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 퇴사, 퇴장, 포기, 무대 밖

브런치북 by_지니

by 생각창고 지니

어린 친구들은 남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경멸한다. 그들은 어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체면과 예의를 단번에 무너뜨릴 줄 안다. 자신이 속한 동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감정을 주고받는지를 이미 터득하고 있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독립적이고 무책임한 존재로 바라보며, 빠르고 개괄적인 방식으로 그 사람의 장단점을 읽어낸다. 마치 눈빛 하나, 몸짓 하나로도 그 사람의 본질을 꿰뚫는 듯하다.


그에 비해, 어른이 된 시각에서는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럽다. 어느 한편을 지지하는 순간, 수백 명에게 동정을 받거나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두려움을 잊는 일은 좀처럼 어렵다. 혹시라도 누군가의 비난을 받게 되면, “그때 중립을 지킬 걸…” 하고 아쉬워하기 마련이다.




나는 어린 친구들의 말과 태도에서 그런 진실함의 실마리를 발견하곤 한다.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본연의 말을 들어야 한다.


나는 그런 눈치보기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과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면, 그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 두려움 없이 평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싶다.


나는 정치인들에게 유난히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편이기에 누군가의 신념과 언어, 태도를 유심히 관찰하고 지지하는 일이 내겐 일종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 눈치보기를 실감하는 순간 중 하나는, 내가 지지했던 사람들이 뒤로 밀려나는 장면을 마주할 때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저 당에선 저 사람이 우선이겠지’ 하며 스스로를 납득시키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 한구석의 아쉬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세상", "내가 믿고 싶은 정의", "내 안의 어떤 목소리"를 대표하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 안의 어떤 희망이 물러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특히 최근 퇴사-포기-변화를 겪으면서 물러난 사람들의 빈자리가, 마치 내 모습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 세계에 마음을 너무 깊이 담그다 보면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가 사라질 것만 같다. 그래서 그 애정을 조절할 줄 아는 힘, 거리를 두는 태도 또한 나에게는 꼭 필요하다. 사람을 깊이 애정하는 마음은 틀린 게 아니다. 다만 이제, 사랑하는 방식에 나를 지키는 방어선을 하나 더 두는 것뿐이다.


정당을 떠나 현재에도 물론, 과거에서 온 사람들이 그리워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 순간, 매 시각 새롭게 변해가는 사람이다. 그럴 때면 감정적 경계선을 다시 그어본다. "사라지는 자리에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은, 다시 새로운 자리로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필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서 당신의 갓난아이를 사랑해주십시오. 당신 집에서 장작을 패는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선량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런 성품을 발휘하는 아량을 지니십시오. 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흑인들에게 엉뚱한 애정을 표시하면서 냉정하고 무자비한 당신의 야망을 윤색(미화)하지 마십시오. 먼 데를 사랑한다면서 가까운 데 있는 악을 은폐하는 일은 그만두십시오." _ 『자기 신뢰』, 랄프 왈도 에머슨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2958321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2화11. 내 안에 여러 신- 자기 인정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