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겐 완벽한 타인이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그 첫 번째. 용서
'용서 못할 것 같으면 용서하지 말지'
똑같이 적은진 모르겠다. 하지만 밑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대사였다.
용서를 할 거면 모든 것을 용서해야겠다 라는 각오로 용서하자.
안 풀릴 것 같으면 섣불리 용서를 하지 말아라 라는 이런 의미.
용서의 사용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뿐인 용서를 한다면 결국 나도 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니깐.
굳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관계를 이어갈 순 없으니깐.
그런 의미를 생각한다면,
어떨 땐 정말 거리를 두는 게 더 힘들 수도 있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소중한 사람일수록
용서를 해야 하는 사람의 짐은 항상 무거우니깐
용서를 거절하는 용기가 가장 용기롭지 않을까 싶다.
그 두 번째. 자신으로부터 타인
'우리는 3가지 자아를 가지고 있다'
아 이것도 똑같이 적은진 모르겠다. 항상 영화를 보면 대사를 못 외우는 편이다.
그래서 친구에게 그 느낌만 전달하는 게 습관이다.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영화를 끌고 가는 몸체는 '우리에겐 아주 개인적인 자아가 있다.'라는 것이다.
그 개인적인 자아는 어떠한 상식으로도 다른 사람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표면으로는 표시를 하지 않는 음지의 영역에 있는 자아이다.)
하지만 모두에겐 그런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자아가 분명히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이 자아가 겉으로 드러나면
어떤 사람은 나와는 다르다고.
어떤 사람은 신뢰가 깨진다고.
어떤 사람은 배신감 때문에.
싫어한다.
분명 그들도 아주 개인적인 자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는 그 자아들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긴 하나, 나에게도 나만 아는 자아가 있다.)
영화에서는 '찔리는 거 없으니 나를 다 보여줄 수 있다'라는 전개로 시작된다.
즉, 서로의 솔직한 면을 보고 싶거나 요구를 하면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에서는 '솔직함'이 불러일으키는 파장을 보여준다.
나 역시 친구에게 '우리 좀 솔직해지자'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편이다.
그런데, 누구나 보여주기 싫은면이 있고 나는 그 선을 지켜줘야 했구나. 생각했다.
그게 나와 관계된 일이라도.
이해를 못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끝까지 내 자아를 보여주지 않는 것도
어쩌면 관계를 이끌어가는 노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덕적인 단어들이 모든 것을 해결을 못해주기에, 관계는 여전히 복잡하고 미묘하다.
영화는 도덕적인 단어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진 않는다.
하지만 '완벽한 타인'의 메시지가 나에게 더 와닫는건
아마 나도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게 있어서 '완벽한 타인'이라 그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