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들어도 결국 보답이 옵니다.
그런 적이 있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나였던 시절.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아득하고 목울대가 항상 울렁거렸다.
그 느낌이 좋았다.
거기까지 사랑이 가득 차서 찰랑거리는 것 같았다.
한 남자가 내게 그런 행복을 주고 또 앗아갔다.
지금 내가 울고 있는 건 그를 잃어서가 아니다.
사랑. 그 뜨겁던 게 흔적도 사랑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아버려서 운다.
아무 힘도 없는 사랑이 가여워서 운다.
-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중에서 -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살아낸 그 시절에 우리 모두는 저 감정들을 겪고 이겨내며 스쳐지나 왔을 것이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나 같고, 한때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그런 기분도 들고, 늘 사랑이 넘쳐서 그 사랑이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우리는 그 모든 감정들이 영원할 것이라 믿었겠지만 살아보면 절대 삶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시간은 시간대로 쏜살같이 흘러가고 무엇보다 저렇게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을 보낼 때는 그 어떤 깊은 감정도 제대로 그 깊이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내가 그랬고 나와 같은 시절을 보낸 그들 모두가 그렇게 모두가 저마다의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는 것을 결국 시간이 흐르고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발레를 했다고 해서 인생을 통틀어 다 안다고 할 수 도 없는 일이었고 그 삶을 살기 위해서 겪어내야 하는 시행착오들도 지금은 일일이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있었지만 결국 살아보니, 살아내고 보니 그 모든 과정들을 이겨낸 성장통 뒤에 맞이한 훈련된 태도들은 결국 나의 양과 질적인 성장에 가장 큰 도움이 되어 있었다.
그냥 안 먹고 말지...
요즘 춤을 배운 친구들은 어떻게 식이요법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무용학과 입학했을 당시에는 엄격한 규율은 기본이었고 체중계가 학교에 있어서 어느 날 갑자기 날을 잡아서 체중이라도 재는 날에는 인민재판이 따로 없는 날이었다고 지금도 기억한다.
당시에 볼에 남아있던 젖살도 예뻤던 그 시절에 학교에서는 얼굴이 조금이라도 퉁퉁 불어서 가면 연습 전에 들었던 그 수많은 말들 덕분에 나는 지금 나이에도 절대 햄버거를 감자튀김과 함께 다 먹거나 빵이라 떡을 자주 먹거나 음료수를 먹고 싶은 대로 먹어본 적이 없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달고 단 커피가 없었던 시절이어서 가끔씩 입에 녹여 먹었던 초콜릿은 기억이 나도 사탕이나 젤리 그런 군것질 종류의 식탐을 부렸다가 학교 실기 수업에서 그 모습에서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얼마나 교수님이나 선생님들께 혼이 났던지... 지금도 그냥 안 먹고 말지.. 하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던 시절, 뷔페가 지금처럼 풍성하지 않았어도 뷔페라도 가던 날에는 무용과 학생들로서 품위를 잃지 말고 게걸스럽게 먹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말을 학과 교수님께 신신당부하듯 듣곤 해서 그런지 지금도 마음 편히 먹는 밥 한 끼의 즐거움이 훨씬 소중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금식과 과식과 폭식의 사이에서의 갈등을 하기보다는 늘 언제나 "안 먹고 말지"를 택했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힘들게 이겨낸 습관 덕분에 중년의 나이에 병원 가서 채혈할 일이 있을 땐, 피수치가 좋다는 말을 가끔씩 듣기도 하고 좋은 것을 먹지 않아도 나쁜 것들을 덜 먹은 덕분에 누리는 장점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몸에서 오랫동안 익혀온 그 괜찮은 식습관들 덕분에 건강에 많은 보탬을 더해져서 누리는 풍요로움이 훨씬 더 많아서 기쁘고 익숙해진 습관 덕분에 덜 고생해서 좋기도 하다.
체크리스트(Check list)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과 노력을 하는 종합예술의 총집합체라고 보면 된다. 하다못해 학교 졸업 작품 하나만 올린다 하더라도 그 준비기간은 생각보다 길고 배우고 훈련해야 하는 시간들도 생각보다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무대에 올라가서 춤을 추다 보면 잘하는 친구들이야 무아지경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나처럼 그렇게 특출 난 실력을 갖지 못한 친구들은 내가 잘 못 추는 춤을 커버할만한 것들을 찾아내야 하기도 한다. 그것이 소품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좋은 음악이 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그 많은 준비 과정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나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덕분 이어서일까?
나는 요즘에 매일같이 운동하러 수영장을 가도 도착도 1등, 탈의도 1등, 그 외에 모든 것들을 대부분 빨리 처리하곤 한다. 누군가는 그랬다."아, 왜 그렇게 빨리 오세요?"라고 그럼 나는 바로 즉답을 하곤 한다."갈까? 말까? 고민하면 늦어서 그냥 고민하지 않고 일찍 오는 게 속 편해서요"라고 말한다.
지각, 결석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지만 일찍 가서 미리미리 준비해서 탈이 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게다가 무용과 다닐 때부터 몸에 익혀진 스피드 덕분에 내가 떠난 자리에는 친정엄마 말대로 그 어떤 분실물 없이 머리카락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나에게 길들여지고 있었다. 내가 나에게...
메모도 더없이 삶의 중요한 일들에 하나이지만 그 메모의 가장 큰 포인트는 차질 없이 그 모든 일들을 수행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행해야 하는 그 어떤 날이라도 실수 없이 차근차근 일이 잘 성사되어 마무리가 되고 나면 그저 서야 한숨 돌리고 맞이하는 진정한 자유와 휴식이 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길들여지고 있었다.
사랑이 변할까 봐 걱정만 했던 마음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발레를 배우기 전에 나의 변덕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냥 몸에 밴 그 변덕들은 누구보다 내가 가장 지겨워할 만큼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의 모습 중 하나이기도 했었다. 그런 내가 '춤'에 사랑이 빠진다는 건 사실 낯간지럽고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로 발레는 내게 그렇게 낯설고 어색했던 존재중에 하나이었다. 특히나 그 마음들이 찰나의 순간처럼 '한때'에만 머물다 변할까 봐 했던 그 걱정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그래서 그렇게 늘 노심초사 걱정이 가득했던 그 나의 조각 같은 마음들 덕분에 매일같이 일기를 쓰기 시작하게 되었던 건 아닌가? 싶다. 사람을 귀찮게 하고 그런 마음들을 매번 체크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종이 위에 댄서처럼 할 말들을 하나씩 써 내려갔던 덕분에 지금도 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도 한다.
사랑, 그것이 변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말대로 사랑은 변하니까 사랑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결국 그 뜨겁던 게 흔적도 사랑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아버려서 울어버리는 건 진심 너무나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20대를 지나 지금의 나이에 나는 발레에 항복한 덕분에 그저 순응하듯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곤 한다.
삶은 거창한 것 같지만 아니다. 결국 소중한 하루들이 모인 나의 결정체들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르고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선택해서 희생하며 누리는 삶은 생각보다 내게는 큰 선물로 다가왔다. 사람들이 느끼는 저마다의 감정이 다르겠지만 나는 춤을 배워서 나빴던 것보다 좋았던 것이 백만 스물 두 개는 더 있었기 때문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사실도 늘 잊지 않으며 오늘도 신이 내게 주신 선물 같은 날들도 소중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대문 사진출처: 김윤식 사진작가. 2019 체코 국립발레단. yoon6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