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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성장시킨 태도와 매너

애들아 우리 그때 참 좋았는데..그렇지?

by 홍지승

우리가 함께 보낸 그 시간들


집에서 이쁨깨나 받던 딸내미 친구들이 많이 모인 어떤 집단이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저는 그런 집단이 무용학과 친구들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보통 다들 예쁘고 귀하게 자란 티가 역력한 친구들이었죠. 가장 예쁘고 빛나는 나이에 만나서 같이 연습을 하고 같이 무대에 올라선 경험을 한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서 만나도 어제 만난 친구들처럼 깔깔대고 농담하고 눈 한번 흘겨도 삐치지 않는 그런 친구들이었죠. 게다가 가정형편들도 거의 다 좋은 편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언제나 예외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잘 살다가 집이 망했지만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한다고 힘들게 입학한 친구도 있었고 각자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어도 서로 배려하고 사이좋게 지냈야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무조건 연습을 같이 해야 했고, 함께 교양수업을 강의실마다 찾아서 같이 받아야 했고, 해마다 무용공연을 모두 협력해서 무대에 올려야 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었죠.

춤을 잘 추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을 집단에서의 성실함은 당연한 것이었고 언젠가 한 번은 공연 연습을 하는데 어떤 선배 한 분이 결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이었는지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교수님은 '우리가 한 팀이라는 사실을 잊었냐'라고 하시면서 그 선배가 올 때까지 절대 연습을 쉬지 않겠다고 하셨고 결국 다른 선배들의 빠른 연락을 받고 그 선배가 부랴부랴 연습에 합류한 적이 있었죠. 다른 과(科)에서 보면 뭐 저리 유별스럽게 연습을 하냐고 했을는지는 몰라도 그땐 그런 분위기에서 순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런 처절한 시절들도 있었습니다.



편견과 맞서야 하는 그 감정들에 대하여


일반적인 학과가 아니라 예술대학을 다닌다고 하면 대부분 피드백은 한결같았습니다."돈 잡아먹는 귀신이겠네요", "집 한 채는 해 먹었겠네"라는 식의 말들을 대부분 스스럼없이 하시기도 하고 그런 말을 자주 듣게 되기도 되어서 처음엔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기분도 많이 나빴고 화도 많이 나서 앞으로는 그런 말에 한번 나도 쐐기를 박아줘야지 하면서 울분이 생긴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들도 여러 번 듣다 보면 또 저렇게 말하시나 보다 하고 '네네~~~' 하고 빨리 인정하고 그 말을 끊어내버려 지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시절 노트만 보면 무용(舞踊)했다고 무용(無用)한 사람이 되지 말자는 글을 수 도 없이 썼습니다. 왜 무용학과 다니는 친구가 책을 읽으면 신기해하는지 이해가 안 갔던 시절, 제가 지금 이렇게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던 것은 대학생부터 읽었던 양질의 책들 덕분입니다. 그냥 잡히는 대로 읽었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다 글을 쓰고 또 쓰다 보니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반문할 수 있습니다. 돈이 있어서 예술하는데 나쁠 건 없지만 돈만 있다고 예술을 하거나 예술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팩트이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고, 하기 싫다고 쉽게 관둘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들이나 편견에 조금은 남들보다 더 속상하기도 했었고 그래서 그 모든것들이 일반화의 오류라고 감히 생각해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 모든 곳에는 틈새시장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춤을 배웠지만 저처럼 책 읽고 글 쓰기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엇보다 저는 글 쓰는 순간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매일같이 집중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행위가 더없이 위로와 치유가 시간이 되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기도 하고 글쓰기만큼 정면으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없다고 생각합니다. 꼭 글을 잘 써서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래도 생각이란 걸 깊게 해 본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든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반대의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매번 반성만 하고 아무런 변화 없이 사는 것도 사실문제일 수도 있죠. 그렇지만 어떤 문제든 문제의식으로 받아들이고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배려는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드러내지 않는 마음.


글을 쓰다 보면 여려가지 챕터(chapter)가 나오지만 가장 공들여 쓰고 싶은 장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글을 쓸려고 생각하는 내내 마음이 떨리고 설렜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오해 없이 읽어주실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요. 저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여자들이 모여있는 집단에서 배운 가장 좋은 것은 '눈치'가 생겼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일이든 잘하고 싶다면 그 집단에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묵묵하게 그 일을 배워나가는 것만큼 그 안의 구성원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개인주의가 심했던 저도 제 일만 잘하면 되지 했던 저도 그 집단안에서 잘 버틸 눈치가 생기고 보니 말도 자연스럽게 모든 일에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일어난 말을 밖에 안 옮겨야 가장 뒤탈이 없다는 사실을 일찍 배운 덕분에 삶이 많이 좋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누구와도 잘 지내려면 억지로 뭘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만 덜 해도 그도 나를 싫어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다들 내 감정에만 빠져 내 기분만 중요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더 존중하고, 사랑받고 싶으면 조금 더 배려하는 것이 사랑이듯이, 자신의 감정에만 빠지지 않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사이좋게 사는 게 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게 되었죠. 아무리 잘나고 좋아도 혼자서는 못 살기도 하고 또한 농부 전우익 님이 낸 책 제목대로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라는 책 제목을 떠올릴 만큼 삶에는 정성스러움이 묻어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대할 때 친절함이 드러나지 않아도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누구나 다 그 마음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먼저 내 기분에 빠져 내가 이만큼 했다고 재고 따지지 않아도 살아보면 압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배려나 사랑은 저마다의 가슴에 아름답고 따뜻하게 남았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나쁘게 대했다면 그 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 나쁘고 화나고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 마음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살면서 많이 일들이 일어나고 그 많은 일들을 통해서 고민하면서 성장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모든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시는 분들도 가끔 봅니다. 그런데 그럼 안 되죠. 같이 사는 세상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고 일관되게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던데.. 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양보하고 조율하면서 사이좋게 살았으면 합니다. 삶은 거창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저 그 하루하루를 노력하고 양보하고 살아간다면 전보다는 훨씬 더 좋은 마음과 서로에게 다가올 그 시간만 남아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대문사진: 김윤식 사진작가. 체코 국립발레단. 2019. 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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