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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양 Sep 03. 2020

25 가지의 페르소나를 가진 사람

고민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소설의 시작

 페르소나는 원래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뜻한다.

그리고 멀티 페르소나는 한 사람이 여러 주체가 되어 행동하는 것으로 해석하겠다.

여기에 멀티 페르소나를 가진 사람이 있다.


 이름은 김해원. 여름의 대구에 태어나, 보통의 가정에서 친한 동네 친구 3명은 끼고 자라왔다.

앳된 얼굴에 화장을 하지 않으면 십 대로 보기도 하는 그녀의 첫인상이 좋은 편이다. 사실 좋은 편이라기 보단 순한 편이다. 동글동글한 눈매와 코 때문인지 말 한번 섞지 않아도 착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곤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해원을 만만하게  친구 녀석들 때문인지 거리감 느껴지는 외형을 꿈꾸곤 했다. 예를 들어  전날부터 각오하지 않고 컨버스 신듯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어른스러운 외형 말이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해원에게 동아리 면접을  동아리 선배가 해원에게 첫인상을 말해줬다. "너무 순해 보여서 버틸까 모르겠다 생각했어."  해원의 마음속에 불을 지폈다.

'순해 보여서 멘탈 약해 보인다는 뜻 아니야?'라는 생각으로 해원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첫 번째 페르소나를 생각한 계기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페르소나 >

 태풍이 분다고 하더니, 아직 해가 쨍쨍하다. 해원의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이번 만남엔 꼭 하이힐을 신고 슬랙스를 입고 가야겠다. 친근하게 보이는 인상이 되긴 싫어. 조금은 날 어려워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하이힐을 신고 있던 앳되어 보이던 앞머리도 옆으로 넘긴 해원의 거울 속 인상은 해원이 생각하는 어른 같았다. 지하철을 타며 유튜브로 <똑 부러지게 말하는 방법>, <더듬거리지 않는 대화법>을 시청하며 괜히 댓글 창도 어슬렁거리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예약하셨나요?" 카페 사장님이 해원에게 묻기에 해원은 "네 김해원이요. 아, 여에해 말고, 아에해요." 라고 대답하자 카페 사장님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일찍 말해주지. 안에 혜 쳤는데말이지. 알겠어요." 잔뜩 긴장한 해원에게 이 정도야 기분에 스크래치도 생기지 않았다. 적당한 기분으로 안내를 받아 앉아있는데, 프로젝트를 같이 준비하기로 한 사람들이 한 두 명씩 들어왔다. 사실 오늘은 오랜만에 회사 팀 사람들끼리 모여 다음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날이다. 보통은 사내 회의실에서 하지만 오늘은 다 외근이 있는 날이라 막내인 해원이 중간지점의 카페 룸을 예약했다.


 "해원 씨 프로젝트가 많이 어려워요?" 방에 들어오자마자 대리님 한 명이 말을 꺼냈다. 그동안 해원은 시키는 기획대로 해왔다. 하지만 대리 세 명과 인턴 한 명의 팀은 곧 인턴에게 사공이 많다는 뜻이다. 세 명의 대리가 해원에게 바라는 기획의 시선이 달랐고, 해원은 그걸 만족시키기 위해서 발버둥 치다 5분씩 제출 약속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다. 즉, 해원도 할 말이 많았다. '어렵나고요? 아니요. 네 명이서 충분한 회의만 했어도 일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획안을 생각하면 현실성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하시는데, 기획이란 서로의 이야기에서 기회를 찾아 쌓아 올리는 것 아닙니까.'라는 말이 목구멍에 차올랐다. 하지만 해원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의 반복이었고, 해원의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은 없고, 해원을 프로젝트에서 빼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 있다는 것을 대화의 마무리에 알게 되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억울함에 해원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눈물을 참지 못한 죄는 후에 사내 왕따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원은 퇴근길에 생각했다. '어차피 이렇게 사내 왕따를 당할 거. 억울함에 울면서 당하는 것보다, 내가 생각했던 말들 뱉어내고 왕따를 당하면 덜 억울했을 텐데.' 그리고 한 걸음을 더 가자 또 다른 생각이 났다. '내가 잘못한 거긴 하지..' 그리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자 '근데 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 어른 맞냐?' 그리고 또 한 걸음 후에 '회사잖아. 회사는 원래 이런 곳이야. 김해원..' 억울함과 되지도 않는 객관성을 오가며 해원은 일을 못하는 것 같다.라는 결말로 자존감은 조금씩 깎아 내려갔다.


 해원이 자취방 침대에 누워 생각했을 때 해원은 마케팅과 기획에 분명 재능이 있다. 수상도 몇 번 했었고, 무엇보다 이 업을 위해 주말에도 공부해도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업을 향한 행복한 노력이 재능이 아니고 뭔가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보면 아직 자존감이 많이 깎이진 않은 것 같지만)

그런 해원에게 프로젝트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자존감이 무너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대리님들에게 구구절절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란 생각이 들자, 차라리 다른 프로젝트에서 역량을 보여주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프로젝트에서 드디어 해원의 첫 번째 페르소나가 탄생했다.


 다른 프로젝트의 주임님의 별명은 깐깐징어이다. 해원이 속으로만 곱씹는 별명이다. 쉽게 곁을 주지 않지만 일 처리가 완벽한 주임님이다. 해원은 이번이 회사에서 주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깐깐징어여도 일의 합이 잘 맞아야 했다. 해원은 주말에 깐깐징어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족한 엑셀 공부와 트렌드를 공부해갔지만 깐징의 마음에 들기엔 벅찬 하루의 연속이었다. 깐깐징어는 해원에게 일을 주려하지 않았고, 해원은 일을 받아 능력을 인정받아 더 큰 책임을 안고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결국 줄 타기의 승자가 누구였을 것 같은가? 힘이 더 센 사람이 아닌 힘을 뺀 사람이 이겼다. 해원은 비록 마지막 기회가 절박하긴 했지만, 힘을 빼고 깐깐징어를 대했다. 속 없이 물어보고, 속 없이 제안을 해보는 연속 끝에 깐깐징어는 해원의 대책 없는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고, 해원의 대책 없는 아이디어에서 대책을 찾아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광고주의 더 많은 상품을 마케팅할 수 있는 큰 제안으로 가져왔다.

해원에게 이 사건은 꽤 정체성 고민에 대한 답을 주었다. 똑 부러지고, 날카롭고 싶었던 이미지는 사실 온몸에 힘을 주고 하는 것이 아닌, 힘을 빼고 여유를 가질 때 더 잘된다는 것이다.


 해원은 이로써 하이힐을 신지 않고서, 말투 유튜브를 보지 않고서, 몸에 힘을 주지 않고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던질 수 있는 페르소나를 가졌다. 해원은 이를 흐물 페르소나라고 생각한다.(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성숙한(?) 의미이다.) 그래서 그때 대리님들이 몰아세웠을 때 참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할 말은 있겠지만, 그때 온몸에 힘을 주고 말한다면 대리님과 아직까지 연락하는 사이가 되진 않을 것이고 그들의 다른 모습을 못 봤겠다.라는 생각에 힘 풀고 대리님들을 대하는 상상을 하며 혼자 흐뭇해하며 퇴근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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