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포슬한 노란속살의 맛
가을, 바야흐로 고구마의 계절이다.
같은 구황작물이래도 감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고구마는 그 달콤한 맛과 포슬포슬한 식감(나는 호박고구마보다 밤고구마를 훨씬 좋아한다)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풍부한 식이섬유와 체내 염분 배출 등의 이유로 고구마가 다이어트에 적합한 음식임을 알게 된 대학생 때에는 "이렇게 맛있는 고구마가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기뻐하며 줄기차게 고구마만 먹어대는 실속없는 다이어트를 하기도 했다. 동생과 나는 그 당시 고구마에 완전히 빠져 있었는데, 고구마만 먹기 지겨울 때에는 고구마를 이용한 각종 변형 음식들을 만들어 보곤 했다.
마요네즈는 정말 소량만 넣고 플레인 요거트로 느낌을 살린 고구마 샐러드부터 시작해서 팥을 아주 달지 않게 졸여 고구마 으깬 것과 섞어 만든 고구마팥스프레드, 고구마에 까망베르치즈, 모짜렐라치즈, 체다치즈 등 각종 치즈를 올려 구운 고구마치즈구이, 저지방우유로 만든 고구마라떼, 양파와 단호박을 같이 갈아넣어 만든 고구마스프, 감자 대신 고구마를 넣은 카레, 통밀과 고구마를 섞어 만든 고구마스틱...
김숙은 제주도에서 당근으로 만든 온갖 요리를 만들어 파는 당근bar를 차리는 게 소원이라던데 그 때의 열정으로라면 나는 고구마bar를 차려도 됐을 듯 싶지만, 아쉽게도 그 때 잠깐 뿐이었고 도전의식보다 귀찮음이 더 커서 곧 다시 고구마만 오븐에 구워 먹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만큼 나의 고구마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다.
지금은 저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마트에서 고구마가 보이면 박스째 사다놓고 에어프라이어에 한 바구니 구운 후 식탁 위에 두고는 오며가며 먹을만큼 고구마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만 고구마를 좋아하는게 아니더라.
우리집 1호 강아지 조이도 고구마를 환장하게 좋아하고, 2호 강아지 몰리도 마찬가지다(알고보니 강아지들은 거의 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
조이는 신부전증 환자라 단백질을 극도로 자제해야 해서 식단이 한정되어 있고 맛없는 사료를 먹어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료를 먹지 않으려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때면 고구마와 양배추 볶은 것을 같이 섞어 주는데, 100이면 99는 잘 먹는다. 입맛이 없을 때를 대비해 항상 구비해 놓아야 하는 필수템이다.
"고구마!"하면 또 알아듣고는 자기한테 고구마 주는 줄 알고 쪼르르르 와서 앞발로 톡톡 치면서 고구마 내 놓으라고 성화다. 이런 귀엽고 똑똑한 생명체를 보았나!
사랑한다고 귀엽다고 너무 많이 주다보면 자칫 뚱뚱해질 수가 있으니 잘 조절해가며 주어야 한다.
아들이 곧 첫 돌을 앞두고 있다.
언제 이렇게 많이 컸나 싶을만큼 이제 제법 좋고 싫다는 의사표현도 하고 고집도 생기고 소리도 빽빽 지른다.
먹는 것도 다양해져서 이제 하나 둘 씩 새로운 식재료에 도전해보며 잘 먹는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테스트해 보는 것도 요즘 내 즐거움 중에 하난데, 얼마 전엔 고구마를 통째로 손에 쥐워 줘 봤다(이유식에는 몇 번 넣어줬는데 통째로 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고구마야~ 당연히 좋아하지, 달콤한데 싫어할 수 있어? 하는 마음으로 입 속에 넣어줬는데, 아니나다를까 눈을 번쩍 뜨면서 오물오물 맛있게도 먹는 것 아닌가?
손으로 고구마를 으깨기도 했다가 으깬 것을 입으로 가져가 먹기도 했다가 고구마를 덩이째 입으로 넣더니 켁켁거리기도 하고... 내 아들 아니랄까봐 너 고구마 엄청 좋아하는구나? ㅋㅋ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좋아하는 아들을 보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더 사랑스럽다. 좀 더 특별한 느낌을 갖기에 고구마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기는 하지만...ㅎㅎ
오늘도 나는 고구마를 구웠다.
곧 아들의 첫 돌이라 직계가족만 모여 같이 식사하며 축하하기로 했는데, 나는 2년 전 내 결혼식 피로연 때 입었던 하얀 실크드레스를 입을 예정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드레스를 입어봤는데 등 부분이 좀 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날로 나는 2주간의 다이어트를 선언했고 점심마다 고구마와 두유만 먹고 있다. 아...내 소중한 점심이여ㅠ
그래도 고구마가 다이어트 음식인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렇게 맛있는데!!
오랜만에 고구마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으니 예전 생각이 나서 적어 보았다.
그나저나 옷이 잘 들어가야 하는데...부디...제발.
ps. 2주 뒤 돌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