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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카리 Jul 05. 2024

"엄마, 나 일본 어학연수 가."

바야흐로 2001년,

일본어를 한다면 이력서에 자신 있게 '일본어 가능, jlpt 00급'쓰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무조건 영어지만, 지방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빨리 취업을 하고 싶었기에, 시내 일본어 학원에 등록을 했다. 히라가나만 겨우 외우고 인사말을 배우고 있을 때였다. 학원 선생님이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을 가신다며, 기회가 되면 너도 꼭 일본에 가보라고 하셨다.


' 1년이라도 일본에 가서 일본어도 배우고 살아보는 건 어떨까?' 

선생님 추천과 동시에 유학원을 알아봤다.

당시 일본 어학연수 비자는 워킹홀리데이나 현지 어학원을 등록해 받는 유학 비자가 있었다.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가서 워킹홀리데이 모임이나 일본 유학원 상담을 받아보고, 경비, 필요서류를 알아봤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바로'돈'이었다.


유학원을 통해 일본 어학원 등록을 결정하고 준비하던 중, 600만 원 잔고 증빙 서류가 필요했다. 엄마가 며칠을 고민고민하다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 일본에 어학연수 1년만 다녀올게."

"너는 항상 그런 식이야, 엄마 아빠랑 상의하는 게 아니라, 네가 다 결정해 놓고 통보하는 식이라고!"

"내가 항상 이런 식이었다고? 두고 보자고!"


통보식이든 보양식이든 어쨌든 그날부터 설득작전에 돌입했다.

일주일 단식투쟁도 하고, 며칠을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있었다. 진짜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알아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했다.

이미 내년 봄 학기로 가기로 하고 스케줄을 꽉 채워놨는데, 잔고가 비었다.

단식을 멈추고, 당장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했다. 하루 8시간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도 시급 2800원에 한 달이면 50만 원이 채 안 됐다. 티끌 모아 후지산이라는 생각으로 새벽까지 아르바이투(2)를 하며 지냈다.

어느 날 낮,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3시에 시내 있는 국민은행 앞으로 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엄마를 만났다.

엄마와 창구 번호표를 들고 대기하는 찰나,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그렇게 일본에 가고 싶니?"

"꼭 가고 싶어."

엄마는 적금을 깨, 반학기 정도 학원비와 생활비를 보태주셨다.


괜히 고집만 세운 마음이 들어 대낮에 은행 창구에서 눈이 시뻘게지도록 '펑펑'울었다. 대낮에 한 적금과 이별이라 엄마도 울고 싶었을 텐데.

즉시, 알바를 그만두고 도서관을 다녔다. 1년에 한 번 있는 일본어 능력 시험이 3개월 남았는데, 꼭 2급을 따고 일본을 가리라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어 능력 시험(jlpt)은 급수가 많은데, 당시에는 총 4급의 레벨이 있었다. 1년은 열심히 공부해도 2급을 딸까 말까이다. 히라가나와 기초 문법을 뗀 지 얼마 안 됐지만, 무조건 2급은 따리라.


매일 도서관 자유열람실에서 일본어 문제집이 찢어져라 풀고 또 출고, CD플레이어로 몇 시간씩 일본어 문제를 듣고 또 듣고 똑같은 문제집을 몇 십 번씩은 풀어보았다.

밤늦게 혼자 집으로 돌아올 때면,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를 갔겠다'며 피식 웃곤 했다.


드디어, 12월

2급 시험에 합격을 했다.


"엄마, 아빠~ 이거 일본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2급 따기 엄~~~~ 청 어려운 거야!" 일본 가면 금방 일본어도 늘고 자신 있어~~~"

하며 당당히 부모님께 2급 합격증을 보여드렸다.

"엄마, 아빠~ 나 잘할 수 있어! 걱정 안 해도... 돼."


일본어를 정복한 마음이 든 이때만 해도 일본이 쉬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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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配しないで(심빠이 시나이데) ➠ 걱정 안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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