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요즘 학교폭력
며칠 전 청소년 상담센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부모 한 명이 급하게 상담이 필요한 상황인데 찾아가면 상담이 가능한지를 묻는 전화였다.
마침 출장도 없었고 예약잡힌 상담도 없어서 오시라고 했고, 30분쯤 뒤 40대로 보이는 여성과 여성의 아들로 보이는 남학생이 사무실로 같이 왔다.
처음엔 같이 온 남학생이 학교폭력 대상 학생인가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형이었다.
여성은 이혼 후 홀로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 자녀 중 둘째 아들이 학교폭력에 휘말린 것이었고 그 형인 첫째 아들과 같이 상담을 하러 사무실을 찾은 거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건 자체는 커 가는 아이들에게 흔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편의상 상담대상자의 자녀를 A, 상대방 학생을 B라 하자.
A와 B는 동네 아는 사이로, A는 중학교 1학년이고 B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A와 B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가 약간의 다툼으로 B가 음료수 페트병으로 A를 쳤고, A는 처음에는 가만히 있었으나 B가 A에게 엄마에 대한 험담을 하자 A도 화가 나서 B의 얼굴을 한 대 쳤다.
B의 얼굴은 처음에는 빨갛게 부어올랐으나 상처가 생긴 것은 아니었고 다음 날이면 가라앉는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B의 엄마는 깜짝 놀라 사건 현장으로 왔고, A에게 욕설과 조롱을 하며 언어 폭력을 행사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닌 것 같다.
아이들끼리의 다툼은 흔한 일이고 아이들 다툼에 한 아이의 엄마가 끼어들어 다른 아이에게 욕설을 퍼부은 것은 잘못되었지만 홧김에 그럴 수 있다고 선해하여 해석한다면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니까.
내가 너무 내 어릴적 경험에 비추어 순진하게 생각하는건가?
요즘은 별난 학부모들이 많아서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고 한 대 때리기라도 했다가는 큰 일 난다지만, 어느 누구 상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한 아이가 맞은 것도 아닌데, 나에게 급하게 상담이 필요하다며 뛰어 올 일인가 의아했다.
그런데 사건 이후의 일이 가관이었다.
A로부터 사건 이야기를 들은 A 엄마는 B 엄마를 만나 이야기를 했고 사과와 용서가 적절히 이루어져 사건이 일단락 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으로 B의 엄마가 학교에 학교폭력위원회를 개최해 달라고 요청을 한 것이다.
학폭위가 열렸고, 결과적으로 A는 가해학생 및 피해학생이 되었지만 그 피해에 대한 가해자는 B가 아닌 B의 엄마(언어폭력에 대한 것)로 판정이 되었고 B는 피해학생으로만 기록이 되었다고 했다.
A 엄마(상담대상자) 말로는 B 엄마가 학교운영위원회 멤버였어서 B에게 더 유리한 결정이 나온 것이라 하였다.
그 후 B는 위 학폭위 결정을 토대로 해서 계속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고, 그 치료비를 학교안전공제회에 계속 청구를 하여 지금까지 공제회에서 B측에 지급한 치료비만도 480만원이 넘었다. 그리고 공제회에서 위 금액을 A 측에 구상할 것이라는 안내문을 A 엄마가 받고는 걱정이 되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한부모가정으로 혼자 벌어 자녀 둘을 양육하며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는 A 엄마로서는 위 치료비 금액은 너무 큰 액수일 뿐 아니라 사건 내용에 비해 터무니없는 금액이었다.
얼굴 한 대 맞은 것으로 그렇게까지 과도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것인지... B의 엄마는 무슨 연유로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B 엄마는 이걸로도 모자랐는지 놀이터에서 같이 노는 친구들에게 A가 B를 폭행했다며 떠벌리고 다녀 A를 왕따시키고 있다고 했다.
A, 그리고 A 엄마가 너무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적으로 다툴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폭위 결정에 대하여 불복할 수 있는 수단, 즉 재심청구나 행정심판청구, 행정소송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모두 도과되어 있었다. 이미 학폭위 결과 통지서를 받은 날로부터 90일이 지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 조심스레 말씀드리니, 자기는 상대방이 이렇게까지 할 줄 모르고 불복할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 이상 사건을 진행시켜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원치 않아서 그랬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돌아올 지 몰랐다고... 본인 때문이라며 자책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혼자 일하며 아이 둘과 사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행정심판이니 행정소송이니 하는 법정 다툼을 또 해서 사건을 장기화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사실 꼼꼼히 살펴보거나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여유도 없었던 것이리라.
A와 B는 쌍방폭행을 했고 오히려 A는 B의 엄마로부터 언어 폭력까지 당하였는데 이렇게 당하고만 있는 현실이 비참하다며 눈물을 지었다.
학폭위 결정에 불복할 방법은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B가 계속하여 치료비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할 방법이 필요했다. 공제회의 구상권청구를 기다려 대응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맞불을 놓는게 불가피해 보였다.
A도 학폭위 처분 상 피해학생이고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되어 있으니, 전문심리상담기관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고 그에 대한 비용을 공제회에 청구하는 것. 이미 A는 심리치료를 받고 있기는 했으나 가정형편 상 동사무소에서 알려준 무료 심리상담 센터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B의 청구에 대응하기 위해 A도 일부러 유료로 심리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 무슨 병원만 중간에서 이익을 보는 경우인지.
그리고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행위), 형법상 명예훼손으로 B 엄마를 고소하고, 그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진행하는 것.
그야말로 이판사판이다.
진정 흙탕물 튀기며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는 수밖엔 없는 것일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B 엄마가 더 이상의 과도한 치료를 받게끔 하는 행위를 멈추는 것일까.
조용히 사과하고 화해하고 '앞으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하면 끝날 일을.
상담을 끝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동네 친구들 사이에서 투닥투닥 하는 싸움을 했다고 하여 그렇게까지 많은 심리 상담이나 치료가 필요할까 싶었다.
B의 엄마는 정말 B에게 수차례의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오히려 A는 아빠 없이 엄마와 살고 있는 한부모 가정에, 그런 엄마에 대해 B가 험담을 하여 B를 한 대 친 것이고, 그에 대해 B의 엄마로부터 언어 폭력까지 들었는데, A의 마음이 더 다치지는 않았을까. A의 마음을 생각해 줄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을까.
오직 본인의 자녀가 맞은 것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그게 그렇게 분해서 죽을 것 같을까.
B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그러는 것일까.
당하고 살면 안 된다? 당한 것 이상으로 갚아줘야 한다? 엄마가 어떻게 하는지 똑똑히 보아라.
뭐 그런 심정인가.
A의 엄마가 아빠와 함께 살지 않고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처지라 더 만만하게 보고 이러는 건가.
B의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오지랖이지만 B가 앞으로 가정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지 걱정도 조금 되었다.
자녀는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부모가 하는 행동이나 말투, 주변을 대하는 태도 등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자녀의 삶에 스며들어 그들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형성함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나는 내 아이가 마음이 따뜻하고 선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내 모든 행동과 언행이 아이에게 여과없이 드러나 자연스럽게 아이의 생각과 태도로 나타난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