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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복숭이 Jan 04. 2021

잠이 오지 않는 밤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게 되었다.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고 채널을 돌리다가 어쩌다 보게 되었는데, 그 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다가, 또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다가를 반복하며 끝까지 시청을 하였다. 

마지막 정인이의 입양 전 웃는 모습이 나올 때는 그야말로 폭풍 오열을 하였다. 

한참동안 관련 기사나 글들을 찾고 읽고 또 울다가 머리가 띵하고 깨질 듯 아파서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침대에 누웠는데, 여러가지 생각과 잔상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을까. 


지금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정인이 관련 기사만 나오면 클릭하고 또 클릭하고...

진정서 쓰기 운동에 힘을 보태고 싶어 나도 내 마음을 담아 보았다.  

검찰이 살인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당연히 살인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전제로 썼다.




존경하는 판사님께

저는 피해자인 정인(안율하)이와 비슷한 개월 수의 아기를 키우고 있는 엄마이자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위 사건에 관하여 피고인들에게 범행에 따른 합당한 처벌이 내려져, 이미 피해자는 고인이 되어 비록 피해 회복은 이루어지지 못하지만, 홀로 고통 속에 영원히 잠들었을 피해자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지고 다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에 경각심을 일깨워주며 아직도 본인들의 죄를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들에게 행위에 따른 책임을 지우게 하여 그들이 피해자에게 행했던 끔찍한 행위들을 돌아보게 하고 정의가 구현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는 피고인들에게 학대를 당하였던 당시 생후 9개월에서 16개월 정도로, 작고 연약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의 아기였습니다. 수사기록이나 증거기록을 보지 못하여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 수 없으나, 신문 기사나 매체를 통해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장*영은 피해자에게 차마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여러 모진 학대를 가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피고인 안*은 또한 직접적인 학대를 했는지 여부는 다 알 수 없으나 피고인 장*영의 학대를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았음에도, 피해자의 얼굴과 표정이 어떻게 변하고 몸이 얼마나 만신창이가 되어가는지 가장 잘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방조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죽기 전 날, 마지막으로 피해자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피해자의 상태를 보고서는 피해자를 데리러 온 피고인 안*은에게 피해자를 꼭 병원으로 데리고 가 달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피고인 안*은은 그 말을 묵살해 버리고 피해자를 집으로 데리고 갔고, 피해자는 결국 다음 날 피고인 장*영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피해자는 사망 당시 배가 피로 가득 차 있었고 췌장이 절단되어 있었으며 몸 여러 곳이 골절되어 있었고 멍투성이였던 것으로, 성한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16개월 어린 몸이 얼마나 지옥같은 삶을 살았길래 그와 같은 상태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몸 가장 안쪽 깊숙이 위치해 있는 장기인 췌장이 절단되려면 얼마나 큰 힘이 가해져야 하는지 방송에서 실험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권도 선수의 발차기도 그에 못 미쳤습니다. 권투선수가 온 힘을 다하여 주먹을 날려야 그와 비슷한 힘의 세기에 도달하였습니다. 피고인 장*영과 비슷한 몸무게의 여성이 소파에 서서 누워 있는 아이의 배를 향해 내리꽂듯이 뛰어내려야 췌장이 절단될 만한 정도의 힘이 가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 본인의 폭행과 학대로 온 몸이 성한 곳 없는 16개월 아기를 향해 큰 힘의 또 다른 폭행을 가했을 때, 그 아기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장*영은 본인의 폭행으로 온 몸이 축 처져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피해자를 혼자 방치한 채, 본인의 친딸을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119도 아닌 콜밴을 부르는 여유를 보였습니다. 그러한 피고인 장*영의 태도는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면 할 수 없을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법원 2017.7.11. 2017도6914(원심:서울고등법원 2017. 4. 21. 선고 2016노3140, 2016전노210(병합) 판결) 판례를 살펴보아도 이 사건 피고인 장*영에게 살인의 고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판례에서 법원은, 거실에 엎드려 누워 있던 피해자의 허리를 밟은 다음, 피해자의 왼손을 잡고 작은방으로 끌고 간 뒤 피해자의 배를 오른발로 세게 2회 걷어찼고, 이에 피해자는 옆으로 누운 채 구토를 하면서 얼굴이 하얗게 변했으나, 피고인은 이를 알고도 계속하여 천장을 향해 누워 있던 피해자의 배를 세 차례나 힘껏 밟은 점, 당시 피해자는 키 90cm, 몸무게 13.5kg의 생후 27개월 아기로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였던 점, 피고인의 지적능력이 다소 부족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주요한 신체기관이 모여 있는 아기의 복부를, 흉기나 다름없는 어른의 발로 여러 차례 세게 가격할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피해자는 피고인의 폭행으로 췌장이 절단되고, 장간막이 파열되었으며, 다량의 복강 출혈이 발생하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폭행 후 불과 1시간여 만에 복부손상으로 사망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지적장애와 산후 우울증 등을 감안하더라도 피고인이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살인의 고의를 갖고 여러 차례 피해자의 배를 발로 걷어차고 밟았다는 이 부분 공소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아 피고인에게 살인죄를 인정하였습니다. 

살인의 범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 족한 것이고 그 인식이나 예견은 확정적인 것은 물론 불확정적인 것이라도 이른바 미필적 고의로 인정되는 것인바, 피고인이 범행 당시 살인의 범의는 없었고 단지 상해 또는 폭행의 범의만 있었을 뿐이라고 다투는 경우에 피고인에게 범행 당시 살인의 범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피고인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의 동기, 준비된 흉기의 유무 · 종류 · 용법, 공격의 부위와 반복성, 사망의 결과발생 가능성 정도 등 범행 전후의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대법원 2009. 2. 26. 선고 2008도9867 판결, 대법원 2006. 4. 14. 선고 2006도734 판결 등 참조). 

이러한 판례의 태도에 의한다면 피고인 장*영에게는 살인죄를, 피고인 안*은에게는 적어도 살인방조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피해자 정인이는 생후 16개월의 아기에 불과했습니다. 말도 할 수 없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으며 본인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는 작고 여린 아기였습니다. 그 아기가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양부모인 피고인 장*영과 안*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피해자를 학대하고 짓누르고 상습적으로 폭행하였으며, 마지막으로는 그 작은 피해자의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큰 충격을 가하여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어린 아기에게 부모로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와 같은 행위를 할 수 있을까요. 


이 땅의 엄마이자 국민으로서 호소합니다. 

피고인 장*영과 안*은에게 그들의 행위에 대한 합당한 법조항이 적용되고, 그에 따른 처벌을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피해자는 피고인들이 원해서 입양한 아기였습니다. 겉으로는 입양을 지원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피해자와 방송에도 함께 나와서 행복한 입양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피해자에게 가혹한 학대를 가하고 입양 전 행복하게 살고 있던 피해자를 지옥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그와 같은 잔인한 이중성을 지닐 수 있었는지 치가 떨리고 소름이 돋습니다. 

사랑만 받기에도 모자란 시기입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피고인들은 수개월에 걸쳐 피해자에게 상습적인 학대와 폭행을 가하여 신체적‧정서적 박탈을 일삼고, 생후 16개월에 불과한 피해자의 복부를 여러 차례 폭행하여 이미 장이 찢어져 가스가 차서 배가 볼록한 피해자의 복부를 다시 강한 힘으로 폭행하여 췌장 절단 및 장간막 파열 등으로 고통 속에 삶을 마감하게 만드는 잔혹한 살인행위를 하였습니다. 아직 16개월에 불과한 유아, 그것도 본인이 입양하여 그 삶을 책임지겠다고 데려온 자녀의 생명을 침해한 범죄의 중대성을 생각한다면, 그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정의로운 판결을 기대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작고 예뻤던 아기의 마지막 길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어 이 글을 내일 등기로 보내려한다. 

그 곳에선 아프지 않고 행복하길.

정인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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