이 일을 하면서 크게 한 수 배운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감에 따라 약속도 지키지 않는 누군가에게 양질의 인터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되었고 자신의 시간에만 관대한 사람들에게 3번만 약속해 보고 지켜지지 않는 걸 보면 말하지 않아도, 만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저절로 생기기도 한다.

물론 부분을 놓고 이렇게 확대 해석을 하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개인적인 경험담으로 이렇게 이번 회차를 마무리하고 싶다. 한국 발레 역사의 산증인인 임성남 선생님이 내게 말씀해 주신 대로 인터뷰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보니 어떠냐고 먼저 물어봐주셨고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시간 약속을 3번 이상 안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인터뷰 약속을 잡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라고 충고해 주셨다.

사실 시간 약속을 몇 번 해 보게 되면 사람마다 각자 다르기도 하겠지만 시간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애당초 안 만나는 게 훨씬 나을 거라고 하셨다. 시간을 기준으로 삼고 약속을 해 보면 결국 사람이 보일 것이라는 말씀은 정답이었다. 물론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조심스럽긴 한 일이었지만 그때 당시 시간을 통해서 사람이 보이고 그것을 통해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속도 잘 어기고 마치 만나줄 것처럼 하다가 급하게 생긴 일 때문에 다음에 보자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씀드렸을 때 당신께서는 그런 사람이 만약 있다면 과연 그 인터뷰 자체가 양질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으냐며 내게 되물어보신 적이 있었다. 그땐 우물쭈물 제대로 말하지 못했지만 경험상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니 정말 시간 약속만 해 봐도 그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서 하는 말이니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날 이후에 나는 시간과 사람을 동일 선상에서 놓고 보았을 때 전처럼 무작정적인 희망이나 기대로 상대방의 마음과 행동 때문에 상처받는 일은 많이 줄어들었다.

분명한 건 헛된 기대라는 게 사람을 얼마나 사람을 지치고 허망하게 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시간을 잘 쓰고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사람들에게의 진심은 생각보다 위대했다.

모든 게 그렇듯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나는 대충대충 살면서 상대방에게는 늘 칼 같은 엄격함을 요구한다는 건 진짜 어이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약속을 잘 지키고 상대방의 시간도 귀하게 여기고 그렇게 늘 서로가 조율하고 맞춰가는 과정에서의 단호함은 서로에게 분명 플러스가 되고 그 시간 안에서의 감정들은 보너스처럼 따라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그 어떤 덕목보다 중요한 일이자 행동이라는 걸 절대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한다.





사진출처: 김윤식 사진작가(대문사진)

2019. 체코 국립발레단. Yoon6photo


참고문헌: 정옥희.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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