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하는 즐거움과 외로움
나는 혼자 일한다.
악성민원인 등 이상한 사람들이 들이닥칠 경우의 대비나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 대신 전화를 받아주는 등의 이유로 공익근무요원이 배치되어 있기는 한데, 그마저도 얼마전에 전역한 이후에는 사무실에 홀로 있다. 언젠가 또 오겠지만 지금은 혼자다.
사실 공익근무요원이 있다고 해도 일은 혼자 하고 업무 중 거의 말을 섞을 일이 없기 때문에 공익근무요원의 존재가 유의미하진 않다.
또 저번 공익근무요원은 옆에서 보는 내가 다 안타까울 정도로 매일같이 게임을 하곤 했는데 마우스 소리며 키보드 소리가 너무 거슬려 대놓고 말한 적도 있었고, 한 번 씩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면 담배냄새가 따라 들어와 곤욕일 때가 많았기 때문인지 그의 전역이 못내 반가웠다.
혼자 일한다는 것, 곧 업무가 독립적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장점이 훨씬 많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특히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
공익요원이 있을 때 처음 몇 번은 같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했는데, 서로의 관심사나 업무의 내용이 너무 다르고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성별도 다르다보니 할 말도 별로 없는 데다가 밥 먹는 속도도 달라서 내가 밥을 먹고 있는 동안 그는 밥을 먼저 다 먹고 기다리게 되는 상황이 많았다. 서로 뻘쭘해서 몇 번을 내리 따로 먹다보니 그냥 따로 먹는 것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그 후로는 계속 밥을 혼자 먹는다.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무얼 먹을지 상상하며 일 하다 보면 오전 시간은 생각보다 금세 지나간다. 근처 자주가는 단골집이나 맛집을 검색해서 뚫은 새로운 곳으로 삼삼오오 회사 동료들끼리 같이 가서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업무 중 공유하고 싶은 이야깃거리나 고민거리들을 이야기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그 시간이 한번씩 그리울 때가 있다.
혼자 식당에 가서 먹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직 쉽지 않다. 나는 밥을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 편이다. 그런데 붐비는 점심시간, 혼자 식당에 들어가 온전히 나의 시간대로 천천히 밥을 먹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주변은 모두 짝을 지어 먹거나 일행끼리 같이 먹는데, 나만 덩그러니 혼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거나 뭔가를 읽는 시늉을 하며 여유있게 밥을 먹을 정도의 뻔뻔함은 내게 없다. 나도 이 근처 맛집에 당당히 들어가 혼자 밥을 먹을 기회를 계속 엿보고 있긴 한데 아직 용기 부족이랄까.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부턴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왜 그 한 번이 잘 안되는지.
위의 혼밥 레벨표에 의하면 레벨 3 정도, 구내식당이나 서브웨이 같은 프랜차이즈에서 혼자 밥 먹는 정도가 딱 지금 나의 혼밥 레벨인 것 같다.
요즘은 혼밥하는 사람도 많고 딴 사람 의식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사람이 별로 없는 애매한 시간대면 또 모를까, 빨리빨리 먹고 자리를 비켜줘야 할 것만 같은 주중 점심시간대의 회사 근처 맛집은 아직 나에게 어려운 도전이다.
그런 내게 혼밥하기 가장 만만한 곳이 스타벅스다.
최근 회사 근처에 스벅이 생긴 후로 참새방앗간 드나들듯 점심 때마다 드나들고 있다. 샌드위치도 웬만큼 다 맛있고 충분히 여유를 즐기며 조용한 분위기 속에 책을 보거나 폰을 하는 등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커피와 함께 먹으면 별까지 두배로 모을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지 아니한가. 난 원래 스벅을 좋아해서 스벅 마케팅의 노예이기도 하니, 세 배로 별을 적립해 준다든지 일정한 수의 별을 모으면 스벅 굿즈로 교환해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날이면 더 가열차게 별다방에 출근도장을 찍는다.
최근에 할로윈 한정으로 출시되었던 음료 중 흑임자라떼(뭔가 이름이 더 길었는데 기억이 안난다)는 흑임자 좋아하는 내 입에 딱이었다.
남편은 나더러 별에 집착한다며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을 보내지만 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그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이나 편안함 같은 게 있다며 난 항변한다. 게다가 별도 얻는 것이고!
하다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혼자 일하면서 혼밥을 하다보니 스벅에 더 충성하게 되었다는 얘기다.ㅎㅎ
가끔씩은 나도 같이 일하는 동료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셨던 순간이 그립다.
또 일절 회식 없이 칼퇴근하는 환경이다보니 송무할 때에는 그렇게 싫었던 회식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사람마음이 이렇게 갈대같다. 남편이 회사에서 회식있다고 나에게 양해를 구할 때면 나도 회식!!!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물론 혼자 일해 좋은 점도 많다.
상사가 없으니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없다. 독립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니 내 방식, 내 속도대로 유연하게 업무를 볼 수 있다. 연차나 병가, 조퇴도 필요할 때 아무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으니 돌 아기 키우는 입장에서 정말 좋은 직장이다. 그래서 업무가 조금 단조로워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더 활기차고 바쁜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쉽게 이직을 꿈꾸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도 난 점심시간에 스벅으로 향한다.
크리스마스 프리퀀시 프로모션이 시작되었다.
벌써 크리스마스라니... 한 해도 2달밖에 남지 않았구나.
느긋하게 혼밥하며 오늘은 다른 작가님들의 브런치 글들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