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공황을 시작으로 느꼈던 감정들
아내는 한국에, 나는 미국에서 몇 개월을 따로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혼생활 만 7년 동안 일주일 이상 떨어져 보지 않아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싱글일 때도 혼자 잘 살았는데 몇 년도 아니고 홀로 몇 개월을 못 살겠냐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었다. 우리는 3월 말에 한국으로 귀국해서 한 달을 보내고 난 홀로 4월 말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미국 집에서 홀로 보내는 첫날밤 인생 처음으로 공황이 온 것이다. 미국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쯤. 도착하자마자 한 달간 쌓인 먼지 청소도 하고 장도 보고 성공적으로 일상에 복귀하나 싶었다. 하지만 밤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그 캄캄한 어둠이 나를 삼키는 느낌을 받았다.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이 숨이 가빠지고 강한 슬픔과 불안이 급격하게 몰려왔다. 이렇게 혼자 객사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니까 더 증상이 심해졌다. 이건 심리적인 현상이라는 판단이 들어 다시 커튼과 창문을 열고 한참 동안 바깥공기를 쐬며 안정을 취해야 했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기 전까지 계속 이 불안과 싸웠던 것 같다.
이 증세는 약 일주일간 크고 작게 지속이 되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며 이 공황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트리거였다. 그리운 마음을 시작으로 외로움, 슬픔, 불안 순으로 감정들이 증폭되며 몰려오고 최종 단계까지 가면 몸까지 힘들어지는 원리였다. 그래서 그리운 감정이 생길 때마다 그 감정을 몇 개월 뒤 다시 볼 기대감으로 재해석을 하려고 노력하니 공황은 거의 사라졌다. 5월 중순부터는 혼자서도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친밀한 부부 사이만큼 초반의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아내에겐 우스갯소리로 분리불안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서로 떨어져 지낸 지 한 달이 넘은 이 시점, 혼자의 생활에 나름 적응을 했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코로나 때문에 누굴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한 달을 오롯이 혼자 보냈다. 아마 내 인생에서 이렇게 외부와 단절되어 홀로 있어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아내가 없으니 가슴 한 켠이 비어있는 느낌은 여전했지만 이 기간이 나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중의 하나가 혼자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사람들의 감정을 비로소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해외 생활을 오래 했지만 가족이 함께 다녔기 때문에 혼자 밥을 먹는 일은 드물었다. 대학에 입학하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후에는 학식이나 기숙사 방에서 혼자 밥을 먹기도 했지만 딱히 서럽거나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이 해주는 밥을 먹는 입장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나를 위해 밥을 하고 그 밥을 혼자 먹는데 뭐랄까, 적적했다. 분명 밥을 먹으며 고상하게 삶의 문제를 고찰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시선 고정한 채 밥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유투브를 본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난 유튜브를 즐겨보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말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글로 읽으면 정보가 훨씬 정확하고 빨리 전달이 되는데 왜 굳이 유튜브를 보는 건가 의아했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깨닫는가 보다.
어릴 때는 밥 먹으며 책을 읽으려 해서 많이 혼났는데 성인이 되고서는 밥을 먹으며 책을 읽는 일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밥 먹는 시간만큼은 좀 풀어지고, 즐기고 싶다는 마음인 것 같다. 슬픈(?) 일이지만 밥을 먹으며 책을 읽을 에너지가 이제는 없는 것 같다. 전두엽을 희생하더라도 유튜브같이 편하게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매체가 가장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적막한 집 안에 사람 소리가 나고 음악 소리가 나니 뭔가 더 사람 사는 느낌도 들고 좋았다.
문득, 혼자 식탁에서 유튜브를 켜놓고 킬킬대며 밥을 먹고 있는 내 모습과 한국의 수많은 일인 가구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밥을 먹고 유튜브를 보는 그 시간만큼은 몰입하고 즐기지만, 밥을 다 먹고 나면 다시 혼자라는 현실로 돌아오는 30%의 일인 가구들.
외로움. 이 감정은 여러 차원이 있는 것 같다. 사람 자체가 고픈 외로움도 있고, 마음 나눌 사람이 없는 외로움도 있으며, 인생 자체의 외로움(혹은 고독)도 있는 것 같다. 어느 종류의 외로움이던, 그 외로움을 나눌 사람이 있을 때 그 외로움이 줄어드는 것 같다.
딱히 어떤 주장을 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다.
그냥 외로운 인생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 사진은 공항에서 작별하기 직전의 우리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