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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양 Feb 12. 2019

내가 사랑하는 그들도 나를 상처 입힐 수 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가.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처를 입을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작가 양은 주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속에서 즐겨찾기 목록에 있는 그들을 떠올린다.


작가 양은 때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의 수'를 자산으로 생각했었다.

바로 전화할 수 있는 상대가 3명 이상만 돼도 성공한 인생이라는데,

작가 양의 즐겨찾기에는 그럴 수 있는 전화번호가 꽤 많았으니깐.

그래서 스스로 인복이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해왔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을 땐, 

즐겨찾기에 있는 그들이 작가 양에게 했던 말들을 되새김질하며,

작가 양을 정의한다. 꽤 효과가 있다.

쓰러졌던 자존감을 그들이 내려준 정의로 애써 새웠었다.


그런데 혹시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나에게 등 돌린 적이 있는가?

(그들이 내려준 정의가 사라지면서 작가 양의 모습이 흐릿해지는 기분이다.)


최소화시킨 인간관계마저 영원한 관계는 아니라니.

끔찍하다고 생각 든다.

작가 양은 요 근래 이러한 고민 때문에,

이전 글에도 적었지만 스스로 일어나는 법에 대해서 배워나가고 있다.


상처 받았을 때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화를 어떻게 가라앉히는지 찾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역시나 신뢰는 의지대로 쌓이지 않고,

기대는 의지대로 높이 조절을 못하고,

애정은 의지대로 깊이 조절을 못하고,

눈길은 의지대로 방향 조절을 못한다.


완벽하게 작가 양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제야 눈치를 챈다.

'아 너무 이 사람에게 흡수되어 우리 관계에 조그마한 생채기에도 나는 상처를 받겠구나'

뒤늦게 발을 빼려고 하면 그땐 늦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감정조절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 없다.

하루 종일 일생각 하기 싫어서 창업도 못하고 있는데,

하루 종일 감정조절이라니.


하지만 많은 책에서는 언급한다. '그러한 상처조차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주사를 많이 맞는다고 해서,

10번째 맞는 주사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외롭겠지만, 

언제든 내 사람들이 나를 떠나갈 수 있다는 전제로 대해야 할 것 같다.

슬퍼도 슬픈 모든 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지치지 않는 선에서 보여주고,

아파도 아픈 모든 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선까지 보여주는 것.


아직 작가 양의 덜 성장한걸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작가 양의 상처 경험을 보아 결과로 지은 것이다.

(앞으로 더 겪어보면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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