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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복숭이 Oct 21. 2020

매너온도 1도만 더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굳이 당근마켓이 아니더라도 관계에서 매너온도는 중요한 법.


나는 사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무료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는 변호사이다.


법률서비스는 유료가 원칙이지만, 기초생활수급자라든지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 장애인, 독거노인, 결혼이주여성 등 사회취약계층은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법률적 도움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법률복지 차원에서 국가가 무료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동사무소나 관련 기관들을 통해 정보를 알게 되어 상담 요청을 해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시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하다.


그런데 사회취약계층이 대상자라고는 하나 일반 서민들이 상담 신청이나 문의를 해 올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완강히 거절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라 우리 제도의 취지를 간략히 설명드리고 두루뭉술하게라도 상담을 해 드리곤 한다. 특히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들어오는 상담은 100이면 100 일반분들이신데(나이가 많거나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 분들이 홈페이지의 존재를 알기도 어렵거니와 인터넷으로 신청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 일부러 전화하여 거절의 뜻을 밝히기가 곤란한 부분도 있다.

대부분의 분들은 알아 들으시고 적당한 선에서 상담을 마무리짓고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에나 이상한 사람들은 있는 법.


내가 본인 사선변호사인것 마냥 맡겨 놓은 사건이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전화하여 이것저것 찔끔찔끔 물어보는 사람,

돈 내고 선임한 변호사에겐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입도 뻥긋 못하면서 돈 안 내고 물어보니 오히려 부담없고 만만한건지 목소리 높여가며 본인 주장 설파하는 사람(나에게 말할 필요 없고 제발 본인 변호사에게 얘기하라고 부탁하는데도 끊지 않음...),

예약도 없이 쳐들어오듯 불쑥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시간 별로 안걸린다며 상담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저기요...시간이 별로 안걸리는지 걸리는지는 제가 판단하는데요..쩝)...


세상은 넓고 JS는 많다.


한 번은 임신 중일 때 악성민원인인듯한 사람이 들어와서는 본인이 민원 제기한 것을 해결해 주지 않고 친절하게 응대해 주지 않았다며 관련 공무원들을 모두 고소해 버리고 싶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던 적이 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런 내용의 상담은 해 드리지 않는다고 했더니, '너도 똑같은 한패다, 법쟁이들은 못 믿는다'를 시전하며 소속이 어디냐고 고함을 치는데, 결국은 청원경찰분들의 제지로 끌려나가긴 했지만 한참동안 심장이 벌렁거리고 몸이 떨렸었다. 더불어 민원인들 대하시는 공무원분들의 고충을 잠깐이나마 이해하기도.


또 어떤 날에는 본인이 국가기관으로부터 도청을 당하고 있고 아랫집에서 전파를 쏴서 본인을 상해하고 있다며 경찰도 다 같은 부류라 신고해도 소용 없고, 나만 본인을 도울 수 있다고 황당한 말들을 끝도 없이 늘어놓던 사람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장난전화인가 갸우뚱했지만 계속 들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나보다는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가 더 필요해 보이는 상황인 것 같아 대충 맞장구쳐준 뒤 정신건강복지센터 전화번호를 알려드린 적도 있었다. 알아들었을까 모르겠지만.


이제는 나도 짬밥이 꽤 되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봐서 그런지 얼굴 한 번 보고 말 한 번 섞으면 각이 나와서, 사람 봐 가며 나의 태도를 설정한다.

일부러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리 된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변호사도 사람인지라 그건 너무 힘든 일이고, 상황이 똑같이 딱하고 안됐어도 더 마음이 쓰여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큰 소리내며 반말로 당연한 권리찾듯이 물어보는 사람에겐 좀처럼 상냥하게 말이 나가지 않는 법이다.


그래도 대다수 분들은 매너있게 물어보시고 상담 후에는 감사함을 표시하기도 하셔서 그럴 때에는 나도 뿌듯하고 기분좋은 에너지가 생긴다.  


그러고보면 인간관계라는게 다 그런 것 같다.

사회생활뿐 아니라 친구사이, 형제자매사이, 부부사이, 심지어 부모자식 사이에서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자!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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