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쌓고 만든, 당신이라는 소우주

척의 일생

by 랄라

“나는 크다,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I am large, I contain multitudes.).”

-월트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중


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가 선택적으로 담아 기억하는 삶의 서사, 그러니까 그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우주라고 부를 만큼 무한히 방대하다.

이 세상에는 그래서 사람 수만큼의 소우주가 있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그 일은 제각각의 문화와 배경지식과 성향 속에서 이해되고 자신만의 역사로 쓰이니까.


그러니 죽음은, 하나의 우주가 소멸하는 일이다.


"네가 보는 모든 것, 네가 아는 모든 것, 세상이 들어있지, 처키. 하늘을 나는 비행기, 길거리의 맨홀 뚜껑. 네가 한 해, 한 해 살아갈수록 네 머릿속의 세상은 점점 커지고 밝아지고 자세해지고 복잡해질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알 것 같아요." 척은 말했다. 두개골이라는 깨지기 쉬운 그릇 안에 세상 하나 통째로 들어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스티븐 킹, <척의 일생 / 중편소설 모음집 피가 흐르는 곳에> 중에서

*스티븐 킹의 우주는 좀 더 큰 우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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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공포영화만 만들어 온 감독이 영화로 살려낸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단편소설보다는 조금 긴 중편소설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 중에는 매우 문학적 가치가 재평가돼야 할 비공포(?) 소설들이 있는데, 스탠바이미나 쇼생크탈출과 더불어 좋아하던 그런 비공포 단편소설 중 하나가 중편소설 모음집 '피가 흐르는 곳에'에 수록된 척의 일생이었다. 공포소설을 다작하는 소설가가 귀한 이유는 그가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야기꾼, 이야기 화수분일 게 분명해서이다. 나는 끊임없이 다채로운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티븐 킹의 우주에서 살고 싶다. 그는 살면서 스쳐가며 보는 모든 것에서 이야기의 영감을 얻어내는 사람인 것 같다. 이 작은 중편 이야기에서 이렇게 큰 그림과 주제를 보기 좋게 끄집어낸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 역시 아마도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영화 척의 일생은 원작과 같이 3막부터 시작되고 소멸(3막)-찰나(2막)-빌드업(1막) 과정으로 전개된다. 원작에는 없던 칼 세이건이나 우주의 달력 개념까지 도입되었다. 그것이 원래의 이야기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러한 설명 덕에 좀 더 쉽고 직관적으로 한 사람의 소우주라는 개념과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저 바깥의 우주라는 개념을 비유하게 되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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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그린 3막에서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진다. 한 주가 통째로 바다에 가라앉아 사라져 버리고 전기와 통신이 끊겨버리며 인간이 쌓아온 문명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가운데, 마을의 광고판과 미디어의 모든 광고 지면은 '39년 동안 고마웠어요, 척!'이라는 광고를 내보낸다. 수트를 입은 평범한 중년 남자인 척은 도대체 누구인가. 교사인 마티는 용기를 내어 전부인인 펠리샤에게 연락을 취한다. TV에서는 칼 세이건이 '지구의 역사를 1년짜리 달력이라고 할 때, 인류는 12월 31일에야 출현했다'라며 우주의 방대함을 설명한다. TV 송출마저 중단되고 종말이 내 집 앞까지 다다랐다고 느껴지는 순간, 마티는 세상의 마지막 날 함께 하고 싶은 게 누구인지 깨닫고 펠리샤에게 달려간다. 부부가 사랑했던 별들이 하늘에서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사랑한다는 말도 끝마치지 못했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 그만이었다. 요즘 영화치고 빌드업의 호흡이 긴 편이다. 이 답답한 미스터리들은 무어란 말인가. '별거 아니기만 해 봐.'라는 생각만 가득할 터에, 3막이 끝나고 1막까지 가면 깨닫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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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은 평범한 회계사 척이 어느 출장길에서 갑자기 마주친 버스킹 드럼에 맞추어 춤을 추는 이야기다. 인생은 갑자기 길 위에서 강력한 끌림을 받고 시원하게 춤을 추는 순간과 같은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마치 아르민이 '어느 바람이 기분 좋던 저녁 에렌, 미카사와 언덕 꼭대기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았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 찰나의 단순하고 작은 그러나 완벽한 순간들이 모여 인생의 기억들을 구성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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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척의 일생이 시작되는 1막. 척은 어린 시절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비극적 사고로 부모를 잃었고, 곧 태어날 '빗소리를 연상케 하는 이름의' 여동생도 같이 잃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비밀이었지만 젊었을 때 놀았다는 할머니에게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춤을 배웠고, 춤이 좋았지만 '세상은 댄서보다 회계사를 더 많이 필요로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자신을 내려놓고 회계사의 길을 간다. 그는 미래의 어느 날 길에서 버스킹하는 친구를 만나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아주 짧은 순간을 가질 것이다. 청소년기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척은 금지된 다락방에 올라가 자신의 끝을 보았다.


그는 자신이 꽤 젊은 나이에 눈을 감는다는 것을 너무 일찍 보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삶에서 중요한 건 정해진 끝과 시작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끝을 향해 가는 길에 추는 찰나의 춤이다.

인생의 어떤 찰나들에서 느끼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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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우리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고 왜 남이 정한 날 죽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만든 우주가 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명을 다하는지. 그저 내가 정할 수 있는 건 내 안에 어떤 기억들을 남겨 나만의 기분 좋은 우주를 만들지이다. 삶이란 결국 평범해 보이는 한 사람의 머릿속에 남은 수많은 풍경들과 사람들, 그만의 소우주에 담긴 그런 기억들의 모음이니까.

세상에 던져졌으니 어느 바람이 기분 좋은 저녁 언덕 꼭대기까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달리기를 하고 캐치볼을 하며 살아가야지. 곧 아름다운 일몰이 질 것 같은 어떤 날 출장을 갔다가 마주친 드럼 버스커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절정의 쾌락을 느껴야지. 내 등 뒤로 눈부신 그날의 하루 해가 넘어갈 때, 조금 전 사나운 애인에게 무례하게 차인 젊은이에게 모든 건 결국 지나가면 괜찮아진다고 말해줘야지. 각자 소우주의 별들이 하나둘씩 꺼지는 마지막 날,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 있어야지. 북극성과 밀키웨이를 같이 바라보며.


우리는 우주의 나뭇가지이고 브로콜리다. 우리는 우주를 이루는 동시에 각자가 하나의 '거대한 소우주(?)'이다. 거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살아가면서 우주를 구성하는데 기여하는 프랙털 구조의 한 구조물이며 그 자체로도 우주인, 무한소를 품은 껍데기다.


“앤 드루얀을 위하여―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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