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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절제의 빛나는 하모니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by 홍지승

배고픔을 다 채우지 마라.

감로주의 술잔일지라도 입술에서 떼어내어야 한다.

욕구야말로 소중한 가치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갈증이 나더라도 이를 가라앉히되 완전히 풀어서는 안 된다.

좋은 것은 양이 적을수록 그 값어치는 배가 된다.

누구의 마음에 들려면 그의 갈증을 돕는 것이 상책이다.

남에게 한꺼번에 다 만족을 주지 않으려면 그에게 지나치게 맛을 보이기보다 맛을 덜 보이는 게 낫다.

그러면 그는 나중에 힘들여 얻는 행운을 곱절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세상을 보는 지혜중에서 -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어쩌면 발레를 배우기 전의 인생에서 내가 배가 고플 일이 언제 있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거의 늘 넉넉하게 잘 먹고 잘 자고 마음 편히 잘 지냈던 기억이 더 많다. 고생이라고 해봐야 뭐 큰 고생도 아니었던 시절,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뭐 하나 편히 먹어 본 기억이 없어서인지 처음에 먹지 말라는 것 투성이의 발레학원은 무슨 금단의 영역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게 불만이었면 "아~ 저는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서요. 다른 학원을 가는 게 맞을까요? " 해야 맞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전공으로 들어가면 그 모든 불만과 불평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그렇게 많은 준비를 요하는 법이었으나 그것을 바로 어렵지 않게 순응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나는 처음엔 눈만 껌뻑 껌뻑거리면서 그 분위기를 익숙해지기 조차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투덜대지 않아야 함을 배웠고 많은 순간 인내와 절제가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 어려운 일이 바로 쉽게 받아들여지고 순종하듯 자신에게 스며들어 어렵지 않게 춤을 배운 건 아니었지만 그 모든 과정이 몸에 배고 익숙해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무던히 노력하며 살아서 습관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돌이켜보면 엄청난 행운이었다. 물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자주 그 마음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일기를 쓸 때마다 그 투덜거림은 남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투덜거린다고 해서 그 어떤 결과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경험상 좋은 결과를 마주할 일은 거의 없었다.

언제나 그 모든 상황을 시작과 끝은 나에게서 시작해서 내가 안고 가야 하는 감정과 일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루한 시간들을 잘 견뎌낸 덕분에 자주 화내지 않고 일희일비하지 않는 감정을 배우고 타인에게 폐 끼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고 살게 된 건 진심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뷔페 가서 많이 먹지 말라는 말이나 햄버거 먹을 때 양쪽 빵 2개를 다 먹는 건 반칙이라는 말과 더불어 당연히 탄산음료도 먹지 말라는 말이 보너스로 따라오기도 하고 빵이나 떡, 당분이 많이 들어간 음료는 마시지도 말라는 말은 사실 처음부터 익숙한 일은 아니긴 했다.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찌는 친구들이 아니고서는 매일같이 몸무게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보이는 걸로 모든 게 평가되는 과 특성상 말은 아무런 힘이 없고 결국 무대 위에서 모든 건 한 순간으로 평가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우리 몸이 얼마나 정직한지를 알게 된 이후 먹을 만큼 찌고 안 움직이는 만큼 살이 오른다는 것을 경험해 보고서야 음식은 그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만이 아니고 나의 잘못된 식습관이 얼마나 나를 고되고 피곤하게 하는지를 알게 된다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잘 수 있는 운명은 당분간 안녕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은 그렇게 냉정한 것이었다.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그에 준하는 조건을 갖춰야 누구에게도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당당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고나 할까? 최소한의 자신과의 약속도 못 지키는 사람이 춤을 추겠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춤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발레는 그렇게 엄격한 예술이었다.




지켜야 할 자신과의 약속.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못하고 춤을 배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시작이 다소 까다롭고 어렵게 느껴질 순 있어도 지켜낼 때마다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플러스가 되는 경험을 하고 나면 몸의 이야기는 또 다르게 변할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되는 일이었다. 또한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바로바로 어떤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 묵묵하게 꾸준히 자신에게 한 약속을 잘 지킨다는 건 그 어떤 일보다 중요한 일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할 때는 식사노트까지 만들어 쓰고 나쁘고 도움이 안 되는 음식들을 먹지 않으려고 했을 때 비로소 나는 내게 집중한다고 생각했다. 다소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의 시작이긴 했지만 그래도 꿈을 꾸는 동안에 자신에겐 당당할 수 있는 무언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듯 무언가를 하겠다는 건 그렇게 많은 인내를 시작으로 한다.

내 마음대로 해서 되는 일은 절대적으로 세상에 하나도 없다. 가끔 뚱뚱하면 어때? 그래도 내가 춤추는 걸 좋아하고 추고 싶을 때 춤을 좀 출 수 도 있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거지? 하는 종류의 외국에서 만든 틱톡을 본 적이 있다. 그래 그렇게 할 수 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관객이 아예 없을 건 각오하고 방에서 혼자서만 추는 춤을 추어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려면 몸부터 이미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특히나 발레는 그런 엄격함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와서 연습실에 오는 것 자체가 죄라고 배웠고 그 때문에 그때 배운 절제가 살면서 많은 부분에서 참을성을 길러지게 했다. 물론 참다 참다 어느 날 아주 작정하고 먹는 치팅데이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봤자 먹고 나서 후회할 바에 아예 처음부터 시비 걸듯 뭘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아는 건 훨씬 더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감로주의 술잔처럼 아예 처음부터 입에 대지 않는 술잔은 그 어떤 식으로도 희망고문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아예 그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게 낫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약속한 결과만큼의 결과가 따라와 준다면 그때서야 조금씩 마음의 여유나 사치를 부릴 수 도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춤출 자격이 있는 사람.


돌이켜보면 사고가 유연하지 않은 사람의 삶은 누구보다 본인에게 더없이 고단 한 것이었다. 원칙만을 앞세우는 사람에게서의 본인 스스로에게 갖는 칼 같음은 사실 결과가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을 때 누구라도 혼자서만 겪어내야 하는 고통과 그 옥죄여옴은 겪어보지 않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래서 그런 인내의 시간들 앞에서의 무던한 성격은 나날이 칼날처럼 서슬이 퍼렇게 서게 되기도 하고 때론 극도의 예민함으로 자신을 궁지에 몰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순간들을 맞이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인내해야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될까? 싶어서 안절부절 못 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그런 수많은 인내의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성숙해지고 삶의 대한 관점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댄서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내가 하지 못한 테크닉 있는 움직임들을 척척 해내는 그들이 대단하게 여겨져서 이고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간 그들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고 그 어떤 이유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그들이 만들어 낸 숨을 노고를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때론 나도 내가 아는 만큼의 지식이 늘 두렵고 내가 경험한 일들의 기준에 애매모호하다고 여겨질 때도 많아서 글을 쓸 때마다 마음이 복잡 미묘해질 때도 수 도 없이 많지만 분명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건 무대에서 빛이 나는 댄서처럼 하얀 종이 위에 키보드 위에 눌러지는 글자들도 다듬고 다듬어서 올려놓고 보면 좋은 춤 못지않게 빛나는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매 순간 의심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앞선 마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한 걸음이라도 한 발자국씩이라도 나아가는 걸음이 있다는 건 분명 타인이 내게 주는 행운이 아니라 내가 내게 주는 작지만 소중한 행운의 발걸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예술은 그렇게 거창하기만 한 게 아니라 하루의 소중함, 자신이 자신을 이겨낸 인내심과 절제로 인해 얻어낸 감로주의 술잔들이라고 생각한다.

발레를 배우고 난 뒤부터는 전처럼 평범하고 온순한 나로 돌아가지 못하고 늘 적당히 불안과 염려를 준비 못하면 안절부절못하며 지내기도 하지만 가끔씩 하고 싶어 하는 어떤 일들 앞에서 할까? 말까? 갈까? 말까? 만을 고민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되어 좋다. 고민할 시간에 일단은 시도해 보고 "이번에도 한 수 배우지 뭐!" 하는 마음으로의 시작해서 나아가는 것은 전과는 아주 다른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걱정만으로 뜬 눈을 세운 밤이 아닌 주눅 들지 않고 삶 안에 천천히 걸어가는 삶은 내게 언제나 힘이 되어준다.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을 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싶은 그런 마음으로 우리는 여전히 걸어가면 된다. 그것이 곧 삶이니까!






사진출처: 김윤식 사진작가(대문사진)

2019. 체코 국립발레단. 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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