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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의 기적.

신생아에게만 기적이 일어나는것이 아닙니다.

by 홍지승

사람들을 처음 알게 되고 대화를 하다 보면 갑자기 친밀감을 빌미로 친절하게 내게 묻곤 했다.

"전공이 뭐예요?"

미적대다가 마지못해 나는 대답을 하기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 발레 전공했어요."

그러면 그들의 반응은 거의 십중팔구 거의 다 같은 리액션이었다.

"진짜?"


- 나의 이야기 -





저도 알아요. 안 어울린다는 걸....


평균치라는 게 없던 시절엔 저런 반응이 매번 조심스럽다가 가끔씩 짜증스럽기도 했었다. 뭘 얼마큼 해야지 질문을 한 사람들에게 "아~~ 그렇구나" 하는 대답을 듣게 되는 것인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별 생각이 없이 그냥 물었다 하더라도 대답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매번 그 순간들이 맞이할 때마다 알 수 없는 곤욕감과 피로감이 밀려오곤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은 해도 그렇게 가끔씩 내가 했던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만큼 자신감이 부족해도 발레를 사랑했던 그 마음들은 드러내지 않았을 뿐... 발레에 대한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까지 이렇게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이 직업에 대한 특출 난 재능은 없어도 그래도 이렇게라도 이 세상에 살아남아서 발레와 내가 연결고리가 되어 있음에 감사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이란 게 생각보다 길지 않으며 그리고 그 깊이 또한 생각보다 깊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 질문들을 받을 때마다 매번 필요이상으로 진지하거나 그 말 자체를 깊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살아보니 한국 피겨 스케이터 선수 중 레전드인 김연아 선수의 말대로 "그냥 하는 것"이 피겨의 가장 위대한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 말인 즉, 거창해서 대단해서만 하는 일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그 기회가 내게 왔고, 내가 그 일을 사랑하면서 하고 있으며, 그 일의 과정 없이 결과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에 그냥 매번 맞이하는 그 어떤 순간들마다 터널 같은 감정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그 지루하고 하기 싫은 감정이 설령 생겼다 하더라도 괜스레 다시 한번 신발끈을 묶는다 든 지, 연습복을 다시 챙겨서 발레 연습실로 나가야 하든지 간에.... 그 순간의 감정에 속지 않고 하기 싫은 그 마음들을 이기고 춤을 추든, 피겨를 하든... 이유는 없지만 그냥 한번 해 보는 그 사람의 마음 그 자체를 세상 사람들인 우리는 그것을 감히 '사랑'이라고 부르는 건 아닐까?

이번에 브런치 북 원고가 15회 차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돌이켜보면 이 원고를 처음 준비하던 그때엔 10회까지만이라도 힘들이지 않고 쓸 수 나 있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차고 넘치는 내 마음이 무거워서 이것을 어떻게 정리해서 짧지만 간결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글을 써야 하나 고민도 적지 않게 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섭고 두려웠던 건 "에잇,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그만 써야겠어!" 하는 마음이 들까 봐 매번 노심초사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몰랐는데 나는 겁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고 본디 자기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의심이 늘 차고 넘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글 쓰는 내내 절감하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이 15 회차라니.... 아울러 곧 있으면 100일이 되어간다니... 진심 혼자서만 자축해도 감동이었고 감격이었다. 중간에 "못 하겠어~"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냥 요즘엔 스스로에게 "잘했어. 아주 잘했어"하고 다독이게 되기도 했었다.




말이 아니라서 이야기하는 겁니다만....


기본적으로 말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나 글 쓰는 게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더라도 크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나는 진심으로 '말보단 행동'을 훨씬 신뢰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주제가 주제인만큼 그 이야기를 써 보고자 한다.

'연기'를 배우고 싶었던 내가 '춤'을 배우고 춤을 배워서 성장하는 동안 들었던 꾸중의 대부분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가 아니라, 쉼 없이 움직이고 매사 모든 것을 준비하라던 선생님들마다의 코멘트 덕분이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무용강사들이나 교수진들 보면 생각보다 말이 없으신 분들이 많기도 했었는데 그 길을 따라 걸어온 나도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가리킬 때 화를 자주 내거나 말로써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들을 하기 때문이었던 기억이 난다.

"예뻐서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다 보면 예뻐지더라~" 하는 말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말은 생각보다 힘이 적다. 없지는 않겠지만 진심으로 '말보다는 행동'이 살아보면 임팩트가 훨씬 크고 세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잘 몰랐을 땐, 필요이상으로 예민했고 그 반응도 남들보다 훨씬 컸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지금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다음의 나는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뿐더러 말 자체에 연연하지도 않기도 한다. 비난이나 칭찬이나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 말을 이겨내고 그 말에 지지 않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감정기복이 있기도 했고 말의 일희일비했던 시기도 지나고 보니, 말보다는 행동이 훨씬 세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렇게 전처럼 그렇게 마음이 자주 다치지는 않았다는 경험담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하는 거예요~"라는 말의 위대함.


나뿐만 아니라 타인들의 위대한 삶의 대부분은 거창하거나 찬란한 이유들만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자신에게 거짓말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만 안다면 사는 건 훨씬 전과는 다르게 집중해서 살 수 있기도 하다. 발레만의 세상에서 빠져 있기보다는 하나를 잘 배워서 그다음 스텝에도 꼬이지 않고 잘 그 걸음들을 사뿐히 밟고 나가본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좋아서 이 일을 하기도 하지만 매번 그 감흥이 매번 특별하고 감격스러운 것만도 아니다. 가끔씩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일도 때론 부담스러운 시선이나 특이하게 보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어떻게 말하는 게 가장 좋을까? 매번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랜 세월 발레에 대한 내 마음의 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하기 싫은 여러 가지 감정이나 과정도 흔쾌히 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겐 가장 중요했다.


결혼 전, 발레책을 준비하던 과정 중에 책만 읽던 시절에 나는 결혼보다 진심, 출산이 백 배는 더 궁금했다. 요즘은 아이를 낳는 것이 생산제가 아니라 소비제 이기 때문에 그렇게 출산을 망설인다는 오은영 박사님의 표현이 공감을 못 해서가 아니라 나는 그 당시 글을 쓸 때마다 임신해서 배가 불러왔는데 출산을 못 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하는 심정적인 마음이 자주 들곤 했었다. 그래서 출산을 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복잡하고 힘든 기분이 들 때마다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결혼도 하고,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내가 열 달을 품고, 열 달 후에 배 아파하며 낳아보니 그게 어떤 감정인지를 정확히 알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전에 내가 그토록 궁금해하고 혼란스러웠던 그 복잡한 감정들은 거짓말처럼 이미 사라져 있었다. 게다가 아이를 키워 본 사람들만이 안다. 신생아에게 오는 백일의 기적의 위대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르지만 키워 낸 사람들은 아가들의 백일에 왜 축하라는 걸 하는지.. 아이를 키워 본 사람만이 아는 진실이 있다.



백일동안 이 브런치 북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보내는 짧은 편지.


부끄럽지만 글을 쓴다는 게 어떻게 매번 즐겁고 희열에 차겠습니까만은 저는 요즘처럼 설레며 글을 써 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이번 브런치 북은 신기해하며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글을 쓰고 있습니다. 구태의연한 표현 같기도 하지만 정말 한 분, 한 분 감사드립니다. 구독자분들 덕분에 힘을 얻어 글을 썼고 앞으로도 그 힘을 바탕으로 그렇게 한 걸음씩 또 걸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바라게 되기도 합니다.

할 말은 차고 넘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고 저는 그 작업들을 드러내지 않아도 묵묵히 잘 담아내는 일을 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 브런치북의 백일의 기적을 앞두고 보니 발레 연습실 사진들을 대문사진으로 걸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신 김윤식 사진작가님께 가장 큰 감사 인사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날 수 없던 백조처럼 어쩔 수 없이 방구석 한쪽에 쭈그리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보내주신 사진들 덕분에 큰 용기도 얻어서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회차 정도에 "그래, 이만큼 썼으면 됐어~" 하지 않아도 되어서 기쁘고, 앞으로 연재할 글들에 대해 뭘 쓰지? 할 때마다 드는 고민도 엄청나게 제가 누릴 수 있는 작가로서의 호사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잘 써보고 싶기도 합니다.

백일의 기적에도 이웃들에게 떡조차 못 돌려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늘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의 아침에 매주 행복한 기분이 드셨으면 하는 제 작은 바람이 들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화가 나고 지치는 그 어떤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별 거 아니다. 다 지나간다!" 하는 마음으로 이겨 내시길.. 또한 그런 기분으로 산책을 나가시든, 운동을 하시든.. 그 모든 순간에도 삶에 감사함을 잊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어보기를 저도 소망하며 이번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말로는 감사합니다 밖에 못 하지만 늘 마음속 깊이 가슴 켠에 있는 이 기억들로 저는 한 주를 잘 보내고 다음 주 일요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모두들 평안하시길 저도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대문사진: 김윤식 사진작가. 체코 국립발레단. 2019. 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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