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도 인간이다
루하 D+38
퇴근해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타이밍과 루하가 배고파 막 울기 시작한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이미 체력이 방전되어 있다. 급히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고 분유를 타 루하의 입에 꽂았다. 유난히 오늘따라 루하가 많이 찡찡거린다. 속이 편하지가 않은 것 같은데 아내 말로는 오늘 하루 종일 잠을 거의 안 자고 칭얼거렸다고 한다. 허 이녀석 체력도 좋다.
수유를 마치고 트림을 시키고 떼쓰기를 잠시 멈춘 틈에 아내와 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밥을 몇 수저 뜬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서 루하가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린다. 칭얼거림에서 시작해 서서히 단계를 높여간다. 루하를 만난 지 한 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가 직접 가봐야 할 단계인지를 대충 안다. 그래서 우리는 꿋꿋이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우리 근성 있는 루하는 떼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단계를 계속 높여간다. 속이 불편할 때 많이 내는 서러운 울음소리가 나서 내가 다시 출동, 미처 빠지지 못한 뱃속 공기들을 빼주기 위한 트림을 시도했다. 그렇게 눕혔다 안았다를 몇 번 반복하자 잠시 잠이 드는 듯했으나.. 다시 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 시점이었다.
새벽부터 아기와 씨름한 아내는 눈을 뜨고는 있지만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다음 교대 시간까지 얼른 아내를 침실로 들여보내고 아빠와 아들의 저녁 루틴이 시작되었다. 통잠을 기원하는 충분히 수유, 온 몸이 이완되는 기분 좋은 따뜻한 목욕, 뽀송한 엉덩이의 새 기저귀와 보습로션, 그리고 이완 마사지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쳐 최종 단계인 자장가를 불러주고 잘 자라는 굿나잇 머리키스까지 마쳤다.
이렇게 루하가 잠든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하루의 마침표일까.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루하는 수면 의식 후 더 정신이 말짱해져서 움직인다. 그리고 무엇이 불만인지 다시 칭얼거림이 시작된다. 하지만 아내가 자고 있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루하가 우는 것은 막아야 한다. 다시 트림을 시도하고, 잠들 때까지 안고 거실을 걸어 다닌다.
시간이 좀 지나 배고픈 칭얼거림이 있어 다시 수유를 했는데 오늘은 역대급 분수토의 기염을 토해냈다. 이전에는 본 적이 었었던 코와 입에서 동시에 엄청난 양이 쏟아져 나오는 토였는데, 나도 놀라고 루하 자신도 놀랐다. 자지러지게 울며 캑캑거리는 루하의 기도를 얼른 확보하고 얼굴을 뒤덮은 분유들을 급히 닦아냈다. 덕분에 밀려오는 모든 잠이 달아났다. 나도 루하도. 다행히 루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을 되찾았다.
이쯤 되니, 일찍 퇴근하기 위해 새벽처럼 출근했던 나의 체력도 점점 한계에 다다른다. 하지만 역시 우리 효자. 아빠의 상태를 눈치챘는지 분유를 조금 먹고 바로 취침모드로 들어갔다. 어떤 때는 이 아기가 진짜 내 눈치를 보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만약 오늘 루하가 잠들지 않고 원점으로 돌아갔다면 모르긴 해도 아내와 나 둘 중의 하나는 몸살이 났을 것이다. 정말 첫 두 달은 체력 싸움이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나 혼자, 혹은 아내 혼자 아이를 봐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참 다행이다.
한 명이 스러져 갈 즈음 다른 한 명이 그 자리를 채우는 이 전투 육아.
육아를 하며 우리는 이렇게 전우애를 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