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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의 가장 베스트 프렌드는 누구일까요?

저는 음악이 아닐까?싶습니다.

by 홍지승

발레음악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습니다. 몸의 언어로 극의 이야기와 등장인물의 감정을 전달하죠. 그래서 춤은 마치 한 편의 시(詩)나 노래와도 같아요. 가사 없이 오로지 몸으로만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장르이기에 보다 드라마틱한 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입니다. 거기에 아름다운 선율과 풍부한 화성,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더해져 우리의 마음과 귀를 사로잡습니다. '움직임'과 '스토리'가 담긴 음악은 실제로 춤을 만났을 때 그 진가가 발현됩니다. 이것이야 말로 클래식 음악과 발레 음악의 차이점이에요.(중략) 같은 음악이지만 음악 쪽으로 해석하느냐, 무용 쪽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지만 다른 음악'이 됩니다.

김지현. 발레 음악 산책 중에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나요?


왜 같은 음악을 여러 번 들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저 역시도 여러 번 해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나 저처럼 클래식에 관해 전혀 지식이 없고 무관심했던 사람의 경우엔 더욱 그랬죠. 보통은 대중문화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고 그 밖에 연극 연기나 뮤지컬 같은 공연예술이 더 익숙하고 편해서 그런지 클래식 음악의 영역은 제게도 처음엔 미지의 영역과도 같았다는 표현이 제일 맞을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음악을 들을 때와 자세는 춤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던 적이 훨씬 더 많기도 했었죠. 그것은 처음부터 바로 "야~~ 우리 친구 하자" 하는 식으로 안면을 틀게 되는 친구 같을 수 없었고 발레처럼 예쁘고 도도해서 사귀기 힘든 여자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발레와 같은 이미지(image)이자 추억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는 만큼 들리고 그 음악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결국 음악 또한 무용처럼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들리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느끼게 되기까지는 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기도 했었습니다.

당연히 '듣는 귀'라는 것이 생기려면 기본적으로 많은 시간 음악을 듣는 일이 낯설지 않고 익숙해야 한다는 명제를 놓고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발레도 음악처럼 많은 시간과 정성과 마음을 담아야 들리고 느끼게 된다는 것은 결국 반복된 행위의 결과 또한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삶이란 게 본디 모든 일에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처럼 그 모든 예술 또한 쉽게 저절로 알게 되는 경우 또한 거의 없다는 것 또한 팩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2년 뒤쯤 출산을 앞두고 제가 한 일은 집중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자고 했던 것은 아이를 위해서도 저를 위해서도 결심까지 해야 가능했었던 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일단 시작이 너무 쉬울 수 있었던 건 KBS 라디오에 클래식 전용 채널이 있었고 그 채널만 틀어놓으면 하루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는 일은 어렵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비슷하게 아이를 갖은 산모들끼리 만나면 어떤 태교를 하느냐고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그냥 클래식음악을 주로 듣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다들 반응이 각양각색이었지만 누군가는 그럼 내가 트로트를 태교 음악으로 듣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제게 되물은 산모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저는 무슨 음악을 듣던지 간에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고 그 음악을 들어서 좋고 행복했으면 그걸로 이미 태교가 아니냐고 말했던 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억지로 할 수도 없지만, 억지로 해서 좋을 일도 없습니다. 아이 덕분에 2007년쯤부터 음악을 집중적으로 들었던 것은 훗날 제게 더없이 좋은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바쁘게 살았던 지난날, 제대로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고 알고 싶어도 알지 못했던 그런 마음의 시작 덕분에 가능했고 지금도 아이와 같이 드라이브라도 둘이서만 하게 되는 날에는 여전히 클래식 FM을 아이와 함께 들으면서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이제 그 아이가 낭랑 18세가 된 것을 보면 가끔 그 기분 또한 새록새록하게 되기도 하죠. 인생이 이토록 짧게 지나갈 줄이야.. 싶기도 하고 배속에 아이를 품고 음악을 들었던 그때의 그 마음이 떠올라 가슴이 아련하기도 합니다. 또한 아이는 음악 덕분에 늘 밝게 웃는 아이로 자랐고 대단히 특별한 재능이 있지는 않아도 저는 아이랑만 있어도 저절로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게 되어서 더없이 좋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억겁의 시간이 지나고 지금 나이에서 듣는 클래식은 전과는 또 아주 다른 느낌으로 들리고 느껴지는 감정들이 다르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누군가 제게 그때 음악에도 기승전결이 있다고 말해주셨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 말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알 수 조차 없었다면 지금은 조금은 그 말의 뜻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도 저보다 훨씬 많고 음악의 영역 또한 많은 시간과 정성을 요하는 예술임을 저 또한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시간을 내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삶은 음악을 잘 몰랐을 때보다는 훨씬 삶이 윤택 해졌다는 건 부(富)가 아니라 어떤 음악을 듣고 나서야 받는 위로나 행복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실 그건 발레와 같기도 해요. 발레도 잘 모르고 보면 누군가에게 그저 지루할 수도 있는 춤일 수 있으나 저처럼 마니아가 보면 댄서들의 춤 동작 하나조차에도 열광할 수 있는 어떤 즐거움으로 다가오기도 하니까요.



춤과 음악의 발란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지난주에 국립발레단의 아시아 최초 전막발레인「카밀리아 레이디」 ( LADY OF THE CAMELLIA )를 보았습니다. 지난주에 다음 주 원고 내용은 음악으로 써야지 하고 아우트 라인만 잡아놓았는데 이렇게 공연을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음악과 무용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되기도 했었죠. 살다 보면 저절로 어렵지 않게 어울리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으로 치면 빵과 우유, 라면과 김밥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면 예술에서의 음악과 발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 어떤 것 중에 단연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음악도 무용처럼 쉽게 저절로 좋아하긴 힘든 장르이긴 합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제 경우엔 그랬습니다. 뭐든 알아야 좀 재미가 있고 즐겁고 느낄 수 있는 것이고 무엇이든 모르면 그 즐거움과 재미를 알기 힘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알아야 즐겁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요즘처럼 하루가 급변하게 달라지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아도 고전음악가들의 음악인 클래식 음악을 아직도 우리가 즐겨 듣는 이유는 제 생각엔 클래식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건 언제나 제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타인들에게도 더없이 좋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요.

제가 공연을 보던 마지막 날 공연에서는 무대 위에 2대의 피아노가 나왔습니다. 무대 위 오브제(object) 로서의 피아노를 연주한 박종화 피아니스트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오케스트라 피트(in the pit)에서 연주되는 피아노가 있었는데 이 피아노를 연주한 연주자는 미할 비할크 이었습니다.

제 자리가 1층이 아니어서 무대아래 피아노를 성심성의껏 치는 미할 비할크의 연주를 라이브로 볼 수 있는 행운도 있었죠. 다른 발레 작품들보다 음악에 집중되었던 것은 안무자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의 선택과 구성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쇼팽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은 적은 처음이어서 더욱더 혼자서 감동하기도 했었고 무대 위에서 무대 아래쪽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서 열광적으로 피아노 치던 미할 비할크의 모습이 공연 끝나고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 특히나 3막에서의 연주가 제겐 쇼팽의 음악을 왜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지 그의 손끝의 연주에서 저의 발끝까지 짜릿짜릿한 음악이 주는 선물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쇼팽이 차마 다가가지도 못했던 첫사랑에 대한 감정으로 쓴 협주곡이라고 하던데.. 발레무대 위에서의 연인들도 어찌나 슬프고 안쓰럽던지 인간의 사랑이 저렇게 애달플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쇼팽이 피아노를 가지고 그런 마음을 표현했다면 발레는 그 음악을 통해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했던 것이었겠죠. 본디 노래와 춤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자 예술이니까요.

발레 작품을 위한 공연이라기보다 발레보다 음악이 더 높이 평가되는듯한 느낌의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원래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라' 음악 대신 쇼팽의 음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안무자인 그는 "파리의 사교계 생활과 오랜 투병으로 인한 욕망과 슬픔이 대립하는 삶을 살았던 쇼팽이 이 작품에 어울린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고 "쇼팽의 모든 곡을 듣고 특정 감정을 잘 표현하는 곡들을 의식적으로 선정했다면서 "예를 들어 2막에서 두 주인공이 파리를 떠나 가장 행복한 생활을 하는 장면에선 의도적으로 솔로 피아노곡을 선정했다"라고 덧붙였다고 했는데 공연을 보는 내내 왜 이렇게 화려한 세트와 춤들에 비해 주인공들은 그렇게 비극적이어야 하는지는 그의 음악적 선택이 가장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이 작품을 보고 그날 공연장이 떠나갈듯한 우레와 같은 박수와 나왔는지 이해가 되었고 그날 공연을 보고 제가 감동스러웠다면 다른 분들도 분명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발레를 좋아하고 누구보다 애정하는 장르이긴 하지만 춤추는 무용가들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생각합니다. 음악은 제게도 더없이 좋은 친구이자 위로이고 평안함을 주는 예술입니다. 음악 덕분에 제가 글을 쓸 때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음악과 춤을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삶도 있지만 저처럼 그 두 개의 장르 덕분에 매 순간 위로받고 사는 삶도 있다고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이 날 보았던「카밀리아 레이디」처럼 쉽게 접할 수 없는 작품들이 있고 그런 작품들을 기회가 닿아 볼 수 있게 되면 정성스럽게 올려진 무대 위에서 그 모든 순간들이 참 순간이자 찰나이고 매 순간마다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전막발레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은 국립발레단처럼 대단히 춤을 잘 추는 무용수들과 예술 행정가 및 스텝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사람들의 수고가 모인 그런 작품들을 극장에서 키보드만 눌러서 티켓팅만으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호사스러움은 제게는 선물과도 같은 감정이 드는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연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5월 날씨와 코 끝에 찡하면서 달큰한 어떤 향기가 그날 제게 "거 봐. 세상은 참 살만하지?"라고 말 걸어주는것 같았거든요. 좋은걸보고 좋다고 느끼는 감정처럼 좋은건 없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인생을 산다는건 참 귀하고 값진 경험들이 곳곳에 숨어져 있으니 우리는 그 보물찾기를 잘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2025년 5월은 오랫동안 제게 쇼팽의 선율과함께 기억에 남을것 같습니다.



Special thanks to.... 국립발레단의 모든 공연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행복한 5월 보낼 수 있을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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