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by_지니
최근 연달아 겪은 퇴사, 이직, 인간관계의 변화, 그리고 사회적 혼란은 마치 연쇄 반응처럼 찾아왔다. 그 과정에서 나의 신념과 소속감이 약해지고, 심리적인 기반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왜 나에게는 결과가 더디게 오는 걸까?’
남들보다 한 걸음 늦게, 혹은 훨씬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듯한 현실 앞에서,
나는 이 질문을 마음속에 품은 채 공자의 말씀으로 스스로를 다독인다.
사회가 바르게 운영되고 있는데, 가난하고 지위가 낮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가 바르게 운영되고 있지 않는데, 부자이고 지위가 높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공자『초역 논어』
이 말씀처럼, 세상이 어그러져 있을 때 결과물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은 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행정 처리를 빠르게 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와 시대적 제약에 부딪힌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자기합리화나 책임 회피가 아니라, 오히려 시대를 있는그대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나 자신에게 더욱 정직해지려는태도 아닐까.
결과의 속도에 조급해하기보다, 지금 이 시대를 읽고, 내 자리를 성찰하려는 과정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발걸음임을 믿어보고 싶다.
이처럼 시대(환경, 흐름)와 나(정체성, 내면)는 늘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사회적 역할의 상실은,
‘나는 더 이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걸까?’라는 이중의 상실감과 타격을 동반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연결감과 소속을 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집단 속에서 살아갈 때 생존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신경학적으로도, 타인과의 관계를 담당하는 ‘사회성 회로’는언어와 계산 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만큼이나 정교하게 발달해 있다. (예를 들어, 아밀라이드체와 편도체는 낯선 환경에 처했을 때 경계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며, 그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집단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본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결국, 소속 욕구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몸과 마음 깊숙이 각인된 본질적인 생존의 힘이다.
그러나 당신의 시간을 빼앗고,
겉으로 드러나는 성품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당신이 죽어버린 교회에 다니고, 죽어버린 성서공회에힘을 보태고, 여당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거대 정당에 투표하고, 평범한 살림꾼처럼 식탁을 차린다고 해보자.나는 그런 장막에 둘러싸여 있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다. 그런 생활을 하면서 힘이 많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 에머슨 『자기 신뢰』
나는 그 답을 에머슨의 『자기 신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최근 나 자신이 유튜브 알고리즘 속에서 과거 지지했던 정당과 현재의 정당 사이를 되짚으며
격렬하게 반응하고, 반발하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문득 이것이 경고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분산된 관심과 과잉된 반응들 속에서,
진짜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본질, 나의 목소리, 나의 욕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동안 나는 공동체와 신념을 위해 많은 것을 헌신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해야 할 시기가 찾아온 것 같다.
타인이나 사회 구조에 따라 내 만족감이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이제는 ‘내 안’에서 의미와 방향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여정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출처 : 자기 신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